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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하드'로 銀 딴 스페인 태권소녀, 진짜 '기차 하드' 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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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도쿄올림픽에서 '기차 하드, 꿈 큰'이라는 검은띠를 착용하고 시합 중인 이글레시아스 선수. 뉴스1

도쿄올림픽에서 '기차 하드, 꿈 큰'이라는 검은띠를 착용하고 시합 중인 이글레시아스 선수. 뉴스1

도쿄올림픽의 ‘스페인 태권소녀’가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주인공은 아드리아나 세레조 이글레시아스 선수.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낭랑18세다. 경기 당시 눈길을 끌었던 건 그의 실력뿐 아니라 검은띠 벨트에 적힌 문구, ‘기차 하드, 꿈 큰’이기도 했다. 한국어는 모르지만 태권도 종주국이 한국임을 기려 제작했는데 번역기를 돌린 탓에 귀여운 외계어가 됐다. 영어로 ‘열심히 훈련하고 꿈을 크게 꾸자(Train hard and dream big)’을 번역기로 잘못 돌린 결과였다.

한국에서도 ‘번역기가 잘못했네’라며 스페인 태권소녀에 대한 응원과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 그에게 주스페인 박상훈 대사가 최근 특별한 선물을 했다. ‘훈련은 열심히, 꿈은 크게!’라는 한국어 문구가 선명한 검은띠다. 다른 한 쪽엔 선수의 이름이 한글과 스페인어로 수놓였다.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구여서 꼭 한국어 문구를 벨트에 새겨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다”며 “한국분들이 전해주신 메시지와, 특별한 선물을 해주신 박 대사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글레시아스 선수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한 박상훈 주스페인 대사. [박상훈 대사 페이스북]

이글레시아스 선수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한 박상훈 주스페인 대사. [박상훈 대사 페이스북]

은메달 축하합니다. 태권도를 처음 어떻게 배우게 됐나요?  
“4살 때 시작했어요. 할아버지 댁 근처에 체육관이 있었는데, 저는 그맘때 할아버지와 함께 무술영화를 보는 걸 엄청 좋아했거든요. 무술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동작을 직접 해보고 싶었고, 태권도를 시작했죠. 지금 답변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태권도를 만난 건 모두 할아버지 덕분이네요!”  
스페인 대사관의 깜짝 선물 받고 어땠어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한국의 대사를 제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는데 깜짝 선물도 받았으니까요. 저에겐 진짜 멋진 선물이에요. 함께 전달받은 (한국 언론) 기사 모음도 놀라웠고요. 저를 응원해주신 한국의 많은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박 대사는 선물 전달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 선수는 스페인에서 ‘경이로운 소녀(nina maravill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타 선수”라며 “앞으로 훌륭한 태권도 선수이자, 한국의 좋은 친구로 성장해 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대사는 한국 언론에 보도된 이글레시아스 선수의 기사 모음과, BTSㆍ블랙핑크의 CD, 한국의 화장품 등 선물도 전달했다고 한다.

스페인 태권소녀가 선물 받은 새 벨트. [박상훈 대사 페이스북]

스페인 태권소녀가 선물 받은 새 벨트. [박상훈 대사 페이스북]

‘기차 하드, 꿈 큰’ 벨트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문구가 ‘훈련은 열심히, 꿈은 크게’이거든요. 훌륭한 일을 성취해내기 위해선 매일 최선을 다해서 다른 건 모두 포기하고 훈련에 매진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저 자신을 믿고 꿈을 크게 가지면서 ‘나는 해낼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어요.”
도쿄올림픽 참여 소감은요?  
“특별한 경험이에요. (메달 여부와 무관하게) 그저 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어요.”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여자 49㎏급 은메달을 획득한 실력자다. 스페인이 획득한 도쿄올림픽 첫 메달이라 의미가 더 컸다.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8강에선 중국의 올림픽 1위 선수인 우징위를 33-2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앞서 16강에선 세계 랭킹 2위인 세르비아의 티야나 보그다보비치도 제압하며 도쿄올림픽의 새로운 스타 선수가 됐다. 결승전에서도 10-9로 앞서나가다가 마지막 10초를 남긴 때, 태국의 웅 파타나킷 선수에 기습공격을 당해 2점을 내줬고, 1점 차로 금이 아닌 은메달을 걸었다. 경기 후엔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격려를 보냈다.

아드리아나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1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고 분루를 흘리는 장면. 뉴스1

아드리아나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1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고 분루를 흘리는 장면. 뉴스1

가장 힘든 순간은 아무래도 결승전이었을까요?  
“도쿄올림픽에선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 모두 있었어요. 제가 금메달을 놓친 그 순간은 정말 최악이었죠. 그 순간은 꽤나 힘들었는데요,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자 그 경험이야말로 앞으로의 목표를 위해 더 큰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 열심히 훈련해서 극복해낼 거에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메달 획득이 확정된) 4강전에서 이겼을 때였죠.”
앞으로 목표는요?  
“태권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싶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태권도를 계속해서 즐기고 싶어요. 경기에 나가는 순간은 물론, 경기에 나가기까지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요.”  
한국 여행 계획은 있나요?  
“한국에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머지않아 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태권도 선수인 저에게 한국은 너무도 중요한 곳이죠. 한국에서 살면서 배우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거에요.”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태권도를 계속 즐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은 도쿄올림픽 결승전. 뉴스1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태권도를 계속 즐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은 도쿄올림픽 결승전. 뉴스1

또래들처럼 K-팝 좋아해요?  
“물론이죠! BTS 팬이에요.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한국 음식도 좋아하는데 제 최애는 불고기랍니다.”  

이글레시아스 선수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저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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