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옷 없다고 극단선택까지…韓여성 빠졌던 '1950년대 샤넬'

중앙일보

입력 2021.09.16 10:34

업데이트 2021.09.16 10:38

낙하산지 블라우스.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낙하산지 블라우스.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나일론 한복.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나일론 한복.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요즘 샤넬·에르메스 등 명품 가죽 핸드백처럼 1950년대 여성들은 '나일론' 제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은 흔해 빠진 나일론이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될 당시엔 멋쟁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급 섬유였다. 요즘 명품을 만드는 가죽이나 신소재 섬유처럼 대접 받았다.

1955년 7월 신문엔 '나일론 적삼 하나 없다고 부부싸움 끝에 비관 자살한 여인', 1955년 8월 신문엔 '나일론 치마를 안 사준다고 부모를 비난하던 딸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가 보도됐을 정도다.

여성들이 편하게 나일론 스타킹을 사서 입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63년 대구의 한국나이롱㈜에서 본격적으로 나일론을 생산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따뜻한 목도리를 짜게 만들어준 털실.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따뜻한 목도리를 짜게 만들어준 털실.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나일론 스타킹.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나일론 스타킹.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나일론 등 우리나라에서 과거 인기를 끌던 섬유를 주제로 한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 대구섬유박물관은 16일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11월 21일까지 대구섬유박물관에서 '대구섬유, 우리 삶을 바꾸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광복 후부터 6·25전쟁 후 근현대 우리나라의 다양한 섬유 관련 사진, 자료 등 300여점을 소개한다.

국내 생산한 섬유로 만든 대한항공 1기 유니폼.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국내 생산한 섬유로 만든 대한항공 1기 유니폼.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제일모직의 최초 생산 양복지.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제일모직의 최초 생산 양복지.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전시품 가운데 나일론만큼 눈에 띄는 것은 '양복지'다. 대구섬유박물관에 따르면 광복 이후 우리나라엔 서구식 복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카오·홍콩 등지에서 밀수입한 양복지가 들어왔고 "옷 좀 입는다"는 남성들이 이들 양복지로 정장 같은 옷을 맞춰 입었다. 바로 '마카오 신사'로 불린 이들이다.

양복지가 저렴해진 건 1954년 대구에 제일모직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제일모직은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사(毛絲)를 생산하며 골덴텍스 양복지를 출하했다. 품질 좋은 국산 양복지는 대구 서문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하나둘 마카오 신사들이 입던 비싼 수입 양복지를 대체했다. 이후 양복지는 코트·모자·장갑·교복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됐다. 이때 제일모직의 ‘장미표 털실’도 처음 등장해 했다고 한다.

옥양목 상표 '미인'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옥양목 상표 '미인'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1등 혼수품으로 꼽혔던 '옥양목' 관련 전시품도 눈에 띈다. 1950년대 대구는 섬유공업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면서 광목·포플린·옥양목 등 면직물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이중 옥양목(玉洋木·calico)은 표면이 옥처럼 고운 하얀 서양 무명으로, 부드럽고 섬세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귀한 면직물로 여겨져 혼숫감으로도 많이 이용됐다. 박물관 측은 전시회에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직접 지어 보낸 ‘옥양목 버선과 앞치마’, 혼수품으로 준비한 ‘상복용 치마저고리’, 옥양목 ‘보자기’ 등을 소개한다.

대구섬유박물관 전경.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대구섬유박물관 전경. [사진 대구섬유박물관]

이번 전시회는 추석 연휴(21일만 휴관)에도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평소 보기 힘든 과거 '면직기’와 ‘낙하산지로 만든 블라우스' 등도 전시돼 볼거리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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