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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덕구가 저격한다

정치하면서 작가인척, 권력쥐고도 피해자인척…이런 유시민

중앙일보

입력

아무리 생각해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매력적이다. 어떤 말을 해도 대중은 넘어가고 만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인' 올 떠난 후 그는 저술과 예능 방송을 통해 86세대에 정치적 수사를 제공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동시에 청년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하는 멘토 노릇도 했다. 현란한 말솜씨와 지성미로 대중을 홀리는 그가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은 현실정치 외부에서 정치에 개입할 때였다. 유시민은 지난 대선 때부터 '어용 지식인'을 자임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해 대중을 설득할 논리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 정부 출범 전후로 4년 넘게 방송인, (자칭) 언론인, 지식인 내지는 작가 유시민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자 소구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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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인기는 당연히 문재인 정부 인기와 연동한다. 그의 인기가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전후 정점을 찍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후 지지율 동향을 분석하며 20대 남성 폄하 발언으로 설화를 겪으며 추락했다. 또 2019년 말 검찰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그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를 통해 ‘검찰의 노무현 재단 계좌 불법 사찰을 주장하며 검찰을 매섭게 비난했다. 1년이 지나 그의 주장이 거짓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그는 마지못해 사과하며 정치 비평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문 정부 방어용 프레임 제공 

지식인 유시민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정권 성공을 위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그는 애초부터 신뢰할만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던 적이 없다.

지난 2020년 7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친 윤석열인)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지난 2020년 7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친 윤석열인)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이런 추문 뒤에도 유시민은 마치 중립적인 지식인이라는 식의 포지션을 취하며 계속 이득을 챙기고 있다. 알릴레오의 책 소개 프로그램에는 최근 『조국의 시간』을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를 초청해 이 출판사가 과거에 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부터 『조국의 시간』까지 두루 살폈다. 언뜻 보면 서평 콘텐트 제작에 집중하면서 인문교양서 작가라는 전공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가 하는 일은 학술 영역을 경유해 86세대가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수난 서사'를 퍼뜨리는 데 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반민주 대립 구도를 노무현 정신-검찰 간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86세대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
유시민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상위 1% 적폐 엘리트가 선량한 ‘우리들'을 탄압한다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집권해 권력을 쥐었으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친여 정치 팟캐스트에서 퍼뜨리는 근거 없는 '썰'이나 음모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관점이다. 한번은 방송에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미국 정부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방송이니 유머 아니겠냐고? 그는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을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수차례 털어놓았다. 방송과 저술을 통해 세련되게 신분 세탁을 했지만 유시민의 글과 말은 여전히 과거 정치인일 때 그랬던 것처럼 객관적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편향된 진실을 가리키며, 한국 사회를 아군과 적군의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2030이 정치 불신하게 만들어 

과거 정치 예능 '썰전(jtbc)'에서 유시민이 했던 발언이 기억난다. “방송에 출연한 정치인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지지자에게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를 설파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스스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고백한 것이다. TV 토론 역시 논리의 타당성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지지자가 일상에서 정치적 토론을 할 때 사용할 법한 근거만 제공하면 된다.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사회적 기능은 그저 특정 세력에게 논리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즉 유시민은 스스로 지식인을 자처하지만, 실상은 언제나 정치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정치 역사상 유시민만큼 언론 플레이에 능한 사람은 없었다.
2030이 유시민에게 실망했던 사건을 상기해보자.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20대 남성을 오로지 게임과 스포츠에 목매는 이들로 폄하했다. 청년에게 따뜻해 보였던 지식인 유시민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유시민을 존경했던 20대 청년들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도 이 때쯤이다. 이는 20대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을 추락시키는 요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유시민은 청년이 정치를 냉소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 기성세대와 MZ 세대 간 신뢰를 파괴한 탓이다. 제일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유시민같은 어른들이 뱉는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가 지식인이라며 내놓은 수많은 주장도 물론 문제가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지식인을 자처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정치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정치인이 져야 할 민주주의의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하기 때문이다.

작가 내세워 정치인의 책임 회피 

지식인·방송인·정치인 등 다양한 역할을 오가는 유시민은 연극적일 수밖에 없다. 거짓 계좌 사찰 주장이 드러난 후 그가 발표한 사과문이 그렇다. ‘어용 지식인' 유시민이 사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놀랐다. 그는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진정성을 담은듯이 사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시민의 사과문에 담긴 진의가 무엇이냐고 의심했다. 유시민이 진정성을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결코 ‘억까'(억지로 까는 것)만은 아니다.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에도 유시민은 정치를 할 때보다 더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 올 지닌 인물로 돌아왔다. 그는 그저 ‘정치를 그만뒀다'는 진정성을 내세워 훨씬 더 수월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유시민은 결정적 순간마다 진정성을 활용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사건 때만 해도 그렇다. 유시민이 좌장으로 있었던 참여계 역시 부정경선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2013년 유시민은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대신 당권파에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피해자로 탈바꿈했다.

유시민이 지난 2003년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는 일이 빚어졌다. [중앙 포토]

유시민이 지난 2003년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는 일이 빚어졌다. [중앙 포토]

‘드라마 퀸'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난다. 드라마 퀸은 스스로를 과도하게 피해자화하며, 고통받는 주체로 놓는다. 그러면서 세상과 맞서는 자신의 진정성을 어필한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피해자인 동시에 영웅으로 자신을 상상하는 86세대의 정치적 감수성을 ‘소년성'이라고 명명했다. 86세대는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하는 어른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외면한 채 성장을 멈춘 나약한 소년이다. 역설적이게도 주류에서 배척된 신성한 희생자라는 논리를 토대로 우리 사회 주류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유시민이야말로 여기에 딱 부합하는, 다시 말해 자신을 소년으로 제시할 줄 아는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지난 2003년 ‘빽바지'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입성한 유시민의 태도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냈으나 유시민의 정치적 자산은 이런 행정 경력이 아니라 여전히 항소이유서로 이름을 날린 학생운동 경력에서 나온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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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이사장이 지식인의 의무를 이행하길 바란다. 청년이 한국 사회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정성을 외치는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영원한 청춘 속에서 살며 학생운동을 특권화하는 일올 멈출 때가 됐다. 진영의 승리를 위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의 경계를 혼동시키는 어용 지식인이 ‘어용'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