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하면 과학은 발전 못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김영기 시카고대 석좌교수, 2024년 미 물리학회장에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 선거에서 부회장 겸 차기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2024년 회장에 오른다. [사진 김영기 석좌교수]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 선거에서 부회장 겸 차기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2024년 회장에 오른다. [사진 김영기 석좌교수]

“키 155㎝의 조그만 아시아 여성이 미국 대학 강단에 서니, 처음엔 아무도 교수로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달리 보면 그게 나를 단 한 번에 기억하게 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죠.”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국 여성 과학자가 미국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깼다.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APS·American Physical Society) 선거에서 부회장 겸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59)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의 얘기다.

그는 내년 부회장을 거쳐, 2023년 차기 회장, 2024년 회장에 오른다. 미국 물리학회는 매년 이맘때 선거를 통해 부회장과 차기 회장, 회장 등 회장단을 뽑는다. 각 보직의 임기는 1년으로, 부회장은 이듬해에 차기 회장에, 그다음 해엔 회장에 자동 취임한다. 한국인이 미국 물리학회 회장에 오르는 것은 1899년 이 학회 창립 이후 처음이다.

미국 물리학회는 독일 물리학회에 이어 세계에서 소속 과학자 숫자로는 두 번째로 크다. 노벨 물리학상의 산실인 미국 물리학회를 이끄는 역할뿐 아니라, 미 행정부에 과학정책을 자문하고, 과학 대중화에도 나선다.

김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에서 학·석사를 했고, 미국 유학을 떠나 입자물리학의 산실인 로체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원과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UC버클리대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물리학과장을 맡고 있다. 2000년에는 과학저널 디스커버리가 선정한 ‘21세기 세계 과학을 이끌 과학자 20인’에 뽑혔다. 중앙일보가 12일 오전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미국 시카고 자택의 김 교수를 인터뷰했다.

미국 물리학회 회장단에까지 오른 비결은.
“연구자로서 내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간 여러 가지 일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고, 그렇게 신뢰를 쌓아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큰 단체를 맡게 됐다.”
어떻게 미국 물리학회를 이끌 생각인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면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 국적이나 인종·성별의 차별 없이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 미국 물리학계도 아직 여성은 20%에 불과하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여성으로서 차별은 없었나.
“나는 그런 걸 잘 못 느끼는 스타일이다. 좋지 않은 건 새겨듣지 않고 훌훌 털어버린다. 다만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건 있다. 관련 연구도 있다. 미국 사회에서 승진이 가장 빠른 집단이 백인 남성이다. 이후 백인 여성-흑인 남·여성-히스패닉 남·여성-아시안 남성 순이다. 아시아 여성은 가장 밑바닥에 있다.”
언제부터 물리학자를 꿈꿨나.
“대학 1학년 때까지도 물리학자가 되리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땐 학부 1학년까지는 전공 없이 이공계 학부로 지냈다. 1·2학년 때까지 탈춤 동아리에 빠져 공부도 뒷전이었다. 노느라 학점이 시들시들했다. 친구들 얘기를 듣고 입자물리학의 세계를 알게 됐고, 3·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물론 이후엔 학점이 좋았다.”
물리학은 ‘천재들의 학문’이라 불린다. 그것도 미국에서, 힘들지 않았나.
“한국은 주입식 공부 위주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거침없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낸다. 난 한국에서도 주입식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수학은 좋아하고 잘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수학의 여왕’이란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수학엔 자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