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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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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최초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1967년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이 런던 엔필드 지점에 설치했다. 존 셰퍼드 배런(1925~2010)이 만들었는데, 평소 이용하던 초콜릿 자판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배런은 BBC와 한 생전 인터뷰에서 당초 비밀번호는 자신의 군번과 같은 6자리로 고안했지만, 아내가 “4자리가 편하다”고 조언하면서 계획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게 지금의 표준이 됐다. 바클레이스 은행은 지난 2017년 ATM 설치 50주년을 기념해 최초의 기계가 있던 자리를 금색으로 칠했다.

혁신의 상징인 ATM은 반백 살을 넘기면서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환경 변화 때문이다. 껌 한 통도 카드로 살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현금 이용이 줄었고, 인터넷 뱅킹이나 간편송금 서비스도 널리 보급됐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ATM 설치 대수는 3만3944대로 집계됐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3년(7만5094대)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났다.

시대변화를 거부하고 ATM 사용만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들이다. 이들은 금감원이나 검찰을 사칭하면서 인터넷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을 속여 돈을 송금하게끔 한다. 대개 “전화를 끊지 말고 ATM 앞으로 가서 안내에 따르라”고 한다. 자칫 창구에서 송금하게 했다가는 은행 직원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단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면서 ATM 비유를 들었다. 그는 지난 13일 “시민 혈세로 채운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ATM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시절부터 10년간 이어진 시민단체 보조금·위탁 사업에 1조원 가까운 돈이 방만하게 사용됐다는 주장이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이 다른 단체들을 챙겨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박원순 지우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삐딱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오 시장의 지적의 타당했는지 아닌지, 철저한 감사를 통해 밝혀내면 된다. 시민들도 그걸 원하지 않을까. 예금주(시민)에게 거래 내역을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보이스피싱 일당처럼 ATM으로 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