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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란 방역기획관님, 저녁 6시 4인과 6인 차이가 뭡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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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모란

기모란

얼마 전 가수 성시경씨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안을 갖는 시민들을 악마화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가 난타를 당했죠. 네, 그의 발언은 잘못됐습니다. 약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볼 때 그가 유튜브에서 불안의 근거로 얘기한 것들이 그리 신빙성이 없다는 걸 압니다. 저처럼 약학을 배운 후 딴짓하고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의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일하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가며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신 기 방역기획관님은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성시경씨 같은 분들이 불안을 갖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아무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질 않고 있거든요.

최근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이달 초 거리두기 새 개편안이 발표된 후 연락을 해왔습니다. “드디어 폐업하냐”는 짓궂은, 아니 잔인한 농담에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하던 그는 진지하게 궁금한 점이 있어 연락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오후 6시 이후에 백신 접종자를 포함해 4명이 모이는 것과 6명이 모이는 게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더군요. 확산세가 여전히 지속하는 중인데 거리두기 완화를 시도하는 게 의아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 근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관련 자료는 그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상함을 느낀 게 제 지인과 저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국무조정실에 비슷한 자료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에서는 “감염자나 확진자 데이터를 시간대별로 관리하고 있지 않아 근거를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는데, 그렇다면 오후 6시 이후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이나 영업 종료시각을 정할 때 대체 무엇을 근거로 삼아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혼 예식장에서의 홀별 입장 가능 인원은 식사를 제공할 때는 49명,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99명이라고 하는데 설마 이것도 임의로 힘 있는 몇 분이 모여 대략 여기는 50명, 여기는 100명으로 마음대로 자른 것일까요?

근거 없는 내 맘대로 방역 수칙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되던 2020년 초에는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치료법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으니, 지금이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들도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몰라 황망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닙니다. 벌써 1년 반이 흘렀습니다. 당시 막 군에 입대했던 이들도 이미 전역할 정도의 긴 시간입니다. 그 사이에 치료제도 나왔고, 기 방역기획관님의 예상과 달리 백신이 빠르게 개발된 덕에 많은 이들이 백신 접종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방역에 대해 명확한 근거 데이터가 제시되지 않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기술적으로 이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이맘때로 기억합니다. 광화문에서 보수 성향 단체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벌였고, 그로 인해 코로나 감염이 확산하는 매우 부적절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은 이들을 두고 “살인자”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고, 통신사 협조를 통해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 정보까지 받아 이들을 색출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민주노총 집회에 대해 비슷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방역이란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수백만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걸린 정책 결정을 위해서 올바른 데이터를 만드는 데는 왜 그때와 같은 결기를 보여주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데이터도 많습니다. 방문자의 시간까지 명확히 나오는 그 많은 QR코드 방문자 데이터는 어디로 간 걸까요?

한국 시민들은 정부 방역 대책에 무척 순응적이었고, 협조적이었습니다.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이 “국민 맏며느리”라 불리며 칭송받던 건 사실 무척 시대착오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시대착오적인 호칭이 현 정부에 적대적인 편인 중장년층과 노년층조차 방역 대책에 호감을 갖고 순응하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누군가의 부적절한 판단과 그에 따른 정책 실패로 우린 비록 백신은 못 구했지만 가장 강력한 방역자원 중 하나인 시민들의 인내심과 정책 순응도 덕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4명과 6명의 차이가 뭐냐”는 질의에 “그냥 그렇게 정했다”라고요? 이런 답변이 앞으로도 계속 나온다면 더는 이런 방역은 유지될 수 없지 않습니까.

더 큰 문제는 전반적인 방역 정책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깨지면서, 백신에 대해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폭넓게 구독하는 어르신들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또래 세대에서도 백신에 대한 불안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물론 소수의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과잉 대표돼 퍼지는 것이고, 실제로 백신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매우 안전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이런 오해를 갖기가 쉽습니다. 확진자 숫자만 읊어주는 중계방송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 교수님이 청와대에서 들어가실 때 그런 역할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방역 지휘체계 위에 또 다른 높은 자리를 만든다기에 그런 역할이지 않을까 짐작한 것입니다.

방역기획관이 대체 뭘 할까

교수 시절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확신 가득한 어투로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백신이 필요 없다던 얘기도 여러 차례 하셨죠. 이와 관련, 이견은 있었지만 어쨌든 청와대로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식적인 직함을 갖게 된 만큼 적극적인 소통을 해주시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대목에서조차 한 번도 목소리를 내시는 걸 본 일이 없어 솔직히 지금까지도 정확히 방역기획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도 비슷한 의문을 가진 것인지 신설된 방역기획관 자리에 대한 설명을 위해 국회 출석을 요구하려 했지만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언이 전부여서 더욱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기 방역기획관님. 이번에 모더나 백신을 받기로 한 루마니아는 자국민 백신 접종률이 지나치게 낮아, 귀한 백신을 다른 나라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광범위하게 백신 음모론이 판친 탓입니다. 루마니아 국민이 미개해서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데이터와 근거가 공개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점차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는진 모르오나, 평범한 사람이 보고 납득할 수 있는 방역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업무 범위에 포함되리라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순응도가 바닥나기 전에 전문가로서 힘써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락가락 방역에 화난 민심이 질문으로 이어져

약사 출신 박한슬 작가가 작심하고 오락가락 방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글이 실린 중앙일보 홈페이지에는 100개 넘는 댓글이 달렸고, 네이버엔 9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정부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좀 더 인내하고 협조합시다”(dukes**)라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모란 방역기획관님, 저녁 6시 4인과 6인 차이가 뭡니까’라는 식으로 박 작가의 질문에 공감해 추가 질문을 던지는 댓글이 많았다.

“5시와 7시는 왜 안 되는지도. 스무고개도 아니고 수수께끼도 아니고. 근거는 고사하고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은 백성 중의 한 사람이”(ohhoo**)라거나 “기모란 방역기획관님, 아이에게 코로나 산수를 가르쳐야 하는데 답 좀 부탁합니다. 질문은, 저녁 6시 이후 4명 이상 모임은 안 된다. 그렇다면 저녁 6시 이후 전철과 버스는 몇 명이 승차해야 할까요?”(kimta**)라는 질문도 맥을 같이한다.

정치 방역을 일삼는 오염된 전문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청와대는 고급 일자리 만들어주는 데인가 봐요. 방역기획관이란 없는 자리까지 국민 세금으로 해주었는데… 국민건강에 관련된 것이라 잘하길 바랐지만, 방역지침이나 가이드라인도 제때 못 만들고 무조건 국민에게 오락가락한 거로 지키라니 국민들이 마치 공산사회주의처럼 길들여지고 고생하네요.”(hyeri**)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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