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직원 250만원, 난 150만원" 운동권서 횟집사장 함운경의 분노

중앙일보

입력 2021.09.14 01:40

업데이트 2021.09.1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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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가 지난 8일 전북 군산의 수산물 판매장 겸 횟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세정 기자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가 지난 8일 전북 군산의 수산물 판매장 겸 횟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세정 기자

전북 군산에 사는 함운경(57) 네모선장 대표. 1985년 5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주도한 그는 386세대의 대표적 운동권에서 지금은 수산물 통신판매와 횟집을 함께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그를 만나러 간 지난 8일 공교롭게도 비과학적 방역 지침에 분노한 자영업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였다. 서울 마포의 맥줏집 여사장과 전남 여수의 치킨집 사장이 생활고를 비관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도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반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서 이미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 제한의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두 번 죽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는 지난 6월 "장사해보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은 사기였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다. 당시 언론에 횟집 사장으로 소개됐지만, 횟집은 최근에 개업했다. 군산 현지에서 만난 함 대표는 "저 같은 사람에게 뭘 볼 일이 있느냐"며 겸연쩍어했다.

 -사업은 언제부터 했나.
 "2016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그해 가을에 멸치 선물세트를 판매했다. 매출이 4000만원까지 올라 본격적으로 수산물을 파는 동네 생선가게를 냈다. 한때 직원을 5명이나 썼지만, 사업이 안 풀려 1명까지 줄였다. 앞서 2011년 조경업을 시작했는데 대금을 못 받아 큰 빚을 졌고 그게 발목을 잡아 2016년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선택을 잘못했고 운도 없었다. 재기하려고 직원 3명을 고용해 횟집을 시작했고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어 가족과는 떨어져 산다."

 -사업을 해보니 어떤가.
 "92년에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자가용을 살 정도로 돈을 벌어봤다. 자영업을 처음 하면서 사람 고용하고 월급 주는 사장님이 진짜 애국자란 생각이 들었다. 월급 때가 너무 빨리 돌아온다. 여직원 둘에게 각 250만원씩 월급을 주고 나는 150만원을 받는다. 최저임금 못 주면 고발당하니 누가 고용하겠나. 정책 따로 현실 따로다."

함운경 대표는 수산물 통신판매 접수를 받기 위해 전화기를 3대나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함운경 대표는 수산물 통신판매 접수를 받기 위해 전화기를 3대나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네모선장 직원들이 온라인으로 통신 판매 신청을 받은 뒤 수산물을 아이스 박스로 포장하고 있다.

네모선장 직원들이 온라인으로 통신 판매 신청을 받은 뒤 수산물을 아이스 박스로 포장하고 있다.

 -현 정권은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다.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겠다는 발상부터 말이 안 된다. 공무원 일자리만 늘려서는 나중에 세금으로 감당이 어렵다. 비정규직을 억지로 정규직으로 만드니 공기업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

 -통신판매 상황은 어떤가.
 "온라인 판매를 하려면 네이버·카카오·쿠팡 등에 입점해야 한다. 쿠팡의 경우 광고비 20% 등 판매액의 30%를 수수료로 부담해야 한다. 마진이 좋은 아이템이 아니면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나.
 "정부는 규칙만 잘 만들고 어기면 벌을 주면 된다. 돈을 열심히 벌려는 사람은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고 플레이어로 나서면 오히려 자생적 사업 생태계가 교란되고 망가진다. 수산물 판매를 늘려준다면서 해양수산부가 특정 업체를 지원하면 거기에 못 끼는 사업자들은 죽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 정부는 각종 금지법을 양산한다.
 "사람의 욕망을 눌러서 행동을 규제하려 하니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실현되도록 북돋워 줘야 한다. 경쟁을 보장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보살펴주면 된다. 부동산 수요는 단순히 집이 아니라 살기 좋은 집이다. 그런 집을 살 수 있게 해줘야지 대출을 틀어막아 수요를 억제한다고 집값이 잡히겠나. 김정은도 '돈주(자본가)'들이 아파트에 투자하도록 해서 새로운 아파트 거리를 만드는 마당에 시장경제 하는 우리는 왜 집 사려는 사람을 괴롭히나."

1985년 5월 23일 서울 미국 문화원을 점거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함운경(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이 창밖으로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민조 사진 선집 '사진이 다 말해 주었다' (눈빛) 지면 촬영]

1985년 5월 23일 서울 미국 문화원을 점거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함운경(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이 창밖으로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민조 사진 선집 '사진이 다 말해 주었다' (눈빛) 지면 촬영]

 함 대표는 군산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군산제일고에 다닐 때 한문 선생님 집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리영희 교수의 책들을 접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서울대 물리학과(82학번)에 진학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고 한다. 1985년 5월 23일부터 2박 3일 72시간 동안 5개 대학 대학생 73명이 서울 을지로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함 대표 등 25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1980년 5·18 당시 미국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고 광주의 비극을 공론화했고 2001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미국문화원 사건이 인생을 바꿨다.
 "1985년 서울 공대생 홍성영이 점거 농성 아이디어를 냈고 운동권 지하 지도부가 프로그램을 짜 놓은 상태였다. 내정된 간부가 못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울대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 위원장이던 내가 가게 됐다. 감옥 갈 순번을 정해놓은 상태여서 구속을 감수해야 했다. 운명이라 생각한다."

 -어떤 세상을 추구했나.
 "문학적으로 소박하게 표현하면 차별 없이 평등하고 공평한 세상이었다. 운동권 용어로 하면 사회주의였을 것이다. 반미 투쟁 차원에서 문화원을 점거했더니 주사파로 몰렸지만, 주사파였던 적이 없다.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20대와 50대의 생각이 똑같으면 되겠나."

 -꿈꾸던 세상이 이뤄졌나.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살기 어렵다며 자영업자들이 자살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 착잡하다. 이러려고 젊음을 바쳤나 싶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낡은 생각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은 옛날 무기였지만 80년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상사회를 만드는 싸움에서 이념 수단이었다. 89년 동유럽이 무너질 때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암암리에 그때의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게 문제다. 86그룹이 모두 부패하고 무능한 것처럼 도매금으로 몰리는데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기록을 꼭 남기고 싶다."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가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의 모습. 대부분 무소속 후보였다.[함운경 카톡 사진 캡처]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가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의 모습. 대부분 무소속 후보였다.[함운경 카톡 사진 캡처]

 함 대표는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서울 관악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자 "고향에 가서 다섯 번 떨어지면 당선될 거다"라면서 낙향했다. 2000년 16대 총선, 2002년 8·8 재보선, 2006년 지방선거(군산시장), 2016년 20대 총선까지 군산에서 네 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그는 99년   『대통령을 꿈꾸는 삼학동 소년』이란 책을 냈다. 그는 "난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주의자다. 공천을 받으려면 (아부라도) 화끈하게 해야 하는데 처세를 잘 못 한다"고 했다.

 -대선이 퍼주기 경쟁 같다.
 "집권 여당은 자기 돈 아니라고 맘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라를 망가뜨린다. 작은 가게부터 기업·국가에는 살림이 있는데 남의 돈처럼 막 쓸 수 있겠나. 정의의 사도처럼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외치는데 열심히 일해 먼저 부를 쌓은 사람을 강자라고 억누르면 실제로는 없는 사람이 더 어려워진다. 돈은 누가 번다는 것인가. 세금 나눠주는 게 나라 경영이 될 수 있나. 한마디로 베네수엘라가 걸었던 '차베스의 길'이다. 이런 방향에 반대한다."

 -적폐 청산 바람이 거셌다.
 "정적 몇 명을 구속한 정치구호일 뿐이다. 86세력은 권력을 잡고도 소수파 비주류처럼 행동한다. 아직도 리영희·송건호의 사고에 빠져서 독립운동 하는 듯하니 '사고의 병'이다. 일본이 물러간 지 76년이 지났는데 조국(전 법무부 장관)이 갑자기 죽창가를 들고나오니 황당했다.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대중동원을 절제해야 하는데 앞장서서 선동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더니 사회주의에 조국이 어디 있나.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거꾸로 배웠나 보다."

 -지금 어떤 공약이 절실한가.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지금은 살림을 조여야 할 시기인데 대통령 후보마다 세금을 더 나눠주겠다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대처·레이건보다 더 강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공무원 감축 등 공공부문부터 개혁해야 하는데 문 정부는 개혁을 떠넘기고 있다."

 -또 정치에 도전할 것인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을 편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치다. 목숨이 붙어 있고 가능성이 있는 한 언제든지 도전할 것이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SF 소설 『해저 2만리』 주인공 네모 선장(Captain Nemo)은 바닷속 보물을 찾아 전 세계 피압박 인민을 도와줬다.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가진 단합된 3%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면 큰일을 해낼 날이 올 것이다."

함운경 대표가 인터뷰 중에 공개한 유언.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서해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장세정 기자

함운경 대표가 인터뷰 중에 공개한 유언.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서해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장세정 기자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함 대표는 고향에 어린이들을 위해 과학도서관을 짓는 꿈을 꾸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수산물 판매업과 횟집 경영으로 큰돈을 벌어서 소설 속 네모 선장처럼 피압박 인민을 구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실패한 혁명가이자 고전하는 자영업자인 함 대표의 생각이 권력을 쥔 다른 86세대 정치인들보다 더 상식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였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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