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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우승' 메드베데프 선전포고가 실현됐다

중앙일보

입력

"조코비치를 막겠다."
남자 테니스 세계 2위 다닐 메드베데프(25·러시아) 선전포고가 실현됐다. 메드베데프는 US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34·세르비아)를 누르고 우승했다.

13일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다닐 메드베데프. [EPA=연합뉴스]

13일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다닐 메드베데프. [EPA=연합뉴스]

메드베데프는 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남자 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2시간 15분 만에 세트 스코어 3-0(6-4, 6-4, 6-4)으로 완파했다. 메드베데프는 3번째로 오른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생애 첫 챔피언이 됐다. 우승 상금은 250만 달러(약 29억원)를 받았다. 20대 선수가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남자 테니스의 '빅3'로 불리는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35·스페인·5위), 로저 페더러(40·스위스·9위) 중 한 명을 물리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드베데프는 앞서 2019년 US오픈과 올해 호주오픈에서 결승에 올랐으나 두 번 다 준우승했다. 2019년 US오픈 결승에서는 나달에게 2-3으로 졌고, 올해 호주오픈에서는 조코비치에게 0-3으로 패했다. 2년 전보다 더 성장한 메드베데프는 호주오픈에서 한 세트도 따지 못하고 지면서 칼을 갈았다. 그는 US오픈을 앞두고 "조코비치를 막기 위해 왔다. 그를 이기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경기 전날 코치와 전술 회의를 5분만 하는데, 결승전을 앞두고는 30분이나 했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실현했다. 이번 승리로 메드베데프는 조코비치와 상대 전적에서 4승 5패로 만회했다.

메드베데프는 조코비치의 한해 4대 메이저 대회를 전부 석권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도 막았다. 남자 단식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은 1969년 로드 레이버(호주) 이후 나오지 않는 대기록이다. 또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록 달성도 무너뜨렸다. 남자 단식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은 조코비치와 나달, 페더러가 함께 보유한 20회다. 조코비치가 이번에 우승하면 남자 단식 최다 우승(21회)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13일 결승전에서 라켓을 내리치는 노박 조코비치. [AP=연합뉴스]

13일 결승전에서 라켓을 내리치는 노박 조코비치. [AP=연합뉴스]

이에 경기장에는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함성이 엄청났다. 3세트 막판에는 메드베데프가 서브를 넣을 때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 연속 더블폴트를 범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메드베데프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한 말은 "조코비치와 팬, 관중에게 미안하다"였다. 그는 "오늘 우리는 조코비치가 어떤 기록에 도전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엄청난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내가 막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메드베데프의 인사에 조코비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조코비치는 "메드베데프는 코트에서 매우 단호했다. 모든 샷이 완벽했다. 그는 우승할 자격이 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1세트부터 메드베데프의 완승이었다. 조코비치의 첫 서브 게임을 가져온 후, 자신의 서브 게임을 계속 지켜 6-4로 이겼다. 2세트에도 메드베데프가 빈틈을 보이지 않아 조코비치는 라켓을 코트 바닥에 여러 차례 내리쳤다. 3세트에선 메드베데프가 4-0으로 앞서가며 승기를 잡았다. 메드베데프의 서브 에이스는 16개(조코비치 6개), 공격 성공 횟수는 38회(조코비치 27회) 등 모든 기록에서 앞섰다.

13일 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조코비치. [AP=연합뉴스]

13일 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조코비치. [AP=연합뉴스]

조코비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그는 "메이저 대회, 올림픽 등을 준비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마침내 올해 모든 메이저 대회가 끝났다는 것이 기쁘고 후련하다"면서 "이기지 못했지만 관중들의 응원 덕에 뿌듯했고 행복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뉴욕 코트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다"라고 했다.

메드베데프는 키 1m98㎝·체중 83㎏으로 호리호리한 체형이다. 2014년 프로에 입문했을 때 또래 선수들과 비교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지난 2017년 21세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신설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회에선 정현(25)에게 준결승에서 졌다. 당시 정현이 우승했다. 그러나 탄탄한 백핸드와 꾸준한 경기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메드베데프는 "대단한 역사를 만들려던 조코비치를 막고 우승해서 더 달콤하다. 이번 우승은 앞으로 엄청난 자신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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