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아기를 잃고…불면증 아내 위해 곡을 만든 사람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11:00

업데이트 2021.09.13 12:06

재즈, 팝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윤한. 2년동안 수면에 도움을 주는 음악 연구에 몰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재즈, 팝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윤한. 2년동안 수면에 도움을 주는 음악 연구에 몰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야기의 시작은 비극이다. 피아니스트ㆍ작곡가인 윤한(38)의 아이가 아내 뱃속에서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출산을 두 달 앞두고였다. “유산 후 아내가 잠을 거의 못 잤다. 병원에서 약을 종류별로 받아도 못 잤다. 족욕이나 마사지도 해줘보고, 수면에 좋다는 상품도 사들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2년 동안 수면음악 50여곡 작곡한 윤한
논문 찾아가며 수면 음악 알고리듬 개발
중앙일보와 '재워드림'에서 수면음악 제공

이 경험을 한 2018년부터 윤한은 수면음악에 몰두하고 있다. 7월 첫 수면음악 앨범인 ‘슬리핑 사이언스: 더 슬립’, 지난달엔 ‘더 드림’을 냈다. 각각 10곡을 담았다. 이달 12일엔 중앙일보와 함께 수면 테라피 ‘윤한×김호정의 재워드림’을 시작했다. 중앙일보 회원을 위해 수면 음악 5곡을 새로 작곡해 들려준다.

윤한은 팝 재즈를 주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가다. 미국 버클리 음대에 이어 상명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아내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은 자연스레 음악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잠들 무렵 피아노로 연주를 해줬지만 자는 내내 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곡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잠에 대해 공부해야했고, 음악이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자는 생각에 연구부터 시작했다.” 수면에 대한 국내외 논문 100여편을 모아 공부했다. 대한수면학회 회원인 의학 전문가들에게 무작위 e메일로 질문을 보내도 봤다.

다음에는 음악을 들여다봤다. “음높이, 빠르기, 템포 같은 것을 잠과 연관시켜서 생각했다. 그렇게 가설을 세웠다.” 사람의 심박수가 수면 상태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연구하고, 음의 진동수에 따라 물의 모양이 바뀐다는 주장도 공부해봤다. 물이 사람의 상태와 연관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름의 알고리듬을 만들었다.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A(라)음 중심의 음계, 또는 관계있는 조를 주로 쓰고 빠르기(BPM)가 100을 넘지 않도록 했다.”

첫 곡을 들은 아내는 편하게 잠들었고, 지난해엔 딸을 낳았다. 윤한은 청취자를 확대해나갔다. “사람마다 맞는 음악을 만들어주면서 수면의 효과를 실험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가족에서 시작해 운동선수, 기업가, 회사원, 셰프 등 30여명의 생활 패턴과 음악 취향을 조사해 맞춤형 수면 음악을 만들어줬다. 2년 동안 50여곡을 만들었다. “잠자는 시간, 자기 전의 습관, 성별, 나이, 직업, 선호하는 음악에 따라 음악을 달리 만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은 멜로디나 화음 진행을 예상하며 음악을 듣는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수면 음악은 진행을 예측할 수 없도록 해야 효과적이었다.“30명 중 98% 정도가 수면 음악을 듣고 잠을 잘 잤다고 했다. 한 의과대학과 손잡고 임상실험도 진행 중이다.”

수면 음악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작곡가들은 들으며 잠드는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막스 리히터의 2015년 음반 ‘슬립(Sleep)’이 있다. 자는 내내 들을 수 있도록 8시간 동안 음악이 이어진다. 날카로운 소리를 깎아낸 몽환적 음악에, 이색적인 음향이 덧입혀져 수면 음악의 대표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올 3월 19일엔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수면 음악 앨범도 나왔다. 현대인의 휴식과 내적 평화를 지향하는 작곡가 이루마, 에이나우디 등의 18곡이 담겼다.

윤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한은 “수면 음악은 단지 신비롭거나 반복되기만 하는 것보다는 수면 상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특성을 잘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반에 만든 곡은 대부분 15~20분 길이였다. “의학적으로 불면의 기준을 15~20분으로 잡고 있더라. 잠이 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음악을 듣고, 끝나기 전에 잠드는 상황을 목표로 했다.” 꽤 긴 곡들이었지만 음반 제작을 위해 4~5분으로 편집했다. 어떻게 들어야 효과가 있을까. 윤한은 “휴대전화의 소리 크기를 1이나 2 정도로 해서 들릴락 말락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음악 감상과는 달리, 정확히 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수면 테라피 '재워드림'.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수면 테라피 '재워드림'.

중앙일보에 제공하는 다섯 곡은 비교적 보편적인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미국 서부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경험한 거대한 자연 속의 밤을 담은 ‘별’이 첫 곡이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수면을 돕는 다섯 곡이 매주 일요일 제공된다. 윤한은 “언젠가는 사람마다 맞춤형으로 수면 음악을 만들어주는 일이 목표”라며 “제대로 잠들어 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재워드림’ 12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에 신곡이 공개된다. 중앙일보 웹( https://www.joongang.co.kr/series/11490)과 앱에서 로그인하면 들을 수 있다.

'재워드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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