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건강한 가족] 소리 안 들리면 뇌까지 퇴화…'밥'과 '밤' 구분 안 되면 난청 의심을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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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올바른 난청 대처법

구자원 대한이과학회장이 난청의 진단·관리를 위한 정기적인 청력 검사와 보청기·인공와우 수술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구자원 대한이과학회장이 난청의 진단·관리를 위한 정기적인 청력 검사와 보청기·인공와우 수술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9월 9일은 귀의 날이다. 숫자 ‘9’가 귀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1962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지정한 후 6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난청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기만 하다. “난청은 피할 수 없다” “인공와우 수술은 부작용이 크다”며 들리지 않는 고통을 참고 사는 환자가 부지기수다.

난청은 ‘사회적 암’이다. 한번 손상된 청력은 자연히 회복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해 학업·업무 능력을 떨어뜨리거나 사회적 단절로 인한 우울증·치매의 위험을 키운다. 반면에 치료 시 개선 효과는 어떤 질환보다 드라마틱하다고 평가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구자원(대한이과학회장) 교수는 “암이나 만성질환처럼 난청 치료도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크다”며 “건강 상태나 원인에 따른 ‘맞춤 관리’로 누구든 삶의 질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적으로 취약하면 젊을 때도 발병

난청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 소아는 물론 성인도 ‘난청 유전자’가 있으면 젊을 때부터 소리가 안 들릴 위험이 더 크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최병윤 교수는 “똑같은 소음에서도 ‘난청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청력 손상이 더 심하고 잘 회복되지도 않는다”며 “비교적 젊은 20~40대도 얼마든 난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층은 과도한 이어폰 사용이 난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구 교수는 “이어폰의 최대 음량은 100dB(데시벨) 정도로, 15분 이상 노출되면 심한 청력 손상이 시작되는 수준”이라며 “버스·지하철이나 식당의 소음(약 80dB)을 이기려 이어폰 음량을 높이다가 자기도 모르게 청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젊을 때 청력이 손상되면 노화로 인한 노인성 난청도 더 빨리, 심하게 나타난다. 청력을 책임지는 달팽이관의 유모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숫자가 감소하는데, 앞서 과도한 소음 등으로 손상을 받은 상태라면 남은 유모세포의 기능이 훨씬 빨리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인성 난청은 단순히 들리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울증이나 경도인지장애·치매 등 정신 질환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의 연구(2011)에 따르면 정상 청력과 비교해 경도·중도·고도 난청일 때 치매 발병률은 각각 1.89배, 3배, 4.94배나 높았다. 구 교수는 “난청을 방치할수록 사회적 고립·단절로 정신 건강이 나빠질 위험이 커진다”며 “난청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소리 구분 잘 못하면 수술 필요

일반적으로 난청은 서서히 진행한다. 소리는 고막·이소골·달팽이관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데, 처음에는 소리를 모으는 능력이 줄다가 나중에는 이를 해석하는 뇌 영역이 퇴화해 말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어음 변별력)까지 떨어진다. 치료법도 증상에 따라 세분된다. 초기 난청의 ‘해결사’는 보청기다. 소리의 크기·높낮이를 조절해 청력을 회복시키는 장치로 과거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귀속형(고막형), 조작이 쉬운 귀걸이형(개방형) 등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중고도 난청 이상(청각장애)일 땐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 부담도 덜 수 있다.

보청기로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거나 착용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인공와우 수술이 추천된다. 특히 난청을 오래 앓아 ‘밤’ ‘발’ ‘밥’처럼 비슷한 소리를 구분하기 어렵다면 보청기보다 인공와우 수술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공와우는 크게 내부 장치(미세 전극)와 외부 장치로 구성된다. 소리를 외부 장치로 모은 뒤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고, 이를 달팽이관과 연결한 미세 전극에 보내 청신경을 직접 자극한다.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1980년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뒤 수십 년간 시행되며 효과와 안전성을 두루 입증한 난청의 표준 치료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아부터 90대 고령층까지 매년 800여 건의 인공와우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수술 시간은 2시간 이내로, 귀 뒤편을 절개한 후 곧바로 달팽이관에 접근하기 때문에 흉터가 눈에 띄지 않고 고막·이소골 등 주변 조직도 손상하지 않는다. 최 교수는 “중이염처럼 염증이 동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하기에 후유증 위험도 다른 수술과 비교해 적거나 비슷하다”며 “인지 기능이 유지되고 청력이 상실된 기간이 짧을수록 수술 결과가 좋은 만큼 적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청력 검사는 10분 내외면 완료된다. 신생아의 경우 검사 비용과 난청 진단 시 보청기·인공와우 수술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검사 기회가 적은 학생·고령층이다. 구 교수는 “현재 학교에서 시행하는 간이 청력 검사로는 실제 환자의 10% 정도밖에 찾아낼 수 없다”며 “난청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손실이 큰 질환인 만큼 조기 진단을 위한 생애주기별 청력 검진과 보청기·인공와우 지원 범위 확대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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