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리학계 유리천장 깼다…회장단 입성 韓 여성 과학자 비결

중앙일보

입력 2021.09.12 17:02

업데이트 2021.09.13 08:33

[인터뷰]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 선거에서 부회장 겸 차기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부회장과 차기회장을 거쳐 2024년에 회장에 오른다. [사진 김영기 교수]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 선거에서 부회장 겸 차기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부회장과 차기회장을 거쳐 2024년에 회장에 오른다. [사진 김영기 교수]

 “키 155㎝, 조그만 아시아 여성이 미국 대학 강단에 서니, 처음엔 아무도 교수로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달리 보면 그게 나를 단 한 번에 기억하게 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죠. ”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국 여성 과학자가 백인ㆍ남성이 주류인 미국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깼다. 지난 8일 미국 물리학회(APSㆍAmerican Physical Society) 선거에서 부회장 겸 회장단에 오른  김영기(59ㆍ사진)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의 얘기다.  그는 내년 부회장을 거쳐,  2023년 차기회장, 2024년 회장에 오른다. 미국 물리학회는 매년 이맘때 선거를 통해 부회장과 차기회장, 회장 등 회장단을 뽑는다. 각각의 임기는 1년으로, 부회장은 이듬해에 차기회장으로, 그 다음해엔 회장에 자동 취임한다. 한국인이 미국 물리학회 회장에 오르는 것은 1899년 학회 창립 이후 처음이다. 독일 물리학회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물리학자 단체인 미국 물리학회는 역할로 보면 세계 최대다. 노벨 물리학상의 산실인 미국 물리학회를 이끄는 역할뿐 아니라, 행정부의 과학정책 자문, 입법부의 관련 입법활동에 대한 지원, 과학 대중화 등 다양하다. 회원이 약 5만5000명, 이 중 25%가 외국학자다. 중앙일보가 12일 오전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미국 시카고 자택에 있는 김 교수를 인터뷰했다. 컴퓨터 스피커 너머로 진한 경상북도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 물리학회 회장단에까지 오른 비결이 뭔가
연구자로서 내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간  여러 가지 일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고, 그렇게 신뢰를 쌓아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큰 단체를 맡게 됐다.

(사실 김 교수는 진작부터 세계 물리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고려대 물리학과에서 학ㆍ석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  입자물리학의 산실인 로체스터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과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강단에서는 UC버클리대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물리학과장을 지내고 있다. 2000년에는 과학저널 디스커버리가 선정한 ‘21세기 세계과학을 이끌 과학자 20인’에 뽑혔고, 2008년에는 시카고 비즈니스가 선정한 ‘주목할 여성’(Woman to Watch)에 올랐다.)

미국 사회 속에서 아시아인ㆍ여성으로서 차별은 없었나.
나는 그런 걸 잘 못 느끼는 스타일이다. 좋지 않은 건 새겨듣지 않고 훌훌 털어버린다. 다만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건 있다. 관련 연구도 있다. 미국 사회에서 승진이 가장 빠른 집단이 백인 남성이다. 이후 백인 여성-흑인 남ㆍ여성-히스패닉 남ㆍ여성-아시안 남성 순이다. 아시아 여성은 가장 밑바닥에 있다.
물리학은 천재들의 학문이라 불린다. 그것도 미국에서, 힘들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유학 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공부 방식이 달라서 힘들 뿐이다. 한국은 주입식 공부 위주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거침없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낸다. 난 한국에서도 주입식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외우는 걸 싫어하고 못했다. 다만 수학은 좋아하고 잘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수학의 여왕’이란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수학엔 자신 있었다.
언제부터 물리학자를 꿈꿨나.
대학 1학년 때까지도 물리학자가 되리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땐 학부 1학년까지는 전공 없이 이공계 학부로 지냈다. 1ㆍ2학년 때까지 탈춤 동아리에 빠져 공부도 뒷전이었다. 노느라 학점이 시들시들했다.(C학점, D학점이란 얘기) 친구들 얘기를 듣고 입자물리학의 세계를 알게 됐고, 3ㆍ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물론 이후엔 학점이 좋았다.
김영기 시카고대 교수의 부회장 당선을 알린 미국 물리학회 홈페이지.

김영기 시카고대 교수의 부회장 당선을 알린 미국 물리학회 홈페이지.

입자물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입자물리학은 인간이나 지구ㆍ우주를 만들고 있는 기본 알맹이를 찾는 것이다. 어떤 힘이 작용해서 우주를 만들었는지, 그 구성원과 힘의 작용을 연구하는 거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근본적인 철학ㆍ종교의 물음과도 비슷하다. 나는 과학자로서 그런 의문을 실험적으로 밝혀내는 연구를 한다. 우주의 나이가 약 140억년이다. 탄생 초기에는 점처럼 아주 작고, 고온ㆍ고에너지의 우주였는데, 이렇게 커졌다.  입자, 즉 작은 알맹이는 우주 초기와 관계가 있다. 입자를 연구하면 우주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최근 입자물리학의 핫이슈는 뭔가  
그간 새로운 입자들이 발견됐는데, 아직 ‘왜’라는 질문에 답을 못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의 질량을 측정하고, 힉스 입자가 전자에 질량을 준다는 것도 밝혀냈다.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는 알지 못한다. 우주 전체 물질의 84% 이상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은 입자물리로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질문에 대한 연구자들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물리학계를 이끌 회장단으로서의 비전을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면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도 충돌하면서 과학이 발전한다. 국적이나 인종ㆍ성별의 차별 없이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 미국 물리학계도 아직 여성은 20%에 불과하다. 
한국 과학계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한국 과학계가 그간 많이 발전이 있었다. 1986년 한국을 떠날 때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크다. 그래도 말할 게 있다면 순수과학은 좀 더 진득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어떤 학문은 결과가 빨리 나올 수도 있지만, 어떤 학문은 한 세대에서 두 세대까지 걸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힉스 입자나,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는지 없는지 이런 연구의 결과를 찾는 데는 40년이 걸렸다. 먼 미래를 보는 여유를 주는 문화가 됐으면 한다. 물론 어느 나라나, 여기 미국도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김영기 교수는
1962년 경북 경산 출생

1984년 고려대 물리학과 학부 졸업
1986년 고려대 물리학과 석사
1990년 미국 로체스터대 박사
1990∼1996년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원
1996∼200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2003년∼현재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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