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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 부딪히고 위협받고...'보행자 안전' 실종된 횡단보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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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21 안전이 생명이다] ⑥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차량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 1]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차량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 1]

 #. 지난달 30일 오전 7시 50분쯤 경주시 동천동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교 5학년 A양이 우회전하던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A양은 개학식을 맞아 등교하던 길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트럭운전자는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인데도 무리하게 우회전을 시도하다 A양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 부산에선 승용차 운전자가 보행자들이 건너고 있던 횡단보도로 밀고 들어온 데 이어 항의하는 보행자를 쫓아가 위협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지난달 18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일로 당시 운전자는 "차가 오면 사람이 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15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8~2020년) 교차로 내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모두 2만 2200건으로 사망자는 469명에 달한다.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도 2.1명으로 다른 교차로 사고보다 높았다. 일반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크게 늘어난다.

 지난 5월 춘천시 효자동에서 발생한 보행자와 차량 충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지난 5월 춘천시 효자동에서 발생한 보행자와 차량 충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서 겪는 위험과 고충은 앞서 공단이 실시한 두 가지 실험에서도 입증된다. 공단은 지난 4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운전자들이 일시정지 의무를 지키는지 확인했다. 조사는 서울 종로구의 진출입로와 단일로, 어린이보호구역 등 5곳에서 이뤄졌다.

 그 결과 보행자가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185차례 길을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고 시도하는 동안 차량이 정지한 사례는 단 8회에 불과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모든 차량은 일시정지토록 규정돼 있다. 위반하면 과태료 7만원(승용차 기준)이 부과된다.

 특히 왕복 2차로에 있는 무신호 횡단보도에선 79명의 운전자가 모두 차를 멈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보행자는 이들 차량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겨우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5월에 서울 시내 6개 교차로에서 실시한 '차량 우회전 시 보행자 횡단 안전실태 조사' 결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체 823대의 차량 가운데 우회전 때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어도 양보하지 않고 그냥 통과한 경우가 53.8%(443대)에 달했다.

 나머지 380대(46.2%)는 양보한 거로 분류됐지만, 이 중 58%는 차를 멈추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면서 위협적으로 보행자의 빠른 걸음을 재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전체 조사대상 차량의 81%가 보행자 안전에 위협이 됐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보행자의 안전한 횡단을 위해선 운전자의 의식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안내판 설치 등 횡단보도 주변 정비도 요구된다. 주요 교차로 등에 '우회전 시 보행자 주의' 등의 문구가 담긴 안내판을 게시하는 게 대표적이다.

우회전 시 보행자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판.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우회전 시 보행자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판.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공단 교통안전처의 강경석 차장은 "우회전 때 위험이 있는 교차로 28개소를 대상으로 보행자 보호를 위한 안내판과 스티커를 붙였더니 차량이 보행자에게 양보한 비율이 12.8%p 증가했다"고 밝혔다.

 권용복 공단 이사장은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는 순간 보행자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며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보이면 차를 반드시 멈춰달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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