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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호정이 요구한다

이낙연과 다른 이재명…이대녀 잡고싶은 그에게 보내는 그림

중앙일보

입력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

이재명 경기지사님.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입니다.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가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지사님께 정책을 제안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보수정당 후보가 이 정책을 받아주리라 기대할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또 ‘젠더 감수성’ 영역에서만큼은 지사님의 경쟁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님께는 조금의 기대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사님을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유를 더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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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년이고, 평범한 노동자 출신입니다. 비교섭단체 정의당의, 그것도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 의원입니다. 그리고 여성입니다. 이런 배경 탓에 누군가는 저를 "약자성의 총합"이라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7월 1일 이재명 지사의 출마선언을 남다른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네 글자  때문입니다.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반가웠습니다.

저는 경기도 성남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자에서 노조 활동가, 정당인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뒤 지금까지도 성남시에, 경기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압니다. 굳이 결단력이라 높게 포장해서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재명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이 그러하듯, 저도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로부터의 가해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 것도 사회생활이라 여겼던 탓입니다. 저의 침묵은 또 다른 가해를 낳았습니다. 제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를 바로잡았다면 지속적 성희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크게 반성했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황망한 비보와 추모의 나날 와중에, 조문 대신 ‘피해자와의 연대’를 선언하는 제 메시지는 그런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박 시장 지지자들의 “저년 잡아라”라는 식의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아니 저를 비롯해 동종·동질·이량의 피해를 경험한 이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수많은 정치인의 조기와 화환의 행렬에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게 저의 몫이라 여겼습니다.

이낙연과 이재명은 다르다 

민주당은 반성과 사과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유통했습니다. 급기야 당헌까지 고쳐 다시 그 자리를 탐했고, 그 선거는 졌습니다. 분명히 기억합니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낙연 후보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은 그 ‘대열’에 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재명 지사님, 성폭력 가해자는 누르고 피해자를 도와주십시오.

이낙연 의원이 지난해 7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된 후 "피해호소인"이라며 2차 가해에 가담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의원이 지난해 7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된 후 "피해호소인"이라며 2차 가해에 가담했다. 연합뉴스

지사님이 내놓은 ‘성평등 정책’을 봤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새롭게 등장한 유형의 성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보였습니다. 이 또한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행 법제를 바탕으로 한 업데이트입니다. 성폭력 근절은 성평등의 필요조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법제 자체의 재편이 절실합니다.

대한민국 형법의 전면 개정을 제안합니다.

180석 슈퍼여당의 힘으로, 성범죄 처벌에 관한 기본법인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의 전면 개정을 약속해 주십시오. 무엇이 성범죄이고, 얼마나 벌해야 하는지. 1953년 제정된 형법은 반세기 넘는 동안 변화하고 발전한 국민적 공감대를 더이상 지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해 8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형법 제297조가 가장 문제입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가 강간의 요건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성폭행 피해자에게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이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찢기고, 터지고, 멍들어 보여줘야만 “너도 좋았잖아”는 세간의 혐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저항이 불가능했거나, 현저히 곤란하지 않았다면 너를 해한 그자는 무죄랍니다. 판례의 경향이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 법제는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지 못합니다.

동의하지 않은 성교는 강간이고, 이는 상식입니다. 이른바 ‘비동의강간죄’를 신설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피해자에게 “동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라”고 요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은 인정되나,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 단정하기 어려워 무죄”라는 따위의 황당한 판결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이대남 잡겠다고 오판 말아야 

위계·위력을 이용한 간음에 고용관계 여부를 따지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강간과 추행 이외의 성범죄를 포괄하지 못하는 제32장의 ‘제목’ 그 자체는 물론 혼인하지 않은 이성간 성관계를 의미하는 ‘간음’, 다른 나라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법정형’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2차 가해와 사이버불링, 스토킹과 데이트성폭력, 딥페이크 등 사후약방문으로 질서 없이 만든 특별법 규정들도 기본법 안에 편입해야 합니다.

반대하는 참모가 있을 겁니다. 무고나 꽃뱀 운운하는 분은 멀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대남(20대 남자)’ 표심의 염려는 시사IN 제729호 '새 정치세력이 온다'를 보면 놓으실 수 있습니다. 20대 남성 80.8%, 여성은 93.8%가 성범죄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최근에는 남성 성범죄 피해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주저하는 참모도 있을 겁니다. 연일 승승장구하는 여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이대녀(20대 여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리얼미터의 9월 2주차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오직 2030 여성층에서만 경쟁 후보에 밀립니다. 이대녀 류호정이 고언합니다. 성범죄 처벌 강화를 공약하고,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 선언하는 것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류호정X최재훈 '비동의강간죄'.

류호정X최재훈 '비동의강간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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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러스트레이터 최재훈 작가와 월간으로 그림을 창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첫 번째는 ‘위험의 외주화’로 돌아가신 노동자였고, 두 번째는 ‘노회찬 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그림의 주제는 ‘비동의강간죄’입니다.
이재명 지사님, 무엇이 보이시는지요?

지사님의 답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