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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3까지 쥐어짠 '펜트하우스'… 남은 건 방심위 민원 831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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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부동산 지옥, 입시지옥을 그린다며 지난해 시작한 SBS '펜트하우스'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사진 SBS

부동산 지옥, 입시지옥을 그린다며 지난해 시작한 SBS '펜트하우스'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사진 SBS

지난해 10월부터 약 1년을 이어온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10일 시청률 19.1%로 막을 내렸다.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소재,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 배우들의 연기 등으로 화제를 모으며 최고 시청률이 시즌1은 28.8%, 기세를 몰아 시즌2는 29.2%를 기록했지만, 시즌3은 20%를 넘기지 못한 채 끝을 맺었다.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는 2008년 ‘아내의 유혹’으로 시청률 37.5%를 기록하며 ‘막장 드라마 시대’를 새롭게 열었던 작가로, 시즌제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순옥 월드’‘순옥적 허용’이란 말도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과장을 감안하고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도, 시청률 추이로 보면 시즌3까진 다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①‘이유 없는’막장…“상업적 성공에 시청자 동원된 것”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총기사용, 불륜 등 자극적 소재와 더불어 주인공들 사이 얽힌 악연으로 치열한 스토리를 펼치며 시즌 1에서 28%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존 막장드라마보다 젊은 연령대,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초반 화제성을 높였다. 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총기사용, 불륜 등 자극적 소재와 더불어 주인공들 사이 얽힌 악연으로 치열한 스토리를 펼치며 시즌 1에서 28%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존 막장드라마보다 젊은 연령대,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초반 화제성을 높였다. 사진 SBS

‘펜트하우스’는 시청률을 위한, 시청률에 의한 드라마였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은 KBS 주말극을 제외하면 근래 보기 드문 수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젊은 배우들을 기용해 남녀관계, 결혼생활 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40대 전후 연령층을 ‘막장 드라마’로 새롭게 유입시키며 시청률을 끌어올렸다”며 “장르물, 게임에 익숙한 세대라 ‘펜트하우스’의 과한 설정도 하나의 세계관, 플레이로 수용하고 보게 된 면도 있다”고 평했다.

‘펜트하우스’는 10일 시즌3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3명이 잇달아 사망하며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주요 캐릭터 6명이 죽는 전무후무한 엔딩으로 끝났다. ‘유령 재회’도 등장한다. 앞선 전개에선 박은석은 1인 3역, 이지아는 1인 2역으로 변신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고,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주요 캐릭터들이 이후 멀쩡하게 다시 '부활'하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이 모두 죽어도 '충격적이지 않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았다. 동시에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본 시청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고 허탈한 결론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즌1부터 개연성을 무너뜨리면서 채운 판타지로 시청률을 만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도저히 마무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펜트하우스'는 시청자를 동원해 상업적 파티를 했고, 앞으로 드라마 판이 더 '시청률 만능주의'로 빠질까 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시즌1의 높은 시청률이 시즌3까지 만들어낸 셈이지만, 뒷심은 약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상태에서 자극적인 장면을 계속 쥐어짜다 보니 잔인함이 부각돼 피로감이 커졌다”며 “결국은 시청자가 눈길을 피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펜트하우스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극적으로 만들었더니 사람들이 많이 보고 시청률도 잘 나오더라'는 분위기가 될까 봐 무섭다. 그걸 용인하게 되는 게 문제"(정덕현 평론가)라는 우려다. 하재근 평론가는 “지금 지상파는 돈이 된다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자극적이고 시청률만 높은 드라마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면 결국은 지상파 콘텐트의 품위와 신뢰도가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해악이 될 것”이라며 “젊은 층부터 지상파 드라마를 더 안 보게 되는 악순환을 가속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②드라마는 끝났지만, 민원 831건이 남았다

지난 3일 방송된 '펜트하우스3' 12회에서 헤라팰리스 붕괴를 그린 장면(위)과 6월 광주 공사장 붕괴 당시 실제 뉴스 화면. 실제 사고 영상을 드라마에 사용한 12회차에 대해서만 방심위에 민원 25건이 접수됐다. SBS 캡처

지난 3일 방송된 '펜트하우스3' 12회에서 헤라팰리스 붕괴를 그린 장면(위)과 6월 광주 공사장 붕괴 당시 실제 뉴스 화면. 실제 사고 영상을 드라마에 사용한 12회차에 대해서만 방심위에 민원 25건이 접수됐다. SBS 캡처

드라마가 현실과 엮이는 지점은 더욱 섬세하게 다뤄야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시즌을 더하며 그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 27일 방송에서 욕망의 상징인 극 중 초고층 아파트 ‘헤라팰리스’가 무너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평론가들은 일제히 “문제의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 장면은 지난 6월 광주 학동 붕괴 사고 실제 영상을 썼다가 맹비난을 받고 제작진이 사과하기도 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9·11급 재난을 아무 감정 없이 짧게 지나가는 데서, 사고를 드라마적 장치로만 이용하는 작가의 무신경함이 무섭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시청자 비판도 뜨거웠다. 시즌 1~3을 통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접수된 민원은 831건(10일 기준)에 달한다. 시즌 3에 대한 민원은 25건, 이 중 대부분이 헤라팰리스 붕괴 장면과 관련한 내용이다. 민원 처리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방심위 4기 임기가 지난 1월 끝난 뒤 뒤 5기 구성이 미뤄지면서 205일간 회의가 열리지 못한 탓이다. '펜트하우스'는 방송 초반인 시즌1 2회의 지나친 폭력 묘사에 대해 법정제재인 ‘주의’를 받은 게 전부였다. 새로 구성된 5기는 2일 소위 회의에서 시즌2의 3회·10회에 대해 일단 '의견진술'을 결정한 상태다. 드라마는 끝나지만, 그간 벌인 ‘자극 파티’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방심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눈치 정도는 봤을 텐데 시즌1,2보다 더 눈길을 끌어야 하는 시즌3에서 브레이크 없이 더 강한 자극만 좇게 된 격"이라고 풀이했다.

④"황당한 스토리 납득, 그나마 김소연 등 배우 덕"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폭력, 살인, 치매행세 등 온갖 극단적 상황을 겪으며 극악의 감정기복을 보이는 캐릭터 '천서진'을 연기한 배우 김소연. 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폭력, 살인, 치매행세 등 온갖 극단적 상황을 겪으며 극악의 감정기복을 보이는 캐릭터 '천서진'을 연기한 배우 김소연. 사진 SBS

김소연, 이지아, 유진 등 주연 배우들은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2000년 '이브의 모든 것' 2010년 '검사 프린세스' 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김소연,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력 상승을 보여온 유진, 2007년 '태왕사신기'로 데뷔한 이지아 모두 ‘펜트하우스’로 이른바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김소연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뮤지컬계 스타 엄기준, 박은석 등도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기회였다. “무리한 악역을 소화하느라 배우 개개인은 힘든 드라마였겠지만, 여러 배우들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김헌식), “황당한 스토리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에는 김소연을 비롯한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 이번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이자 구원자”(하재근)등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반면 정덕현 평론가는 “이들에게 ‘펜트하우스’가 대표작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며 "시청률이 높아 제작사와 방송사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배우 개인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득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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