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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북한 순항미사일과 한국 국정원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한의 크루즈 미사일 시험발사와 한국 정보기관 수장의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국방과학원이 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국방과학원이 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오늘 아침에 배달된 중앙일보를 펼치면 1면에 크게 두 개의 기사가 보이실 겁니다. 왼쪽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조성은씨의 만남과 관련한 기사가, 오른쪽에는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에 대한 것이 실려 있습니다. 국가 안보의 현실을 절묘하게 상징합니다.

순항미사일(크루즈 미사일)은 제트 엔진과 날개가 있어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미사일입니다. 걸프전 때 미군의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이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토마호크는 도끼를 뜻합니다. 던져서 먹잇감을 사냥하거나 적을 해치는 데 쓰인 북미 원주민의 도끼가 원조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토마호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사일보다 뼈가 달려 있어 도끼와 닮은 고기 덩이를 먼저 떠올릴 듯합니다.

미군은 이라크·리비아 공습 초기에 토마호크를 다량으로 날렸습니다. 주요 군사시설에 ‘도끼질’을 가해 방공 능력을 마비시켰습니다. 그 뒤에 서방의 전폭기가 투입됐습니다. 매우 효과적인 기습 전술임이 입증됐습니다. 북한이 토마호크와 비슷한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위협적입니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능력을 갖추면 순항미사일을 전술 핵무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순항미사일은 발사와 비행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탄도미사일처럼 발사 때 큰 화염이 발생하지 않으니 인공위성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크기가 작고 저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레이더에 쉽게 포착되지도 않습니다. 과거에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한 보고에는 북한 내부의 통신ㆍ교신 정보 입수가 순항미사일 발사 사전 징후 포착에 중요하다고 돼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한국의 군과 정보기관이 11일과 12일의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탐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분석 중”이라고만 합니다. 지난해 4월에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는 군이 당일에 포착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놓친 게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그랬다면 국가의 정보 수집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쯤에서 중앙일보 1면의 왼쪽 기사와 관련한 이야기로 가 보겠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 제기자인 조성은씨가 지난 8월에 롯데호텔 38층 일식당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는 조씨가 SNS에 올린 사진과 글 때문에 확인됐습니다. 국가 정보기관 수장의 동선이 이렇게 드러납니다.

조씨는 지난 2월에는 국정원장 공관에 가서 박 원장을 만난 뒤에 공관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라 주변 배경이 다 보입니다. 국정원장 공관에서 손님의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8월의 호텔 회동이 '정치 공작'을 위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받자 조씨와 박 원장은 공히 “사적인 대화만 했다”고 합니다. 국정원장의 ‘순수한 사적인 만남’을 위해 공적 예산과 경호 인력이 그렇게 쓰여도 되느냐는 물음이 나옵니다. 국정원장이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면 국정원 요원들이 전날부터 도청 방지 등의 보안 점검을 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정보 취득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식사를 하는 데 수백 만원의 세금이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끊임없이 무기 실험을 하는데 우리의 정보력은 믿음직스럽지가 못합니다. 국가의 정보력을 관장하는 국정원장은 북한이나 테러 조직이 그의 주변인 SNS만 열심히 뒤져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생활을 합니다. 나라의 틀에서 나사가 한두 개씩 계속 빠지는 느낌입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은 없었습니다. 국정원장만큼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북한판 토마호크 연이틀 쏴도 몰랐다

 북한이 11일과 12일 이틀간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는데도 한·미 당국은 이를 사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소식통은 “한·미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가 나온 후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번엔 사전 탐지도, 사후 탐지에도 실패했다”며 “군과 정보 당국이 당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국방과학원은 9월 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장거리 순항미사일들은 우리 국가의 영토와 영해 상공에 설정된 타원 및 8자형 비행궤도를 따라 7580초를 비행해 1500㎞ 계선의 표적을 명중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시험발사를 참관하지 않았다.

북한이 공개한 7580초는 약 126분으로 두 시간 넘게 순항미사일이 비행했는데도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또 사거리 1500㎞는 서울은 물론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까지 공격할 수 있는 거리다. 북한이 공개한 대로라면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미국의 토마호크, 한국의 현무-3C와 유사한 무기체계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호주 외교·국방 장관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공조하에 북측의 의도와 제원 등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의용, 유감 표명도 없이 “북한과 대화 시급함 보여줘”

정 장관은 이어 “북한과의 대화, 관여, 외교가 시급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덧붙혔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도 우려나 유감 표명은 전혀 없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도 1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 보도를 알고 있다”며 “상황을 계속 감시하고 있고 동맹,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는 북한 국방과학원 시험장이 있는 평북 철산, 평북 태천, 함북 무수단 중 한 곳에서 발사했다는 추정 이외에 별다른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미 당국이 이처럼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한 원인과 관련해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감시체계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비해 느슨하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1월 22일과 3월 21일 평북 구성과 온천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2발씩 발사했으나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저고도로 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의 특성도 있다. 군 관계자는 “순항미사일의 고도가 워낙 낮아 레이더망에 포착 안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동굴 같은 곳에 TEL(이동식 발사대)을 숨겼다가 갑자기 나타나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뒤 숨으면 탐지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종말 단계에서 회피 기동이 가능한 ‘북한판 이스칸데르’에 이어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함에 따라 유사시 발사 전에 미사일을 타격하고,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핵·WMD 대응 체계(3축 체계)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할 경우 순항미사일에도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은 앞으로 전술핵을 이 순항미사일에 탑재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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