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새벽 불빛 둥둥…코로나가 풀어준 中 '꽃게도둑' 1만6800척

중앙일보

입력 2021.09.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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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해상에서 불법조업중인 중국 어선. 이들은 어법을 무시한 채 산란기의 꽃게나 크기가 작은 꽃게까지 저인망으로 싹쓸이하며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서해상에서 불법조업중인 중국 어선. 이들은 어법을 무시한 채 산란기의 꽃게나 크기가 작은 꽃게까지 저인망으로 싹쓸이하며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중국 어선 수십 척이 몰려다니면서 알이 뱄든 덜 자랐든 상관없이 저인망으로 꽃게를 싹쓸이하는데도 지켜보는 것 말곤 방법이 없네요. 하도 당하다 보니 이제는 한숨만 나옵니다.” 

인천 옹진군에서 꽃게잡이를 하는 박재복 연평도 선주협회장은 도를 넘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행태에 치를 떨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눈 뜨고 당하는 상황은 10여년 간 반복되고 있다. 옹진군에선 지난 1일부터 가을철 꽃게 조업철이 시작됐지만, 수확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매해 꽃게 치어(稚魚) '싹쓸이'가 이뤄지면서 이제는 서해 어장의 꽃게 씨 자체가 점차 마르고 있는 탓이다.

中 '불법 조업' 하루 평균 70여척 

실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매년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총 1만1858척 규모였던 불법 조업 어선은 2019년 1만6024척에 이어 2020년 1만8729척으로 늘었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해 지난 8월 기준 이미 1만6802척이 서해상에서 불법조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대로라면 올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규모는 2만5000~3만 척으로, 역대 최대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조업에 나서는 중국어선의 규모에 비해 해양경찰청 등의 단속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어선 나포가 불가능해지며 단속 실효성이 한층 떨어졌다. 사진은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꽃게잡이 출어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불법조업에 나서는 중국어선의 규모에 비해 해양경찰청 등의 단속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어선 나포가 불가능해지며 단속 실효성이 한층 떨어졌다. 사진은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꽃게잡이 출어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한층 기승을 부리는 건 건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다. 해양경찰청이 단속대원들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단속 방식을 나포에서 퇴거 명령 등 비접촉 단속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어선은 불법 조업을 하다 단속에 적발돼도 퇴거 명령이 전부란 점을 알고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NLL을 넘어와 그물을 치는 식으로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산란기를 맞은 꽃게나 크기가 작은 꽃게 치어까지 싹쓸이해가는 중국 어선 행태에 서해의 해양생태계 자체가 마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알이 나와 있거나 길이가 6.4cm 이하인 꽃게는 어획이 금지돼 있지만 중국 어선이 이같은 규정을 지킬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박재복 선주협회장은 “중국어선은 NLL 근처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해경이 뜨면 북한 측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단속을 회피해왔는데, 최근엔 아예 대놓고 수십척이 몰려다니며 꽃게를 다 쓸어간다”며 “새벽만 되면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의 불빛들이 바다에 둥둥 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꽃게 싹쓸이' 극심한데 단속은 26척뿐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단속 규모는 지난해 18척, 올해는 지난 8월 기준 26척에 불과하다. 사진은 지난 6월 고속단정 운용 역량 강화대회에서 어선 단속 시뮬레이션 훈련중인 해경 구조대원.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단속 규모는 지난해 18척, 올해는 지난 8월 기준 26척에 불과하다. 사진은 지난 6월 고속단정 운용 역량 강화대회에서 어선 단속 시뮬레이션 훈련중인 해경 구조대원.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비접촉 단속의 한계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불법 조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해경의 단속 실적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2018년엔 총 136척의 어선이 단속에 적발됐지만 이같은 수치는 2019년 115척에 이어 2020년엔 18척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다시 나포 단속을 재개해 지난 8월 기준 총 26척으로 단속 건수가 일부 증가했지만, 눈에 띄게 늘어난 중국 어선 규모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소청도 해역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운영하는 박정달씨는 “하루에 수십~수백척의 중국어선이 판을 치고 있는데 한 달에 2~3척씩 단속을 한다고 불법조업이 근절되겠냐”며 “하다못해 중국 정부에라도 강하게 경고를 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데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불법 조업에 대한 정부 입장은 지난 수년간 큰 변화가 없다. 그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정부에 관련 문제를 지적하고 즉각적인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힐 뿐이었다. 정부가 말한 ‘다양한 채널’은 외교부·해양수산부가 정례적으로 갖는 한·중 어업문제협력회의, 한·중 어업공동위원회 등이다.

유명무실 한·중 협의, 말로만 "시정 요구" 

지난 1일 외교부는 관게부처와 함께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응하기 위한 조업질서 담당관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정부는 불법조업 행위와 관련 중국 측에 지속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불법 조업 규모는 점차 늘어나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외교부는 관게부처와 함께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응하기 위한 조업질서 담당관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정부는 불법조업 행위와 관련 중국 측에 지속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불법 조업 규모는 점차 늘어나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한·중 양국 간 협의체는 2017년 이후 지금까지 총 19차례에 걸쳐 가동됐다. 하지만 정례적으로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음에도 중국 측의 불법 어업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은 이같은 협의의 실효성 자체가 떨어진다는 방증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부가 불법 조업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중국 측에 제대로 ‘시정 요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불법 조업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한·중 양국 간 해양환경자원 보존을 위한 ‘포스트 황해광역해양생태계(YSLME) 체제’를 구축한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15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2020년 종료된 YSMLE를 업그레이드해 다시 남·북·중 3국이 공유하고 있는 황해의 생태계 건강을 회복하는 체제를 구축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는 점을 성과로 부각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지난 2014년 YSLME를 부각하며 중국 불법조업 근절에 나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불법 조업 어선이 더 늘어난 것 자체가 이런 구상이 큰 실효성이 없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불법 조업으로서해에서 꽃게 씨가 마르는 마당에 중국과 해양환경자원 보존에 나서겠다는 합의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결국 한·중 관계 발전을 중시한 나머지 불법 조업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태용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저자세 외교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문제 역시 한층 심각하게 만들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며 “한·중 관계에서도 국익과 원칙에 입각해 이제라도 당당하게 중국 측에 불법 조업 근절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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