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두고 보자”

중앙일보

입력 2021.09.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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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팀장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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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앞으로 결과가 좋지 아니할 것이라고 벼르거나 앙갚음을 하겠다고 할 때 이르는 말. ②어떤 결과가 될지를 일정 기간 살펴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풀이된 ‘두고 보다’의 뜻이다. 일상에서 종종 쓰는 이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면 좀 달리 들린다.

#2002년 6월 17일 자민련 당사 앞. 카메라가 몰렸다. 그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입을 열었다. 김대중(DJ)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그는 DJ와 결별하고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작심한 듯 “몰락이란 말 좀 쓰지 마라. 지방 장관(기초단체장) 두 명 안 됐다고 몰락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부 새 출발 할 거다. 앞으로 두고 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두고 보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6년 뒤인 2008년 12월 5일 오후 2시. 초겨울 진눈깨비가 내린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앞에 몸을 드러냈다. 단 10분. 노 전 대통령은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형 노건평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수감된 다음 날인지라, 그의 입에 귀가 쏠렸다. 형의 수감에 대해 “지금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전직 대통령의 도리도 있지만, 가족의 한 사람으로 형님에 대한 동생의 도리도 있거든요.” 재차 “지금쯤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두고 봐서 하겠습니다.”

#“(야당이) 국면 전환을 위해 저를 잡는데, 박지원 게이트? 누구 게이트인가 두고 보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여권 인사에 대해 이른바 ‘고발 사주’를 했다는 의혹이 단초가 됐다. 야권에서 제보자 조성은씨와 박 원장이 만난 점을 들어 되레 ‘제보 사주’를 한 것이 아니냐고 반격하고 나서면서 박 원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과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의혹. 진실은 오리무중, 내년 대선을 겨냥해 난무하는 의혹과 말싸움 속에서 고위 공직자의 ‘두고 보자’는 장담은 공허하다. 올라버린 대출금리에 고공 상승 중인 집값,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유권자 사이에서 내년 대선 때 “두고 보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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