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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파이브아이즈'에 "냉전 산물" 美 견제..北 미사일은 두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방한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미국 주도의 정보 동맹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도 군사활동을 한다"고 두둔하거나 "한반도 상황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국이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도착한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도착한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파이브아이즈' 비판하며 美 견제

왕 위원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견제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한국이 중국보다 미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한국은)미국을 선호하든 중국을 선호하든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맞지 않냐"며 애매모호하게 반문한 뒤, "분명한 건 중국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과의 관계 설정은 한국이 결정할 일이지만,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저해해선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들릴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실제 왕 위원은 미 의회를 중심으로 5개국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에 한국을 포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선 대놓고 비판을 쏟아냈다. "(파이브아이즈는) 완전히 냉전 시대의 산물로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면서다. 중국은 동맹국과 우방국들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대해 "냉전 시대의 잔재"라며 반발해 왔다.

왕 위원은 한국을 찾기 직전 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를 순방했는데, 지난 10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미국을 겨냥해 "역외 세력의 개입과 도발을 공동으로 경계하고 저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을 연 모습.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을 연 모습. 뉴스1.

北 미사일 발사 두둔.."대화 재개 노력해야"

북한에 대해선 왕 위원은 시종일관 우호적인 자세였다. 지난 11~12일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그는 "북한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군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대화를 재개하는 방향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사실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럴수록 외교적 관여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군사활동'은 한ㆍ미 연합훈련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은 왕 위원의 해당 발언으로부터 약 두 시간 뒤인 이날 낮 12시 38분과 43분 동해 상으로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우호국의 외교 수장이 공식 방한 일정 중에 무력도발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탄도 미사일 발사 계획을 중국에 사전에 알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왕 위원과 정 장관은 오찬 직전 소인수 친교 회담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양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상황 개선, 대화 재개 등 남북 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한 왕 위원은 "일방의 군사적 조치가 한반도 상황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국들이 자제할 것"을 언급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중국은 과거에도 북한의 무력 시위에 대해 '각방냉정(모든 당사자의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며, 북한이 도발에 나서는 원인이 외부에도 있다고 지적하는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곤 했다.

한편 왕 위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 참석 가능성도 사실상 열어뒀다. 그는 "중국은 주최국으로서 각국 지도자를 초청할 수 있는지 IOC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IOC는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내년 말까지 정지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북한은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자격이 없지만, 왕 위원은 김 위원장 초청에 대해서는 이와 별개로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中 '칭랑' BTS 영향 없도록" 당부했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양자 관계 평가와 실질 협력과 관련한 논의가 회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방탄소년단(BTS) 등 한국 인기 가수의 팬클럽 소셜미디어 계정이 정지되는 등 중국 당국이 벌이는 '칭랑 특별행동'(淸朗ㆍ연예계 정화운동)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정 장관은 최근 BTS가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돼 오는 21일(현지시간) 열리는 유엔 총회에도 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다는 사실 등을 왕 위원에게 직접 소개했다.

그러면서 중국 내에서 이뤄지는 '칭랑' 관련 조치들이 문화교류의 원활한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중국 측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왕 위원의 답변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은 칭랑 특별행동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 회담에서도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이로 인해 촉발됐던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규제) 관련 논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 관련 논의는 짧게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양국 정부가 문화 교류를 추진하다 보면 일반 부문 교류도 활성화해도 좋다는 신호가 되리라고 보고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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