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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모으려 그놈과 친한척"…서울예대 황금폰 사건 최후

중앙일보

입력

성폭력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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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하OO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피고인 이OO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북부지법 502호 법정에서 판사가 실형을 선고하는 주문을 읽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20대 여성은 눈물을 쏟았다. 서울예술대학교 출신의 사진작가인 이들이 여자친구와 대학 후배 등 다수 여성의 나체사진을 불법 촬영하고 유포한 이른바 ‘서울예대 황금폰 사건’의 1심 판결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선고를 지켜본 피해자 A씨는 “고소장을 접수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날이 올지 꿈에도 몰랐다”고 울먹거렸다.

피해자가 직접 증거 모은 ‘서울예대 황금폰 사건’

지난 10일 실형이 선고된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의 일부. '황금폰에 어마어마한게 있다'며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이름, 학과, 학번 등을 언급했다. 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얼굴 등 신체부위로 추정되는 사진들을 올리며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고, ″아 좀 주세요″ ″자료를 내놓고 말해″라는 대화 내용이 담겼다. 독자제공

지난 10일 실형이 선고된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의 일부. '황금폰에 어마어마한게 있다'며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이름, 학과, 학번 등을 언급했다. 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얼굴 등 신체부위로 추정되는 사진들을 올리며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고, ″아 좀 주세요″ ″자료를 내놓고 말해″라는 대화 내용이 담겼다. 독자제공

지난해 6월 피고인의 대학 후배인 피해자 A씨는 서울 성북경찰서를 찾아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장 안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오고 간 수많은 여성의 나체사진과 이를 성희롱하는 대화 내용이 증거로 담겨있었다. 피해자 A씨가 자신의 사진 등 직접 수집한 증거들이었다. 서울예대 사진과 선후배인 피고인 하모(30)씨와 이모(33)씨는 이런 불법 촬영물이 담긴 휴대전화를 ‘황금폰’이라 불렀다.

그러나 초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혐의를 입증할 수사기관의 추가 증거 확보가 절실했지만, 피고인들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고소장 접수 후 3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그 사이 피고인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자료다” “촬영 기법을 논의하기 위해 공유한 것이다” 등의 진술을 하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의 기소는 지난 4월에서야 이뤄졌다.

피해자 “집행유예 나올까 봐 두려움 속에 살아”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이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채팅방의 일부. 이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누드 포트폴리오 사진을 공유하며 ″예전에 아트한답시고 이런거나 찍고 있었다″ ″벗겨놓고 많이 찍었네 부럽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학과와 학생 이름도 거론됐다. 독자제공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이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채팅방의 일부. 이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누드 포트폴리오 사진을 공유하며 ″예전에 아트한답시고 이런거나 찍고 있었다″ ″벗겨놓고 많이 찍었네 부럽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학과와 학생 이름도 거론됐다. 독자제공

경찰 수사와 검찰의 기소, 재판 과정을 돌이켜본 A씨는 “너무나 괴롭고 힘든 순간순간들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2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증거를 모으고자 일부러 한동안 피고인과 친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독한 마음을 먹고 싸워왔지만, 집행유예가 나올까 봐 항상 두려웠다”며 “검찰이 구형한 형량에는 못 미쳐 아쉬움도 크지만, 실형 선고로 이제 가해자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피고인들은 지난 27일에 열린 결심 공판에서도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피고인들은 개방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술대학에서 수학하고 있었다”는 변호인의 마무리 발언을 들은 A씨는 말문이 막혔다고도 한다. 검찰은 “범행 일부를 부인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 구형 이후에서야 반성문과 합의 제안”

검찰의 구형 이후에서야 반성문과 함께 합의를 제안한 피고인들의 태도는 A씨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겼다. A씨는 “한 번의 사과도 없다가 중형이 구형되자 처음으로 피고인이 반성한다고 연락해왔다”며 “합의를 요구하면서 제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겠다는 말이 오히려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합의를 거부했고, 서울북부지법 형사3단독(부장판사 임민성)은 지난 10일 하씨와 이씨에게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작가로서 직업윤리에 반해 지인은 물론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불법촬영과 불법 촬영물 제공·전시·유포 등 범행을 저질렀다”며 “하씨가 일부 범행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했고, 이씨가 범행 일부를 은폐한 정황에 비춰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시했다.

法 “직업윤리 반해 죄질 좋지 않다” 징역 4년 선고

법원 이미지 그래픽

법원 이미지 그래픽

A씨는 “고소를 결심하고 증거를 모으면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는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고 허망하기만 했다”고 했다. 이어 “단지 모자를 쓰지 않고도 거리를 거닐 수 있고, 주머니 속에 호루라기가 없어도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며 “이제는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고 먹고 싶은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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