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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땅 기증한 그 수선공, 이번엔 헌구두 무료 기증 전시

중앙일보

입력

“모두가 힘든 이때 구두·운동화 한 켤레라도 어려운 이웃과 나눠 쓰려 합니다.”
구두 수선공 김병록(61)씨의 말이다. 그는 이색적인 ‘구두 기부’ 행사를 연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시작되자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시가 7억원 땅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기증했던 그다.

“형편 어려운 이웃, 누구나 무료로 가져가세요”  

김씨는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도로변에 6㎡(2평) 남짓한 구두 나눔 전시관을 마련했다. 경제위기로 최근 문을 닫은 구두수선점을 활용했다.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 전시관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곳엔 남성용·여성용 구두·운동화·가방 등 100여 점이 진열돼 있다.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사용하던 헌 제품을 김씨가 정성껏 수선해 새제품처럼 만든 게 대부분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래전 제품인 것도 일부 있다. 김씨는 올해 들어 헌 구두와 헌 운동화, 헌 가방을 이웃과 손님, 지인들로부터 기부받아 틈틈이 수선해 모아왔다.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눈치 보지 않도록 무인 전시관으로 운영

김씨는 “이곳에선 누구나 방문해 주변 사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그냥 가져갈 수 있도록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많은 이웃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1인당 한 점씩 가져가 달라고 입구에 적어놨다”고 했다.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전익진 기자

김씨는 지난해 3월 50년 가까이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땅 3만3142㎡(1만평, 임야, 시가 7억원)를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파주시에 기부한 바 있다. 〈중앙일보 2020년 3월 12일자 1면〉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문을 연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변선구 기자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구두 나눔 전시관인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 문을 연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변선구 기자

지난해 3월엔 7억 땅 기증  

그는 “코로나 확산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점포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실감한 게 땅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내가 가진 것을 내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3일 이런 공로로 김씨에게  ‘제10기 국민추천포상’ 국민포장을 수여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코로나19로 어려움 겪고 있는 어려운 이웃과 국가를 돕고 싶었다”며 “저의 작은 기부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97년부터 요양원·노인정 찾아 이발 봉사

김씨는 앞서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헌 구두 5000여 켤레를 수선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전했고, 1997년부터는 이발 기술 배운 뒤 매달 요양원·노인정 등을 찾아 이발 봉사활동도 벌이고 있다.

김씨는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노점에서 구두 수선을 해왔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10㎡(3평) 크기의 점포를 임대해 아내 권점득(61)씨와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큰딸(35)을 출가시키고 아내, 작은딸(31), 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장애인 아들(28)과 행신동의 66㎡(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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