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정부가 다 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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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이쯤 되면 ‘국가(정부)만능주의’다. 요즘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법과 정책을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헌법 119조는 경제의 기본 질서를 담고 있다. 1항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에선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경제 규정한 헌법 119조
시장 실패의 정부 역할도 명시
최근 정부의 과도한 개입 많아
정부 만능주의는 시장에 피해

1항이 자유경쟁에 기반한 시장경제를 규정하고 있다면 2항은 시장의 실패에 대한 ‘국가(정부)의 역할’을 담고 있다. 1987년 헌법 개정 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설계했다고 해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기도 하는 2항은 ‘경제 민주화’냐 ‘경제 운영의 민주화’냐로 해석의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세 가지 조건(경제 성장과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 아래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명시하고 있다.

새삼스레 헌법 이야기를 꺼낸 건 요즘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과도하게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헌법에 119조 1항은 없고 2항만 있는 듯하다. 우선 부동산 정책이 그렇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자 정부는 힘으로 시장을 누르려 했다.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고강도 규제를 쏟아냈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보증금이 뜀박질하는 전세도 씨가 말랐다. 서민의 주거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핵심(공급 대책) 없는 규제는 집값만 올릴 뿐이라는 비판에 공급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실제 공급까지는 더디기만 하다.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으로 카카오페이가 보험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고승범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으로 카카오페이가 보험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고승범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그동안 부동산 시장은 집값 상승→규제→집값·전셋값 급등→고강도 규제→집값·전셋값 상승, 매물 감소→대출 급증 과정을 거쳐왔다. 요즘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1000조원을 넘어서자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그래도 감소세가 누그러지지 않자 전세대출과 마이너스통장(한도 1억→5000만원)까지 손댔다. ‘풍선효과’ 탓이다. 규제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면 또 다른 규제가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셋값이 오르니 대출이 늘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서민의 외침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돈이 부족한 무주택자, 생계형 대출을 받아야 하는 서민 등은 이미 돈줄이 말랐다.

정부가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누구나집’도 마찬가지다. 임차인은 집값의 10%만 내고 10년간 거주하면 입주 때 미리 정한 집값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문제는 임차인에겐 혜택인데 민간 사업자에겐 불리하다는 점이다. 임차인은 10년 뒤 집값이 내려가면 분양받는 걸 포기할 수 있다. 그 손실은 사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 민간 사업자가 있을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는데도 정부는 강행한다.

각종 사안에 정부의 개입이 늘다 보니 씀씀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7년 400조5000억원이었던 본예산은 5년 새 50% 이상 늘었다. 정부 지출 증가로 민간 투자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Crowd-out Effect)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부동산만 해도 지난해 건설공사 가운데 공공부문이 발주한 공사액은 80조원으로 전년보다 4조원(5.1%) 늘었지만, 민간부문은 184조원으로 4조원(-1.9%) 줄었다.

요즘 정부와 여당의 ‘플랫폼 기업 때리기’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재벌 때리기’는 식상하니 ‘빅테크 때리기’로 표를 얻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한다. 금융회사 등 다른 기업이 플랫폼 기업의 영역 확장 허용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할 때는 묵묵부답이었다가 이제 와서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니 ‘행동’에 나서고 있어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카카오 관련 44건, 네이버 관련 32건의 기업결합을 심사해 모두 승인했다.

잘못된 정책을 덮으려 다른 정책을 쓰는 건 신뢰도 얻지 못하고 효과도 덜하다. 시장이 만능이 아니듯, 정부는 더더욱 만능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규제와 조정’ 권한을 마구 휘두르려 한다. 국민의 마음이 돌아서면 그 어떤 정책도 모래 위에 세운 누각과 같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책 입안자는 헌법 1조 2항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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