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차기정부가 꼭 풀어야 할 징용문제

중앙일보

입력 2021.09.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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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악화된 한일 관계에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관건은 징용 문제인데, 정부는 현금화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것을 보고만 있다. 임기 말의 정부에게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차피 해법은 차기 정부에 기대할 수밖에 없으니, 차제에 그간의 징용 문제 대처 과정을 돌아보고 교훈을 찾고자 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외교 분쟁에서도 초기 대응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 일이 커진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징용 배상 책임을 확정하였을 때, 정부는 즉각 3권 분립과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내세우며 확실하게 대법원 판결 편에 섰다. ‘징용 문제는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인정했던 그간의 정부 입장과 충돌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 대법원 판결로 한일 협정의 해당부분은 무력화되었다고 여기는 듯 했다. 이 판단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판결과 협정이 상충되는데
판결 이행에 몰입한 현 정부
협정과 조화 이룰 해법 찾고
현인 회의로 여론 수렴 해야

정부는 국내적으로는 사법부의 최종 결정에 따라야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와 맺은 협정을 이행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는 국내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정부로서는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국내법과 국제법 사이의 곤경에 처한 셈이니, 양자 간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고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법을 이행해야 할 역할은 간과하고, 별 고심 없이 대법원 판결 편에 서버린 것이다.

국내법에 몰입한 정부의 입장은 자연히 일본에 대한 강성 후속 대응을 낳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한일협정 상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양자 협의를 요청했다. 한국은 거부했다.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하는 정부로서 일본과 협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보면, 문제가 한국 내의 판결로 시작되었는데도 한국 정부가 협정에 규정된 양자 협의마저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 된다. 일본은 분쟁 해결 절차상 다음 수순인 중재위원회를 제안하였다. 한국은 또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이외의 방법은 고려할 수 없다고 여겨 그랬을 것이다. 일본은 자극되었다.

얼마 후 한국은 한일 양국 기업이 기금을 조성하여 배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이것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면 양자 협의를 하겠다고 했다. 한일 협정으로 징용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간주하는 일본은 일본 기업이 돈을 내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따르는 셈이 된다며 거부했다. 격앙된 일본은 당초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될 때 취하려 했던 수출규제를 앞당겨버렸다. 한일 간의 치고받기가 이어졌다. 이후 한국이 여러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대부분 일본 기업이 돈을 낸다는 전제 위에서 변형을 한 방안들이었으므로, 일본은 나오는 족족 거부했다. 한국도 격앙되었다.

이처럼 한국이 국내법의 3권 분립을 위주로 대처한 반면, 일본은 국제법을 내세웠기 때문에 상호 간극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이 이렇게 대응한 배경에는 반일 감정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피해자 중심의 대법원 판결 편에 서는 것이 정치적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3권 분립과 반일 감정에 매여서는 적절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일본은 결자해지라며 한국이 해법을 내야한다고 주장한다.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현금화 시한폭탄은 언젠가 터질 판이다.

전후 사정이 이러니 차기 정부에 대한 교훈은 명백하다. 첫째로 국내법 측면과 국제법 측면을 두루 대처해야 한다. 둘째로는 반일 감정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간 전문가들이 논의해온 해법 중에서 국내법과 국제법 모두를 배려하는 접근이 ‘대위변제’이다. 한국 정부가 대신 배상을 해준 후, 일본 측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안이다. 한국에게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셈이 되고, 일본에게는 한일 협정을 이유로 구상권을 부인할 여지가 있다.

여타 방식으로는 국제법적 해결 절차를 통해 국내법과 국제법 간의 충돌을 해소하는 방안이 있다.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는 국내 입법으로 한국 측이 대신 배상할 근거를 만드는 방안이 있다. ‘문희상 안’이 유사 사례이다. 이렇게 하면 대법원 판결은 국내 입법으로 대신 충족되고, 국제법인 한일 협정은 온전히 남는다.

차기 정부가 상기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문제는 풀릴 것이다. 만일 차기 정부가 반일 감정에 부담을 느껴 선택을 꺼린다면,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여야 합의로 초당적 현인회의를 구성하여 해법을 의뢰하고, 정부는 그 결론을 따르는 2단계 선택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방안이든지 차기 정부에서는 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외교사안을 국내법과 국민 감정 위주로 몰아가지 말아야 하고 국제법적 측면도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야한다. 첨예화하는 미·중 대립과 엄중한 동아시아 세력구도를 헤쳐가야 할 한국에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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