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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웃과 손 잡고 대의로 나아갔다…이게 내가 아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20주년인 11일(현지시간) 미국의 단합을 호소했다[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20주년인 11일(현지시간) 미국의 단합을 호소했다[AP=연합뉴스]

9ㆍ11테러 발생 20주년을 맞아 미국 전ㆍ현직 대통령들은 나라가 분열되고 극단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외 테러리스트와 국제 사회를 향한 메시지는 확 줄었고, 미국인을 향해 대단결과 국가 통합을 촉구하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9ㆍ11테러 20년 맞아 단합 호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인 질 여사와 11일(현지시간) 오전 테러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도 함께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는 펜실베이니아주 생스빌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2001년 테러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이 날 연설에서 사건 발생 이후 단합했던 미국인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정치적 분열을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인 부시 전 대통령은 나머지 민주당 소속 전·현직 대통령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공개한 사전 녹화 영상에서 9ㆍ11 직후 경험한 '국가 통합'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9ㆍ11테러 이후 몇 주, 몇 달 동안 나는 놀랍고, 회복력 있으며, 단결된 국민을 이끌게 돼 자랑스러웠다”면서 “미국의 단합이란 측면에서 그 시절은 지금의 우리와는 동떨어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모든 견해차를 언쟁으로, 모든 언쟁을 문화 충돌로 바꾸는 악랄한 힘(malign force)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을 지적했다.

또 "정치의 많은 부분이 분노, 두려움, 억울함에 노골적으로 호소하기에 나라와 미래를 걱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9ㆍ11테러 발생 직후 미국인들이 어땠는지를 설명했다.

부시는 “미국이 시험대에 선 슬픈 날에 국민 수백만 명이 본능적으로 이웃의 손을 잡았고 함께 대의를 향해 결집해 나아갔다"면서 "이게 내가 아는 미국"이라고 말했다.

또 "종교적 편협함이 있을 때도 미국인들이 편견을 거부하고 이슬람 신앙을 포용하는 것을 봤다", "토착주의가 외부인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때도 미국인들은 이민자와 난민들에 대한 환영을 재확인하는 것을 봤다"면서 문장 끝에 "이게 내가 아는 미국”이라고 반복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이게 내가 아는 미국"을 네 번 외칠 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면서 “이건 단순히 향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며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고 우리가 될 수 있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 내 폭력을 부추기는 과격한 세력이 국외 테러리스트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의 폭력적인 극단주의자와 국내의 폭력적 극단주의자 사이에 문화적 공통점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다원주의를 무시하고, 인간 생명을 경시하며, 국가의 상징을 더럽히려는 결단력에서 그들은 같은 사악한 정신(foul spirit)의 아이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과 맞서는 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의무“라고 덧붙였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월 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을 국내의 폭력적 극단주의자로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추모식이 열린 생스빌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추락한 곳이다. 테러범들이 항공기를 워싱턴DC 국회의사당 공격에 사용하려 했지만, 승객들이 이를 저지해 들판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주둔 미군 완전 철수로 20년 전쟁을 끝냈다.

부시 대통령이 목소리를 낸 데 비해 정작 현직인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 발생지인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주, 워싱턴DC 인근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 세 곳을 하루에 모두 돌았는데, 어디에서도 연설이나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1일(현지시간) 9/ 11 테러 20주년 기념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1일(현지시간) 9/ 11 테러 20주년 기념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사전 녹화 영상에서 ”9ㆍ11테러 이후 곳곳에서 영웅적 행위를 봤고 국가 통합의 진정한 의미를 느꼈다”면서 하지만 이후 “국민 단합이 약화하는 것을 봤고, 단결이 결코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단합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미국이 최고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 9ㆍ11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CNN은 “참모들이 연설을 고려했다가 수치스러운 역사의 날에 맞춰진 연설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아프간 철군 종료 대국민 연설에서 20년 전쟁을 끝내는 소회를 이미 밝힌 데다 혼란스러운 철군 과정으로 여야 모두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예고 없이 뉴욕시 맨해튼의 경찰서를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생중계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이날 뉴욕에서 열린 추모식은 구슬픈 백파이프가 울리면서 시작됐다. 유족이 돌아가며 단상에 올라 3000명 가까운 희생자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호명했다. 사망자 이름을 읽는 데만 4시간 넘게 걸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납치된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타워에 처음 충돌한 시간인 8시 46분,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타워를 받은 9시 03분, 펜타곤에 돌진한 9시 37분 등 모두 6차례 짧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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