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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오히려 한국 기업 살리는 길" '50주년' 그린피스 수장이 밝힌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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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열린 그린피스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제니퍼 모건(Jennifer Morgan) 국제본부 사무총장. 사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독일에서 열린 그린피스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제니퍼 모건(Jennifer Morgan) 국제본부 사무총장. 사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탄소중립. 최근 한국 사회에서 떠오르는 화두다. 국회는 지난달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하한선을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정한 법을 통과시켰다. 환경부는 내년도 탄소중립 관련 예산에만 약 5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7월 유럽연합(EU)이 이른바 '탄소국경세'를 발표하는 등 해외에서의 탄소중립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국제본부 사무총장 인터뷰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산업계에선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으로 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반대로 시민단체에선 "정부 목표가 국제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입장도 여기에 속한다.

그린피스는 1971년 9월 15일 핵실험에 반대하는 12명이 보트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정확히 50년이 지난 현재 57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환경단체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 들어선 '탈(脫) 탄소' 운동, 즉 탄소중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그리는 한국 탄소중립의 미래는 뭘까.

중앙일보는 그린피스 창립 50년을 맞아 '수장' 제니퍼 모건(Jennifer Morgan) 국제본부 사무총장에게 직접 의견을 물었다. 독일 출신인 모건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국제정치ㆍ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세계자원연구소(WRI)와 세계자연기금(WWF) 등을 거쳤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2016년 1월 26일 G20 정상회의에 맞춰 기후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 상공에 'Planet Earth First'라는 메시지가 걸린 열기구를 띄웠다. 사진 그린피스

그린피스는 2016년 1월 26일 G20 정상회의에 맞춰 기후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 상공에 'Planet Earth First'라는 메시지가 걸린 열기구를 띄웠다. 사진 그린피스

"탄소중립은 한국인들을 안전하게 할 뿐 아니라 한국 기업을 살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최근 기후 재앙을 직접 겪은 미국, 유럽 등과 달리 한국은 아직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합니다."

9일 화상으로 만난 모건 사무총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탄소중립은 환경, 경제 모두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가 한국 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이 받는 압박은 점점 커진다"면서 "애플 등 RE100(기업들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운동)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도 협력업체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고 요구한다. EU도 내연기관 자동차를 팔지 못하게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러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기회로 바꾸라는 주문이 담겼다.

2016년 북극을 항해한 제니퍼 모건 사무총장. 사진 그린피스

2016년 북극을 항해한 제니퍼 모건 사무총장. 사진 그린피스

탄소중립 전환 '과속'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산업계 목소리에 대해서도 반론을 펼쳤다. 모건 사무총장은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 그룹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의 2.6도 상승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2050년 GDP(국내총생산)는 지난해 대비 184조3000억원(9.7%) 감소한다"면서 "늦게 대응할수록 한국 경제의 피해는 더욱 커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선 이젠 국제 사회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유럽 5개국과 포르투갈의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합쳐야 겨우 한국 수준이 된다"면서 "한국은 아직 경제 수준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금보다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되는 2030년 NDC 수치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모건 사무총장은 "2018년보다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여야 한다. 탄소중립 목표를 높게 세워야 한국인들의 안전과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은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결정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NDC를 결정하는 탄소중립위원회의 의견 수렴 절차를 두고 한 발언이다. 장기적인 환경 정책을 결정하는 데 단순한 다수결 방식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7월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7월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뭘까. 그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검증된 답이다. 100%로 단번에 갈 수는 없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꾸준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공개된 기후변화에 따른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2050년이 오기 전 북극 빙하가 모두 녹아내리는 일이 발생할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모건 사무총장이 지켜본 기후 위기는 보고서 문구 그 이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답은 전 세계 모두의 탄소중립 노력뿐이다.

"아마존 일부 지역은 이미 온실가스 흡수원이 아닌 배출원으로 변했습니다. 산호초 대규모 파괴와 마다가스카르의 극심한 가뭄ㆍ기아도 현실화됐습니다."

지난 7월 독일에서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홍수 현장. AP=연합뉴스

지난 7월 독일에서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홍수 현장. AP=연합뉴스

50주년 맞은 그린피스는

50년 전인 1971년 12명의 활동가들이 알래스카의 암치트카 섬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핵실험을 막기 위해 낡은 낚싯배에 오르면서 시작된 국제 환경단체. 'GREENPEACE'라는 이름을 새긴 이 낚싯배는 전 세계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다음 해 핵실험은 중단됐다. 현재 그린피스는 전 세계 57개의 국가와 지역에 사무소를 두고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아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는 10년 전인 2011년 개소해 기후 참정권, 탈원전, 플라스틱제로, 해양보호 등의 캠페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71년 9월 15일 그린피스의 첫 항해 당시 사진. 사진 그린피스

1971년 9월 15일 그린피스의 첫 항해 당시 사진. 사진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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