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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대장동 의혹, 상설특검이 딱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성남의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특혜 의혹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성남의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특혜 의혹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①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희의에서 의결한 사건
2. 법무부 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정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의 제2조입니다. 이 법의 별칭은 ‘상설특검법’입니다. 국회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개별적 특검법을 만드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특검을 가동할 수 있게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법이 생긴 지 7년이 넘도록 딱 한 번 활용됐습니다. 지난달에 수사가 종료된 ‘세월호 참사 증거 조작 의혹’ 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외의 ‘국정 농단’ 사건이나 ‘드루킹’ 사건에는 이 법이 쓰이지 않고 별도의 특검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데 야당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건은 야당이 특검 수사를 요구한 게 아니므로 상설특검법 적용에 반대가 없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특별검사추천위원회가 두 명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해야 합니다. 추천위원회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당연직 위원이 되고 나머지 4명은 국회가 정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원하는 사람이 최소 한 명은 특검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게 법이 설계돼 있습니다. 여야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 사건에 이 법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입니다.

이번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은 사정이 좀 달라 보입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엄정한 수사를 원한다고 했고, 국민의힘도 같은 입장입니다. 이낙연 전 총리를 비롯한 여권 대선 주자들도 독립적 수사에 반대할 리가 없습니다. 소속 의원들이 이 지사와 이 전 총리 쪽으로 갈려 있기 때문에 여당 지도부가 어느 한쪽에 유리한 특검 후보가 추천되도록 힘을 쓰기도 어렵습니다. 중립적 인물이 특별검사가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국민의힘은 현재의 검찰이 친정부 ‘정치 검사’에 의해 장악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재명 지사 주변에는 “검사들은 여전히 윤석열 전 총장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 어느 방향이든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경찰이 수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사에 필요한 각종 영장은 검찰에서 걸러집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맡는 것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고위공직자와 관련된 혐의 사실이 드러난 게 없습니다. 공수처의 인적 구성을 볼 때 빨리 수사가 이뤄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 수사의 장점은 신속성입니다. 여야가 별도의 특검법을 만들며 조문을 놓고 싸울 일이 없습니다. 바로 추천위원회 열어서 특별검사 후보 두 명 정하고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임명해 수사팀 꾸리게 하면 됩니다. 한 달 안에 수사 착수가 가능합니다(세월호 특검 수사 때는 특검 임명에서 수사 착수까지 20일 걸렸습니다). 특검 수사 기간은 기본 60일입니다. 올해 안에 이 지사의 결백 여부가 판가름날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배후로 의심받는 ‘고발 사주’ 의혹 사건도 여야의 뜻이 모이면 같은 방법으로 특검 수사를 동원할 수 있을 텐데 여당이 검찰과 공수처를 더 믿을 것 같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과 대장동 개발 의혹이 양대 ‘블랙홀’이 되어 대선 이슈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병역 비리 논란과 BBK 문제에 뒤덮였던 과거의 대선이 떠오릅니다. 또다시 나라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선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신속한 진위 규명이 필요합니다.

이재명 지사가 어제 “(대장동 의혹은)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덫을 놓고 걸려들면 좋고, 걸려들지 않아도 낙인만 찍으면 된다는 악의적 마타도어다. 하지만 기꺼이 그 덫에 걸려들겠다. 당장 수사를 시작해 달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국민의힘 “화천대유 누구 겁니까” 이재명 “당장 수사를 시작해달라”

 국민의힘은 16일 ‘이재명 경기지사 대장동 게이트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위원장 이헌승)를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회의장에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구호를 빗대 ‘화천대유 누구 껍니까’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이 자리에서 김기현 원내대표는 “대장동 개발은 이 지사의 최대 치적이 아니라 최대 치부로 기록될 것”이라며 “일개 개인이 1% 지분인 5000만원 갖고 577억원을 배당으로 받았다는 것인데,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국정조사, 특별검사에 의한 정밀 수사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지사는 물론 관련자 다수를 증인으로 채택해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헌승 위원장과 김은혜 위원 등은 회의 뒤 피켓을 들고 현장을 직접 찾았다.

야권의 공세가 커지자 이 지사는 이날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에 대해 “수사를 공개 의뢰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대장동 의혹은)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덫을 놓고 걸려들면 좋고, 걸려들지 않아도 낙인만 찍으면 된다는 악의적 마타도어”라면서도 “기꺼이 그 덫에 걸려들겠다. 당장 수사를 시작해 달라”고 했다. 이어 “제기되고 있는 모든 왜곡과 조작을 하나부터 열까지 샅샅이 수사해 달라. 모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결국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결과 어떤 의혹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제기한 모든 주체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 의뢰 배경에 대해 캠프 관계자는 “추석 연휴와 호남 경선을 앞두고 네거티브 논란을 종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수사 자청에 앞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과 대선에서 손을 떼십시오”라고도 했다. 지난 14일 국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과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손을 떼라”고 한 지 이틀 만이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조선일보는 칭찬받아야 할 공영개발 전환을 특혜성 민영개발로 둔갑시켰다. 근거도 없고 주장도 터무니없다”고 적었다.

정치권에선 이 지사의 이런 메시지를 두고 지지층 결집을 넘어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4월 6일 인천에서 열린 국민경선에서 “언론에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며 “동아, 조선은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라고 연설했다.

 허진·한영익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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