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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중국 눈치 보다가 또 좋은 기회 놓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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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국이 서방 5개국 정보연합체인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이 가입하는 득실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Pixabay

미국이 서방 5개국 정보연합체인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이 가입하는 득실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Pixabay

현 정권은 때만 되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노래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에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안보 동맹을 넘는 보편적 가치 동맹"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하지만 진심은 말 아닌 행동에서 나오는 법. 이번 정권은 한·미 동맹을 다지기는커녕 약화하는 일을 거듭해 왔다. 북·중의 눈치를 살피느라 한·미 동맹을 거추장스러운 계륵(鷄肋)처럼 대한다.
지난 7일 서방 5개국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 (Five Eyes)' 참여 문제와 관련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논의는 현 정권의 본심을 보여줬다. 이날 외교부 질의에 나선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파이브 아이즈 가입을 검토했느냐고 물었다. 최근 미 의회가 한국·일본·인도·독일을 참여시키는 게 좋을지 연구해 보고하라고 바이든 행정부에 요구한 까닭이다. 이 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참여한 정보공동체. '에셜론(ECHELON)’이란 세계 최대의 감청 프로그램 등으로 수집한 안보 기밀들을 공유한다. 따라서 여기에 참여하면 미국의 최고 동맹국으로 격상하는 동시에 선진 5개국으로부터 극히 민감한 도청 자료 등을 얻을 수 있다. 우리로서는 월등한 정보 자산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금도, 지금까지 검토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과도 건전한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가입하지 말 것을 주문한 셈이다. 막대한 이익이 기대되는데도 중국 때문에 쿼드(Quad·4개국 협의체)에 이어 파이브 아이즈에도 우리는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이에 비해 일본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은 수년 전부터 "여섯 번째 눈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맹렬히 로비를 펴왔다. 지난해 8월 영국 정부가 일본 가입을 추진 중이란 보도가 나오자 바로 다음 날 고노 다로(河野太郎) 당시 방위상이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머잖아 일본을 포함한 '식스 아이즈', 아니면 '파이브 아이즈 +1' 가능성이 적잖게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섯개의 눈'이란 뜻의 파이브 아이즈는 냉전 초기인 1946년 민감한 군사·안보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미국과 영국 간 UKUSA 협정이 토대가 됐다. 여기에 1955년 같은 앵글로색슨계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참여하면서 파이브 아이즈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일본 및 다른 NATO 회원국보다 이들 국가를 더 가깝게 여긴다. 파이브 아이즈 가입이 미국의 최측근 동맹으로의 격상을 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정권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중대한 기회를 놓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쿼드 불참,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연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말 부산에 들렀다 한국 해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기로 했던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이 한국에 입항하지 못한 채 재난구호 훈련만 한 것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방역 때문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나 중국 눈치를 본 탓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반면 일본에선 달랐다. 이 항모전단은 중국과 가까운 오키나와 남쪽에서 일본 자위대 및 미 해군과 함께 F-35B 전투기의 이착륙 훈련을 했다. 중국을 겨냥한 영국 해군과 일본 자위대의 첫 해양훈련이었다. 일본과 달리 중국 눈치 보기를 계속한다면 미국이 동맹국으로서의 한국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미·중 간 대립이 격화할수록 자기 편에 서라는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게 뻔하다. 중국의 위상,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비중을 생각하면 신중히 처신하는 게 옳다. 하지만 실(失)보다 득(得)이 분명히 많은 사안에서도 머뭇거리는 건 현명하지 않다. 게다가 중국은 베이징의 입장을 고려한 한국의 선택에 아무런 화답도 보내지 않고 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

여권, 파이브 아이즈 참여 부정적 #일본은 "여섯 번째 눈 되자"며 뛰어 #득 많은 사안, 머뭇거려서는 안 돼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