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중국·인도보다 높은 온실가스 줄여야 통상 장벽 넘어

중앙일보

입력 2021.09.14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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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점점 조여오는 ‘탄소국경세’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국제통상법센터장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국제통상법센터장

지난 7월 14일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법안을 발표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EU가 세계 각국의 상이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높은 규제를 받는 EU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막고, 규제가 적은 국가로 생산설비를 이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EU로 수출하는 제품에 EU 역내 기업들이 부담하는 탄소 비용만큼 추가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U 발표는 전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EU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2026년부터 막대한 추가비용을 부담하게 될 러시아·중국 등이 크게 반발했다. 한국에서도 EU 제도가 또 다른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EU·영국·미국 등 도입·검토 확산
한국도 지난달 탄소중립법 통과
2030년까지 탄소 35% 이상 감축
기업·정부의 적극적인 대처 필요

지난달 31일에는 국내에서도 ‘탄소중립기본법’(약칭)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온실가스 기준치를 초과하고도 이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들에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기업뿐 아니라 정부·공공기관과 개인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규제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일각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오히려 감축 목표치가 EU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시각차에도 분명한 사실은 어느 국가도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회피할 수 없는 점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면서다.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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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국제사회는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국가들을 더는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공동 대응해 왔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일사불란하게 공동보조를 취해 온 것은 아니다. 특히 개도국들은 산업화에 먼저 성공하면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선진국들이 개도국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협약에서 소위 ‘차별적 공동책임과 각자의 능력(CBDR-RC)’에 따른 대응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개도국들의 탄소배출량도 급증했다. 개도국들이 책임의 차별성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주요 탄소 배출국인 미국과 EU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왔지만, 중국·인도·러시아 등 거대 개도국들의 탄소배출은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세계 총배출량의 28%를 차지한다. 얼마 전 선진국 클럽에 공식 가입한 한국의 총배출량은 전 세계 9위 수준이다. 1인당 배출량은 중국이나 인도보다 높다.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

여기에 예상보다 심각한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 기후 대응을 재촉하고 있다. 대기 중에 축적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올해 3월 현재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협의체(IPCC)는 지난 8월, 2021년~2040년 사이에 세계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해서는 2030년경까지 탄소배출을 2010년 대비 45% 삭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도국들 차별 책임’ 원칙 불인정

이런 가운데 발표된 EU의 탄소국경조정법안에서는 외국 수출기업들에 탄소 비용을 부과할 때 개도국을 면제하거나 개도국들의 차별적인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중국 등은 EU 법안이 파리 협정상의 차별적 책임 원칙에 반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차별적 책임을 주장하기에는 기후 변화에 대한 그들의 원인 제공이 너무 크다.

둘째, 탄소국경조정제도는 EU만의 제도가 아니라, 세계 무역질서의 재편을 예고한다. 실제 다른 선진국에서도 EU의 예를 따라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외국 수입품에 탄소 비용 부과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재 미 행정부는 주된 탄소 배출 부문인 발전산업에 대해 ‘청정전력 기준’을 적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특사 존 케리는 지난 7월, 미국은 우선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탄소배출 감축 조처를 하도록 집중하고 있고, EU 국경조정제도와 같은 일방적 조치는 이런 노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지금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대응 ‘선진국 클럽’ 결성될 듯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그렇다고 미국이 탄소국경세 도입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 2월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7월에는 민주당 상원의원인 쿤스와 피터스가 탄소국경조정세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2024년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특정 물품에 대해 미국 내 환경 비용에 상응하는 국경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다만 최빈국이나 미국의 규제 수준에 상응하는 탄소규제를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한다. 이 법안이 당장 통과되기는 어렵겠지만, 미국판 탄소국경세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영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우선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탄소 중립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탄소 국경세를 실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5일에는 캐나다가 CBAM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이미 지방정부나 수출입업자 등 국내 이해관계자들과 탄소국경세 도입을 둘러싼 협의를 시작했고, 미국·EU 등과도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기후대응을 위한 글로벌 룰을 만들려는 선진국 클럽이 형성되는 조짐이다.

셋째, 탄소국경조정제는 새로운 무역규범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EU 제도가 기존 통상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EU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외국의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량에 따라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므로, 생산방법 차이에 따라 동일한 물품을 달리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존 법리에 반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또한 EU 제도가 인간이나 동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 혹은 ‘고갈될 수 있는 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련된 예외적 조치’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바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부른 국제통상규범 재편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갖고 있다. 법과 기술의 논리로 이런 조치의 확산을 저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역 확대나 시장 접근 같은 경제적 가치를 중시해온 전통적인 국제 통상규범에 상당 부분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세계무역질서는 1947년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당시에는 기후 위기가 절박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1947년 이후 오늘날까지 탄소 배출량은 4배 증가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발족 당시보다도 50%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을 무역의 종속가치로 취급해 온 세계통상규범의 재편 내지 재해석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많은 나라들의 탄소국경조치를 도입하는 추세에 대응하여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함은 당연하다. 거시적으로는 외국의 기후 조치에 대한 방어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스스로 기후 변화 대응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이든 개인이든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 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청구해 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부담할 탄소 비용의 증가를 피할 수 없다면, 우리도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막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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