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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돌면서 구구단 외우다가…" 수학자가 수학에 빠진 그 때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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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밥상머리 뉴스, 오밥뉴스는 걱정 많은 부모를 위해 매주 월요일, 『미래부모를 말하다』를 전해드립니다. 이번 편은 김상현(47)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이야깁니다.

지난 7월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연구실에서 김상현 수학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깊이 생각하기를 통해 '수학적 사고'를 키워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 7월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연구실에서 김상현 수학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깊이 생각하기를 통해 '수학적 사고'를 키워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아침부터 30도를 웃돈 지난 7월.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20세기 기하학이라 불리는 ‘위상수학’을 연구하고 있는 현대 수학자다. 서울과학고-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이기도 하다.

추상의 세계를 무한 상상의 힘으로 넘나드는 젊고 유능한 수학자는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수학의 힘’을 설파했다. 그에게 물었다. 우리 아이들은 왜 수학을 배워야 하며, 학교에서는 수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학창시절 이후 사실상 수학책을 들여다볼 일이 없었던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김 교수는 20세기 기하학이라 불리는 '위상수학' 연구자다. 그는 "눈 앞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추상 세계를 연구하지만 수학자들의 이론적 연구가 과학기술 발전에 토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우상조 기자

김 교수는 20세기 기하학이라 불리는 '위상수학' 연구자다. 그는 "눈 앞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추상 세계를 연구하지만 수학자들의 이론적 연구가 과학기술 발전에 토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우상조 기자

우리가 수학을 배워하는 이유가 뭘까요.  
어떤 직업을 택하건, 정량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가진 학생은 그렇지 못한 학생에 비하여 엄청나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독일과 미국에서는 수학을 전공한 인재들을 금융 등의 분야에서 발탁하는 것이 최근 추세입니다. 이들이 따로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수학을 전공한 인재들을 데려다가 그 분야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한 것인데,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분야에서 풀어내지 못한 많은 문제들을 수학자들이 풀어낸 것이죠. 예술, 스포츠, 게임 산업, 금융 컨설팅 등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자는 학생에게 꼭 필요한 무기들을 손에 쥐어주어야 합니다. 더욱 깊이 있는 생각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수학을 전공하고 연구한다는 의미가 뭔가요. 난제를 푸는 것인가요.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수학이라는 지식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제 수학은 너무 방대해서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모두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수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얕고 넓은 지식에서 깊고 좁은 지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한 지식의 탑에 열심히 올라가서 벽돌 한 장을 쌓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빈 곳을 찾고, 나만의 벽돌을 쌓은 다음, 새로워진 경치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잘 알려진 난제를 해결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분야를 창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기술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미래 산업에서 수학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많은 시행착오 끝에 수학자들은 ‘추상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수학이라는 지식 체계가 자연현상의 이해를 위하여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학을 추상의 세계 속에서 발전하도록 함으로써 이전 세대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도구들이 탄생하고는 합니다. 제가 연구하는 위상수학에서도 마찬가지죠. 위상수학은 20세기에 탄생한 기하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기하학의 관심사가 거리의 측정에서 시공간의 대칭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학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대상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도구들이 산업에 사용되곤 합니다. 시·공간의 대칭성에 대한 연구는 SNS(소셜 네트워크서비스)의 사회 관계망이나 인공지능 신경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더욱 튼튼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4차 산업시대 인재는 어떤 이들인가요.
아무래도 제 전공이나 인접 전공에 한하여 얘기할 수밖에 없겠지요. 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의 공통점은 우선 무엇보다 깊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남이 갔던 길을 가보기도 하고, 돌아가 보기도 하고, 거꾸로 가보기도 하면서 완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그 지식이 나에게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게 됩니다. 둘째 중요한 것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지엽적인 것, 다른 지식과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걸러내고 더 강력한 지식, 더 멀리 보는 법을 터득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의 뒤만 따라가지 않고 아무리 작더라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 인재가 된다고 봅니다.
 김상현 교수는 대한수학회 상산 젊은 수학자상(2012), 대한수학회 논문상(2016) 등을 수상했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이기도 하다. 우상조 기자

김상현 교수는 대한수학회 상산 젊은 수학자상(2012), 대한수학회 논문상(2016) 등을 수상했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이기도 하다. 우상조 기자

루트(√) 때문에 알게 된 수학의 재미
김 교수는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딸 하나를 둔 초보 아빠다. 부모가 된 소감을 묻자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심정으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답했다. 물과 영양분을 주며 보살피겠지만, 햇빛을 받고 자라는 힘을 키우는 건 아이의 몫이라는 것. 아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는 언제부터 수학을 좋아했을까. 계기가 있었을까. “열 살 무렵인 것 같아요. 8살 위 형이 고등학교에서 배워오는 것들을 제게 이야기해주던 기억이 있어요. ‘야 신기한 거 배웠다, 들어봐라’하면서 여러 얘길 해줬는데 그때 ‘증명’이란 얘길 처음 들은 것 같아요. 의심의 여지없이 완벽한 논리로 현상을 설명하는 ‘증명’이라는 게 참 신기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운 날은 지금도 생각이 나요. 형의 손을 잡고 집 주위를 돌면서 하루 종일 걸려 외웠는데, 결국 틀리지 않고 다 외웠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 기억이 나네요. 오기가 있었던 학생 같아요”

그의 부모님은 칭찬에 후한 분들이었다고 했다. “제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거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진심으로 기뻐하시긴 했었어요. 공부하라는 말은 없었지만 ‘공부를 하면 좋은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주셨던 거 같아요. 저는 교과서가 참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루트(√)라는 개념을 아직 모르던 중1 때 친구가 그걸 배워서 얘길 해주는데, 부럽고 궁금하더라고요. 헌책방에 가서 중2, 중3 수학교과서를 사다가 여러 번 읽어보고 ‘아 그런 거구나’하고 깨우친 적이 있어요. 그런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수학자가 되고 난 후 그의 삶은 어떨까. 수학은 여전히 재미있고, 수학자는 천직이라고 느낄까. “남들이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 그런 걸 발견할 때 물론 가장 기쁘고 즐겁죠. 하지만 연구자로 사는 건 여러 면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아요. 새로운 발견이나 기여가 없거나, 제가 열심히 노력했던 연구가 결국 남들이 보았던 것을 다시 이해하는 선에서 그치면, 내 자신의 가치에 회의하게 되기도 해요. ‘너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저 자신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해줘요. ‘직업적 성취=나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수학자도 수학 어려워… 이파리 세지 말고 나무 위로 올라야

그는 최근 수학교육에 대해 "시간 압박 속에 배배꼬인 문제를 풀어내는 경쟁이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쉬운 길을 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고, 중요한 개념을 배우며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상조 기자

그는 최근 수학교육에 대해 "시간 압박 속에 배배꼬인 문제를 풀어내는 경쟁이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쉬운 길을 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고, 중요한 개념을 배우며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상조 기자

수학 열풍은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한국을 이끈 가장 큰 동력입니다. 학교 교육과정도 잘 발달했고 학습 동기나 교육 환경도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있습니다. 마치 절대 음감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가장 창의적으로 수학을 흡수할 수 있는 나이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개념과 무기를 손에 쥐어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구석기 시대 무기로 경쟁을 시키고 있는 꼴입니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데 경쟁에는 내몰리는 상황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현재 고교 과정을 예로 들면 행렬, 집합, 벡터 등 기하학 부문이 제외된 것이 아쉽습니다. 배우는 내용은 줄었지만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푸는 식의 경쟁은 여전하다보니 정작 필요한 영역을 공부하지는 못하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배배 꼬인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풀어야만 하는 구조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를 다각도로 풀어보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며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명 ‘수포자’, 수학을 어려워하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느는 걸까요.  
수학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교수들에게도, 필즈상(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학을 진절머리 나게 만드는 것은 경쟁과 압박입니다. 경쟁은 그대로지만 가르치는 내용은 점점 얕아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면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교육과정을 나무로 비유한다면 우리는 학생들을 염려해 나지막한 줄기에서만 경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나무 말단의 수많은 이파리들을 세면서 지엽적인 공부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괴로움은 커지고 그 수확은 적어집니다. 그보다는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더 높이 있는 중요한 개념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올라가면서 스스로 공부의 의미를 찾고, 대신 이파리는 필요할 때 다시 들여다보면 됩니다.  
부모들은 고교에서는 이과, 대학에서는 이공계를 전공하는 것을 선호한다고들 합니다. 
제가 뭐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성숙한 사회일수록 그 사회를 지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인문학이나 예술, 사회학이나 법학, 어느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수학자로서 한 마디를 더 하자면,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수학적인 사고 능력은 큰 유리함이 될 것입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과서는 참 잘 만든 책입니다. 교과서를 천천히 반복적으로 읽으며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이정표나 표지판과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이 책을 왜 썼을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를 계속 음미하며 읽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의미이고 좋은 공부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형 교수님(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의『수학이 필요한 순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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