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구찌·프라다 가득…온라인 명품, 박스 보면 정품 안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06:00

업데이트 2021.09.13 08:42

명품 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늘면서 호경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수요만큼 ‘짝퉁’도 많아져 정품 가려내기가 업계와 소비자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주말을 앞둔 지난 10일 인천 송도의 한 직수입 매장. 약 1140㎡(345평)의 넓은 매장에는 구찌·프라다·몽끌레르·메종마르지엘라·발렌티노·생로랑 등 인기 명품 브랜드의 가방·의류·신발·액세서리 등이 즐비했다. 1층은 쇼핑 매장과 다르지 않지만, 2층은 명품 상자들이 가득 쌓여있는 병행수입 업체 ‘럭스앤홀릭’의 모습이다.

9일 인천 송도의 명품 병행 수입 업체를 찾았다. 최근 명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명품 병행 수입 업체들이 성업중이다. 유지연 기자

9일 인천 송도의 명품 병행 수입 업체를 찾았다. 최근 명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명품 병행 수입 업체들이 성업중이다. 유지연 기자

병행수입은 공식 수입 업체가 아니더라도 개인이나 일반 업체가 같은 브랜드의 상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흔히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명품 본사들이 정식 판권을 가진 편집숍(부티크)과 계약을 맺고 상품을 유통한다. 롯데하이마트나 전자랜드 같은 가전 전문 매장에서 삼성·LG전자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이 팔리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현지의 이 전문 부티크에서 물건을 사 오는 게 병행수입의 한 형태다.

병행수입 업체들은 상품을 홀세일(도매) 가격에 들여오기 때문에 백화점 등 정식 유통 상품에 비해 가격면에서 유리하다. 이소아 기자

병행수입 업체들은 상품을 홀세일(도매) 가격에 들여오기 때문에 백화점 등 정식 유통 상품에 비해 가격면에서 유리하다. 이소아 기자

병행수입 업체가 수입하는 명품은 진품이지만, 소매가가 아닌 도매가로 들여오기 때문에 운송비 등 마진을 붙여도 백화점에서 유통되는 제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게 장점이다.
서성호 럭스앤홀릭의 대표는 “병행수입을 한 지 20년이 넘었고 약 50여개 브랜드를 수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연 매출은 약 250억원으로 국내에선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최근엔 신발이나 가방 등 잡화보다는 명품 의류 수입및 판매 비중이 높다. 이소아 기자

최근엔 신발이나 가방 등 잡화보다는 명품 의류 수입및 판매 비중이 높다. 이소아 기자

병행수입 100% 정품 장담 못 한다? 

문제는 명품 본사와 계약을 맺은 현지 부티크가 아니라 일명 ‘스톡 하우스(재고 창고)’라고 불리는 곳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병행수입 방식이다. 스톡 하우스는 부티크 등에서 남은 재고나 철 지난 상품들을 취급하는 제3의 시장으로, 진품도 있지만 상당 부분 가품이 섞여 있다. 이런 곳에서 상품을 수입하면 가격은 더 내려가지만, 진품 여부나 품질보증 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로 현지 사업 노하우가 없는 신생 업체일수록 재고 창고서 물건을 수입해 올 확률이 높다”며 “수입 업체의 의도와 달리 가짜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현지 사업 노하우가 없는 신생 업체의 경우 가품을 들여올 수 있는 확률이 있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명품을 구매한 뒤 가품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사진 롯데온

현지 사업 노하우가 없는 신생 업체의 경우 가품을 들여올 수 있는 확률이 있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명품을 구매한 뒤 가품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사진 롯데온

10개 중 1개 온라인 거래 

명품을 온라인에서 사고파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5957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8.6%에서 지난해 10.6%를 기록했다. 명품 10개 중 1개가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명품 플랫폼(판매 중개 사이트)이나 오픈 마켓에 병행수입 업체들이 입점해 물건을 판매하는 구조도 흔해졌다. 짧은 기간에 크고 작은 병행수입 업체들이 급증하면서 명품 플랫폼들도 소비자 신뢰와 직결되는 가품 걸러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온 트러스트온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업체가 상품 출고 전 검수 과정을 구매 고객에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 롯데온

롯데온 트러스트온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업체가 상품 출고 전 검수 과정을 구매 고객에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 롯데온

일례로 롯데온은 최근 ‘트러트온’이란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픈 마켓(플랫폼)인 롯데온과 외부 판매자(병행수입 업체), 지식재산권 보호협회(TIPA)와 한국명품감정원 등 외부 협력기관의 3자가 참여해 유통 단계와 상품을 검수한다. 트러스트온 프로그램에 동의한 병행수입 업체는 상품에 트러스트온 인증을 붙여 판매하고 정품 증명 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가 확인되면 구매 금액의 2배를 보상해 주는데, 현재 약 75개의 병행수입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롯데온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편리하게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정품이란 걸 믿을 수 있는 플랫폼을 선택하는 추세”라며 “결국 믿을만한 병행수입 업체들만 입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병행 수입 업체들이 직접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가 흔해졌다. 유지연 기자

최근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병행 수입 업체들이 직접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가 흔해졌다. 유지연 기자

세 가지 서류, 박스 바코드 확인하라  

오랜 업력을 지닌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품 식별’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노련한 병행수입 업체는 통관을 마치고 배송된 박스를 볼 때 속보다는 겉을 살핀다. 바코드나 스티커들이 되도록 적게, 훼손되지 않은 채로 붙어있어야 한다. 이는 불분명한 경로를 여러 번 거치지 않았다는 증거다.

배송 박스 겉면에 붙은 바코드 및 배송 정보 스티커는 제품 이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정보다. 유지연 기자

배송 박스 겉면에 붙은 바코드 및 배송 정보 스티커는 제품 이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정보다. 유지연 기자

병행수입 업체와 거래하는 대형 유통(플랫폼) 기업의 경우 박스에서 제품을 꺼내 진품인지 아닌지를 검수하는 것보다 물량의 규모와 서류를 더 자세히 살핀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정식 판권이 있는 현지 부티크에서 제품을 거래했다는 증빙 서류, 인보이스(송장), 수입신고 필증 등 3가지가 핵심이다.

롯데온 관계자가 현지 거래 증빙 서류와 인보이스, 수입신고 필증을 확인하고 있다. 이소아 기자

롯데온 관계자가 현지 거래 증빙 서류와 인보이스, 수입신고 필증을 확인하고 있다. 이소아 기자

물류의 규모와 수입 브랜드 및 품목도 따진다. 현지에서 재고가 부족한 인기 품목을 가져올수록 현지 구매력이 센 것으로 파악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격이다. 롯데와 신세계 등 명품거래 노하우가 쌓인 기업의 경우 최소 십여년 이상 브랜드 모델별로 가격 추이를 모니터링 하며 최저가와 최고가의 범위를 세세히 파악하고 있다. 병행수입 업체가 제시한 가격이 그 범위를 벗어날 경우엔 의심해 봐야 한다. 너무 싸도 문제란 얘기다.

소비자들은 믿을만한 병행 수입 업체인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최근엔 대형 병행수입 업체의 경우 명품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 정보가 많이 퍼져있는 상태다. 업력이 길고, 규모가 클수록 믿을만하다. 또 판매자 정보(병행수입 업체 이름)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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