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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유럽에 역전당하고, 피해 심각 포르투갈이 이젠 선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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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지난달 22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학부모들이 12~15세 자녀들에게 백신을 맞히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학부모들이 12~15세 자녀들에게 백신을 맞히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미국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법정에서 보자”(크리스티 노엄사우스다코다 주지사), “바이든과 민주당을 지옥문까지 쫓아가 싸울 것”(헨리 맥매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이라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글로벌 백신 접종 중간 성적 #미국 접종 완료율 여전히 50%대 #백신 놓고 정치적 양극화 한몫 #피해 컸던 포르투갈 유럽 접종 1위

논란이 예상됐는데도 대책을 밀어붙인 건 결국 정체 상태가 계속되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백신 접종률 때문이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미국인 5명 중 한 명이 백신 접종을 마쳤다. 이스라엘 말고는 미국보다 접종률에서 앞서가는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9월이 돼서도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미국인은 53%에 그친다. 전체 나라 가운데 50위권(아워월드인데이터 기준)에 겨우 드는 수치다.

독보적인 ‘백신 선도국’으로 조명받던 이스라엘도 확진자가 급증하며 미국과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다. 반면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 중 하나인 포르투갈은 어느 순간 유럽 내 접종률 1위를 기록하며 몇 주 안에 경제를 다시 개방할 계획이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 교수는 “각 나라가 백신 접종을 다른 시기에 시작했지만 각자 정치 환경이나 정책에 따라 중간 성적이 달라졌다”며 “초기 백신 접종률이 높았던 나라들도 겨울을 앞두고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접종률 유럽 1위' 포르투갈

지난 10일 기준, 포르투갈의 접종 완료율(화이자ㆍ모더나 백신의 경우 2차, 얀센 백신의 경우 1차까지 접종한 비율)은 79%로 유럽 내 1위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그 비결을 포르투갈의 정치ㆍ문화적인 배경에서 찾았다.

세계 주요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세계 주요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 40여 년간 독재를 겪은 포르투갈은 다른 부유한 유럽 국가와 달리 의료 복지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 1970년 후반이 돼서야 어린이 백신 접종을 장려했고, 90년대 정치ㆍ경제가 안정되면서 영아 사망률도 떨어졌다. 리스본 노바대 공공보건학과의 곤잘로아우구스토 교수는 “우리는 가난한 국가였고 그래서 감염병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백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은 지난 겨울 섣불리 경제 빗장을 풀었다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준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우구스토 교수는 “이때의 트라우마 탓에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더 적극적이 됐다”라고도 설명했다.

5월 들어 델타 변이가 퍼지기 시작하자, 보건당국에선 1차와 2차 접종 사이 기간을 1주일 이상 앞당겼다. 이 덕분에 추가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포르투갈은 전체 인구의 85%가 접종을 마치면 다시 경제 규제를 풀 계획인데, 앞으로 몇 주 후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선도국 이스라엘, 접종률 안 올라

이스라엘은 초기 백신 확보에 성공하며 지난 5월 접종 완료율을 59%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지금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돌파 감염으로 확진자가 다시 폭증하며 부스터샷(추가접종)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경제를 개방할 만큼 접종률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 역시 여름 이후 접종 속도가 떨어지면서 4개월이 지난 지금 접종 완료율이 63%까지밖에 오르지 않았다. 미 공영라디오방송(NPR)은 “특히 12~20세 연령대가 백신 접종을 꺼리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거리두기를 해제한 최근 몇 개월 동안 백신을 맞지 않은 젊은 층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에런 세걸 박사는 “지금 이스라엘에선 백신을 맞은 다수의 사람이 소수의 미접종자를 대신해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낮은 접종률은 인구 탓?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워싱턴의 브룩랜드 중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워싱턴의 브룩랜드 중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접종률이 유럽에 밀리는 것은 인구 구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미국의 15세 이하 인구 비율은 19% 정도로, 포르투갈(13.6%)이나 독일(12.9%)보다 높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어린이가 많다 보니 전체 접종률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25~49세 사이 접종 완료율을 비교해 봐도 포르투갈은 85%인데 비해, 미국은 70%에도 못 미친다. 65세 이상에서도 미국은 80%지만, 포르투갈은 99%가 백신 접종을 마쳤다.

지난 7월 카이저 가족재단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86%가 한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지만, 공화당 지지층에선 54%에 그쳤다. 조시 미쇼드 카이저 가족재단 글로벌 보건정책 부소장은 “백신을 둘러싼 정치적 양극화가 접종률 면에서 미국이 유럽에 역전당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은 지난 9일 기준으로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은 비율이 62.6%를 기록, 미국의 1차 접종률(61.9%)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지난해 12월부터, 한국은 올 2월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이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속도를 더 낸 편이지만 아직도 38% 수준인 접종 완료율은 뒤처진다.

단 백신에 대한 낮은 거부감, 낮은 15세 이하 인구 비율(12.8%), 촘촘한 보건 시스템 등을 고려하면 백신이 확보될 경우 선진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정상으로 돌아가기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설대우 교수는 “백신 접종이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앞서나간 외국 사례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 많았다”며 “단계적인 일상회복을 위한 계획을 차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