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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한국말로 책 2권 "10살 뒤엔 외국어 불가? 날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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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로버트 파우저 교수. 2017년 한국에 있을 당시 촬영했다. [본인 제공]

로버트 파우저 교수. 2017년 한국에 있을 당시 촬영했다. [본인 제공]

미국인이 한국어로 390쪽 분량의 책을 썼다. 그것도 두 권. 이달 초 발간된 『외국어 학습담』과 『외국어 전파담』(혜화1117)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60). 미국 동부에서 나고 자란 그는 ‘토종 미국인’이다. 그런 그의 주요 경력 중엔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일본 가고시마(鹿兒島)대 한국어학 조교수, 일본 교토(京都)대 영어교육학 조교수 등이 있다. 한국어에 통달하기 전 일본어를 먼저 배운 그는 자칭 ‘외국어 순례자’다. 서울대 재직 당시엔 중앙일보 중앙SUNDAY의 인기 객원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한옥에 빠져 직접 거주하는 과정에서 겪은 행정 절차에 대한 아쉬움 등을 진솔하게 다룬 그의 칼럼은 큰 공감을 얻었다.

당시에도 그는 칼럼을 직접 한국어로 보내왔고 기자와의 최소한의 윤문 과정을 거쳐 게재했다. 그런 외국인 칼럼니스트는 지금도 보기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로드 아일랜드에 발이 묶여 있지만, 하루빨리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는 그를 지난 12일 전화와 e메일로 만났다. 물론, 한국어로 진행했다.

한국인도 한국어로 390쪽에 달하는 책을 쓰기는 쉽지 않은데요.  
“저도 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있으면서 한국어의 감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외국어 실력을 유지하려면 계속 사용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책에도 쓰셨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건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닌데요. 한국어와 일본어 학습담을 들려주신다면.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비슷한 듯하면서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일본어의) 경어(敬語)와 (한국어의) 존댓말은 비슷해 보여도 기준이 다릅니다. 한국어는 나이가 기준이지만 일본어는 친밀감과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거리가 기준이거든요. 일본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는 게 그런 맥락이지요. 그 차이가 어려웠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점차 익숙해졌지요.”
파우저 교수가 한국어로 쓴 신간 두 권. 모두 390쪽이 넘는 대작이다. [혜화1117 출판사 제공]

파우저 교수가 한국어로 쓴 신간 두 권. 모두 390쪽이 넘는 대작이다. [혜화1117 출판사 제공]

그의 책 『외국어 학습담』은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화와 꿀팁, 통찰력으로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콘텐트다. 개정판인 『외국어 전파담』은 한 나라의 언어가 비단 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국가의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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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영어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데요.  
“지난 11일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북토크에서도 관련 질문이 많았어요. 크리티컬 피리어드(언어학에서 외국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라고 정의하는 10세 안팎)가 지나면 영어를 잘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등의 내용이었죠.”  
선생님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좋은 사례네요. 일본어를 처음 접하신 건 10대 후반, 한국어는 20대였죠.  
“네, 크리티컬 피리어드가 지났기에 언어 습득이 불가능하다?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에선 아무래도 발음을 좋게 하려고 노력을 하시는 거 같은데, 고백하자면 저도 발음 좋다는 얘기를 원어민에게 들으면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 발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지금 사는 (미국) 동네에서도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스페인식 영어를 쓰고, 어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인도식 영어를 구사하죠. 하지만 말이 통하면 되는 거죠. 그 기사와 의사에게 영어 발음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아 물론, 그래도 발음 공부하는 거 저는 좋아합니다(웃음).”  
그의 한옥 사랑은 남다르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때 한옥에서 직접 거주하기도 했다. [본인 제공]

그의 한옥 사랑은 남다르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때 한옥에서 직접 거주하기도 했다. [본인 제공]

책에서 한국에선 ‘일왕(日王)’이라 칭하는 존재를 ‘천황(天皇)’이라 표기하셨던데요.  
“국제정치학적으로 깊이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요. 저는 천황제에 반대하는 진보적 일본 학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단 일본에서 그렇게 지칭하고 있기에 일본의 한자 그대로를 옮긴 것이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영왕(英王)’이라고 칭할 수는 없지 않나요.”  
한국어 표현 중에 좋아하는 걸 꼽으신다면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왜냐면 너무 많거든요. 하나만 꼽자면 ‘우리’라는 말이요. 예를 들어 학회에 나가면 ‘우리 선생님’이라거나 ‘우리 교수님’ 이런 식으로 불러줄 때가 있잖아요. 아주 친하거나, 가족 관계가 없더라도, 당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우리’라는 말을 붙이는 게 너무 좋아요. 미국에서는 굉장히 좁은 의미로만 ‘우리’를 사용하니까요.”  
‘우리 작가님’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웃으며) 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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