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추석을 앞두고

중앙일보

입력 2021.09.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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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설 인사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석이 코앞이다. ‘추석’이라 하면 명절로만 인식되는데, 한자를 가을 ‘추秋’에 저녁 ‘석夕’이라 쓰는 걸 보면, 가을은 저녁이 가장 좋고, 또 가을 저녁이 가장 좋은 때가 추석 즈음 인가보다. 여기에 둥글고 밝은 달까지 있으니, 이 또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리라.

하지만 가을 저녁이 제아무리 좋고 밝은 달 바라보며 소망을 속삭이고 싶어도 코로나 시국인지라 귀경도 못하고 만나기 어려우니, 안부를 묻는 것조차 심드렁하고 흥이 나질 않는다. 출가한 나도 이러할진대, 인사할 곳 많은 세상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가을 저녁이 가장 좋다는 추석
가족과 함께 좋은 대화 나누고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 가져보길

얼마 전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이런 문자가 왔다. “이제 추석이 다가오는데, 해마다 추석 전에 시골에 벌초하러 가면 형제들 사촌들 다 모였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올해도 못 가니 친척 간 일 년에 한 번 모임도 못하고 제사 차례 한 번도 못 지냈네요. 시부모님 다 돌아가시고는 명절이 너무 쓸쓸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못 모이니 고향이 더 그리워집니다.”

명절에 시댁과의 갈등 사례가 종종 뉴스에 나오긴 해도 역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구나 싶다. 그건 그렇고,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을 못 보거나 가족 때문에 속상해진 분들은 간혹 나처럼 출가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어느 때고 스님들은 속이 편해 보이나 보다. 나를 보고도 “무자식 상팔자여~”라며 웃음 짓는다. 뭐 우리야 마음이 안 편할 것도 없긴 하지만, 자식 있고 가정 있는 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우리가 모를 기쁨이 있지 않을까?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는 것이지, 세상 어디에 좋은 일, 행복한 일만 있겠는가. 우리가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바세계(忍土)가 다 고통의 바다(苦海)인 것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힘이 되는 존재가 있다면 다름 아닌 가족일 것이다. 그런 가족을 소중히 보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이들에겐 가족을 마치 소 멍에처럼 벗어버리고 싶은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우리는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예전에 인도의 성자 슈리 라마크리슈나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생선 파는 여인과 꽃을 파는 여인이 장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다행히 꽃 파는 여인 집이 가까워 둘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생선 파는 여인은 그곳 잠자리가 영 불편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여인은 그 꽃바구니를 치우고 생선 담았던 그릇을 놓아두고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좋든 싫든 우리는 가족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이란 늘 친숙하고 오래된 것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서는 희생하기 싫어해도, 가족 사이에서는 희생을 마다치 않을 정도로 헌신적인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이야 물론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헌신까진 아니어도 가정에서는 역시 ‘좋은 대화’가 필요하다. 갈등에 부딪칠 때뿐만 아니라,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말을 해야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또 대화를 많이 한다는 분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자 일방적으로 말할 때가 있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대화는 그저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이지, 좋은 대화가 아니다.

더욱이 명절이 다가오면, 사소한 말로 인해 자존심 상하고, 상처받아 화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혈육 간 다툼이 오래되어 적대감이 사그라지지 않고, 집안의 화목을 깨뜨렸다고도 말한다.

사실 가정불화는 무관심보다는 집착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네 책임이 되는 거야’라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많이 길들인 사람들끼리 서로 책임을 다하느라 힘든 모양새다.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편안하게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 텐데, 그게 그리 쉽지 않은가보다.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내가 가정 화목에 대해 말하자니 어딘가 어색하지만, 어쨌든 나의 눈에도 가족 간에 갈등의 골이 깊은 모습은 좋은 시간을 아깝게 낭비하는 듯 보인다. 세네카가 말했다. “사람들은 가진 재산을 지키려고 구두쇠처럼 굴지만, 정작 무엇보다 아껴야 할 시간을 낭비할 때만큼은 더없이 관대해진다”고. 아름다운 가을 저녁, 추석이 오면 모두가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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