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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준석이 저격한다

"변학도 된 라이언 상무님, 9만9000원은 택시에 가혹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카카오 라이언 상무.

카카오 라이언 상무.

너무 귀여워서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그 덕에 상무로 승진한 카카오의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이 최근 일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는 천인의 피 같은 금 술잔의 술을 즐기고, 만백성의 기름 같은 옥반 위의 고기를 즐기던(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성고·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춘향전' 속 변학도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해 언급한 뒤 카카오 주가가 크게 출렁였습니다. 비단 이 일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이 기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최근 카카오의 플랫폼 사업에 대한 우려는 저 역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수수료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 받으며 운영하다 시장의 다른 경쟁 사업자들이 도태되고 난 뒤 급격한 수수료 인상을 통해 큰 이윤을 노리는 건 독과점 기업의 교과서적인 영업 방식입니다. 택시와 대리운전을 넘어 택배와 꽃 배달, 이미용업까지,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서민 업종에 손을 뻗어가니 라이언을 얄밉게 보는 국민의 수가 늘어만 갑니다.

독과점엔 엄격하게 대응해야 

국민의힘은 자유를 으뜸가는 가치로 내세우고 규제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정당입니다. 국민의힘은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하지만, 독과점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대응합니다. 보통 독과점을 달성한 기업은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막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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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네이버 등 IT를 기반으로 한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 연결 마케팅) 플랫폼 사업자들은 최근 단기간에 여러 영역을 독점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가 스탠더드 오일사를 통해 미국 석유회사를 독점했을 때만 해도 석유회사를 사들이면 그걸로 곧바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게 아니라, 운송과 생산 과정을 물리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을 독과점할 때도 일단 컴퓨터를 판매하면서 그 안에 윈도우즈를 끼워팔기 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의 플랫폼 기반의 중개사업자들은 앱스토어라는 효율적인 전파 수단을 통해 입소문만으로도 급격하게 세를 불려 나갔고, 스노우볼 효과로 인해 그 어떤 전통적인 독과점 기업보다 강력한 지위를 과거보다 훨씬 손쉽게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플랫폼 불공정 근절 및 골목상권 보호 대책 토론회'.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플랫폼 불공정 근절 및 골목상권 보호 대책 토론회'. [사진 유튜브 캡처]

대한민국의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 통신 서비스 품질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요금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책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통신 3사간 치열한 경쟁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 4조에 의해 1개 회사의 점유율이 50%가 넘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해 여러 가지 억제책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플랫폼 사업에서도 통신 서비스 시장과 같은 경쟁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카카오의 교통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가 내년에 상장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 앱의 사업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된 덕분에 저는 요즘 편하게 주차요금을 결제하고 기차표도 예매합니다. 이런 기능도 편리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그 앱을 까는 이유는 택시를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호출 서비스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넘긴 완전한 승리자입니다. 시장 지배력을 점점 확장하면서 이미 다른 군소 콜택시 업체들을 무너뜨렸고, 자동결제의 편리함과 안심귀가 서비스에 익숙해져 대로변에 서서 손을 들고 택시를 기다리기보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해서 타고는 합니다. 불안한 마음에 택시 번호를 찍어서 가족에게 전송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점점 더 카카오의 호출 서비스에 의존하게 됩니다.
국민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면서 일군 이 성공은 카카오모빌리티의 혁신적인 기업활동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치열하게 경쟁하던 초기와 달리 경쟁이 사라진 새로운 상황에서 라이언이 과연 그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나갈지 걱정이 앞섭니다.
택시라면 사실 저도 꽤 할 말이 많습니다. 택시와 관련해 이준석은 3개의 분열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혼종 아닙니까. 지금은 정치인의 위치에서 교통·배달 플랫폼 앱을 이용하는 자영업자들이 토로하는 과도한 수수료 관련 탄원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이전의 본업이던 프로그래머 처지로 생각해보자면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규제에 신음하고 역정 내는 소리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9만9000원의 무게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선명한 것은 고작 두 달 해봤으면서 제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 택시 운전자의 정체성입니다. 새벽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납금은 채우고 집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카카오 콜을 잡기 위해 휴대전화 화면에 손을 얹어 놓고 대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가뭄에 콩 나듯 떨어지는 노원, 도봉 방향 콜을 찰나의 경쟁 속에서 낚아챘을 때의 짜릿한 기분이 생생합니다. 차고지에 차를 반납하면서 2만 원이 더 미터기에 찍힌 걸 보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누군가는 "고작" 이라고 말할 그 2만원 말입니다.

지난 2019년 당시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왼쪽)이 운전하는 택시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당시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왼쪽)이 운전하는 택시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카카오모빌리티는 독과점으로 확보한 시장에서 택시 기사들에게 '우선 배차를 받기 위해 9만 9000원짜리 멤버십에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서울 개인택시의 60%가 연 매출이 3000만원 이하인 상황에서 1년에 120만 원짜리 멤버십에 가입해야 우선 배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가혹하게 들립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궁지에 몰린 개인택시 기사들의 저항을 이미 경험해본 바 있습니다. 과거 카카오 카풀 영업이 본격화하면 소득은 떨어지고 비싼 값에 싼 번호판(라이선스)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무려 세 분의 택시 기사가 분신했습니다. 그만큼 택시 기사들은 절박하고 약한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통해 독과점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양태에 대한 규제는 강화될 것입니다. 국민의힘도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호출을 독과점하는 상황에서 택시 기사들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서비스 요금 인상 등의 남용행위가 발생하면 공정거래법 4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규제를 주장하겠습니다.
경제활동의 과실이 각 주체의 기여에 따라 민주적으로 분배되는 것,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택시 기사는 그 나름대로 소비자 편익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만큼, 라이언 역시 혁신적인 서비스로 이바지한 만큼 가져가는 그 간단한 법칙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귀여운 라이언은 항상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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