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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출발" 독촉…택시기사 눈 썰미가 보이스피싱범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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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택시기사 A씨(50)는 지난 8월 4일 오후 1시쯤 인천시의 한 지하철역에서 50대 남성을 태웠다. 이 손님은 행선지도 말하지 않고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정확한 행선지를 묻자 우물쭈물하던 손님은 A씨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메시지 창에는 보이스콜 통화 내역이 가득했다. 메시지 내용은 달랑 ‘석수역 X번 출구’ 뿐이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도 저장되지 않아 전화번호만 보였다.

수상함을 느낀 A씨는 운전을 하면서 손님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쇼핑백에서 돈뭉치를 꺼내 세는 것을 보고 ‘범죄자’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자 경찰에 신고했다.

A씨의 ‘촉’이 맞았다. 조사 결과 손님 B씨는 이날 은행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해줄 테니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속여 피해자 C씨에게 1100만원을 받아내는 등 2차례에 걸쳐 2180만원을 가로채 수거책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B씨를 구속했다. A씨는 신고보상금으로 30만원을 받았다.

A씨는 “보통 택시를 타면 정확한 행선지를 말하는데 B씨는 계속 '출발하라’고 해 도망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B씨가 돈을 세는 것을 보고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상한데…" 택시기사들의 눈썰미

경기남부경찰청은 최근 택시 기사 신고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거나 현금 수거책을 검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계좌 이체형 보이스피싱에 대면 편취형으로 진화하면서 피해자나 현금 수거책이 택시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면 편취형 보이스피싱 범행은 지난해 1~7월 1261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2920건으로 전년 대비 131.6% 증가했다.

50대 택시기사 D씨는 지난 8일 남양주시에서 60대 초반의 남성을 차에 태웠다. 손님은 “급하니 서둘러달라”며 출발을 종용했다. 목적지인 여주시에 도착해선 도착 장소를 계속 바꿨다. 요금이 10만원 가까이 나왔는데도 현금으로 결제했다.

한 차례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잡는 데 도움을 준 경험이 있던 D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출동한 경찰은 손님의 가방에서 현금 1060만원을 발견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14차례 걸쳐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4억5000만원을 가로챈 뒤 수거책에게 전달했다. 당시도 다른 곳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여주에 있는 또 다른 피해자에게서 돈을 받으려고 택시에 탔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주경찰서는 이 손님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D씨에게 신고보상금 50만원과 감사장을 전달했다.

지난달 10일에도 충북 음성에서 손님을 태우고 평택으로 이동하던 기사가 “1200만 원을 인출해 전달한다”는 수상한 통화 내용을 듣고 몰래 신고했다. 이 손님도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상한 행동·통화하는 승객 신고해달라”

경찰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이나 수거책이 주로 택시로 이동하는 만큼 택시기사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택시에 승차한 손님 중 각 금융기관(은행)을 돌며 ATM기를 이용하여 출금·송금을 하거나 돈을 받아 어디로 가고 있다거나, 현금을 전달한다는 통화 내용, 돈 가방 및 봉투를 소지하고 택시에 탑승한 손님, 택시요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는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전달책이거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택시기사의 신고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거나 범죄자를 검거할 경우 신고보상금도 지급한다. 사기죄를 기준으로 검거 기여도와 예산 상황 등 따라 최대 375만원의 신고보상금을 준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수상한 손님이 탑승했다면 112에 전화나 문자로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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