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홍준표 예능 전쟁…TV 나온다고 정치 잘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9.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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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SBS ‘집사부일체’ 예고편에 등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 SBS]

SBS ‘집사부일체’ 예고편에 등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 SBS]

“그냥 형이라고 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19일 방송되는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1분 20초 가량의 예고편 동영상에는 윤 전 총장이 요리와 성대모사를 하는 장면이나, “대통령만 보면 싸우고 싶은가요?” “나에게 추미애란?” 등 민감한 질문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윤 전 총장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 국민의힘 대선 주자로서 섭외됐다. ‘집사부일체’ 측에 따르면 윤 전 총장 외에도 이낙연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출연 예정이라고 한다. ‘집사부일체’는 각 분야 ‘사부’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바야흐로 대선 예능의 시간. 주요 대선 주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대국민 홍보에 돌입하는 시기다.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 역사는 길지 않다. TV 예능에 정치가 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뒤 정치 풍자가 허용되면서부터다. 다만 이때는 이주일·최병서 등 개그맨들이  정치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는 정도였다.

2017년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에 출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 SBS]

2017년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에 출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 SBS]

실제 정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뛰어든 기점은 2011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장이 MBC 예능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 정치 출마 목소리가 높아졌고,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선이 열린 이듬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SBS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고, 여야를 대표하는 유력 대선후보의 흔치 않은 발걸음에 이목이 쏠렸다.

이후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는 잦아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시즌2에 부인과 함께 출연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8년 TV조선 ‘아내의 맛’에,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2019년 KBS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고정출연했다.

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둔 1월엔 여야의 예비후보였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3월엔 이낙연 의원이 MBC 파일럿 토크쇼 프로그램 ‘누가 누굴 인터뷰’에, 6월엔 홍준표 의원이 tvN 예능프로그램 ‘곽씨네LP바’에 각각 출연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인지도 효과’다. ‘예능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방송시장의 주도권은 예능으로 넘어간 상황. 지상파 3사만 해도 예능프로그램은 48개에 달하지만 드라마는 7개에 불과하다. 예능은 그만큼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콘텐트다. 대선주자로서 TV 예능 출연은 더 많은 보편적 유권자에게 드러낼 기회이고, 인지도를 높일 홍보기회다. 방송 입장에서도 유력 후보가 나올 경우 역으로 프로그램을 홍보할 기회가 된다.

지난 6월 tvN ‘곽씨네LP바’에 출연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사진 CJ ENM]

지난 6월 tvN ‘곽씨네LP바’에 출연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사진 CJ ENM]

또 중요한 것은 ‘이미지 메이킹’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을 통해 소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권위주의적 모습을 깨고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전 의원이 예능에 나와 소탈한 매력을 보여주며 대박을 치자, 너도나도 유사 효과를 누리기 위해 예능프로그램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2012년 한국방송학회에 발표한 ‘정치인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시청자의 정치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힐링캠프’에 등장한 후보들의 인간적 측면, 정치적 이상, 인생 역정 등을 포함한 발언 내용과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부정적 감정을 줄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후보자들로선 출연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치인이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온다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맞추는 이미지만 만들어내는 ‘이미지 정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약은 허무맹랑한데 이미지가 좋아 당선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예능에선 좋은 면만 보여주면서 포장해주기 때문에 정작 정치인의 정치적 진가를 파악하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올 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정치인들이 출연한 것을 두고 “특정 방송사가 예능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부 정치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주며 언론이 선거 시기 지켜야 할 중립성조차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능 출연이 투표에서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는 앞선 연구에서 “(‘힐링캠프’ 시청이) 대통령 선거 참여 의사에는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대선 주자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12월 9일까지만 가능하다.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1조 제1항’에 따르면 “방송은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방송 및 보도·토론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를 출연시키거나 후보자의 음성·영상 등 실질적인 출연 효과를 주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20대 대선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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