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드 전설의 땅 쓸까…탈레반 찌른 '아프간 파촉' 판지시르

중앙일보

입력 2021.09.12 05:00

업데이트 2021.09.1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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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이하 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의 주도 바자라크에 탈레반 깃발이 올라갔다. 이로써 내전이 사실상 끝난 듯했다. 판지시르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NRFA)의 근거지다.

판지시르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NRFA)의 정예부대. 이들은 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특수부대인 코만도 출신이다. NRFA

판지시르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NRFA)의 정예부대. 이들은 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특수부대인 코만도 출신이다. NRFA

그러나…. NRFA가 치열하게 반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전황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그러면서 ‘역시 판지시르’라는 얘기가 나온다.판지시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선 난공불락과 저항의 상징이다.

점령과 탈환, 공방전 안갯속 판지시르 전황

NRFA의 대변인인 알리 마이삼 나자리는 “NRF는 판지시르의 60%를 아직도 장악하고 있다. (바라자크 등 도시를 탈레반에 내준 것은) 전술적 후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6일 “판지시르주는 탈레반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주도 바자라크 주정부 청사를 점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탈레반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주도 바자라크 주정부 청사를 점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탈레반

누구 말이 맞을까. 탈레반과 NRF 모두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24시간 뉴스 매체인 톨로뉴스에 따르면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도로와 통신망을 모두 끊었다. 이 때문에 판지시르 현지의 전황과 상황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인 프리랜서 기자인 나티크 말리크자다는 6일 트위터에 “탈레반은 (판지시르주의) 도로와 인근 지역을 점령했다. 나머지 지역에서 NRFA가 탈레반에 대항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며 “탈레반은 빈 건물과 도로만 차지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또 탈레반이 판지시르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주민을 납치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린다. 이는 탈레반이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판지시르의 도시를 점령한 탈레반이 청년과 청소년을 트럭에 태워 강제로 납치하고 있다. 트위터 NRF Reporting 계정 캡처

판지시르의 도시를 점령한 탈레반이 청년과 청소년을 트럭에 태워 강제로 납치하고 있다. 트위터 NRF Reporting 계정 캡처

네이버 블로그에서 아프가니스탄 내전 소식을 전하고 있는 sundin은 “NRFA는 탈레반으로부터 판지시르의 4개 행정구를 다시 탈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양측이 치열하게 공방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지시르는 아프간의 파촉  

판지시르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주다. 페르시아어로 ‘다섯 마리의 사자’라는 뜻의 판지시르는 지형이 험하다. 힌두쿠시 산맥의 높은 산들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판지시르 저도. 수도 카불에서 70㎞ 북동쪽에 있다. The National

아프가니스탄의 판지시르 저도. 수도 카불에서 70㎞ 북동쪽에 있다. The National

벼랑을 깎아서 만든 길도 있다. 트럭은 엄두도 못 내고 4륜구동이 간신히 지나가는 길도 있다. 헬기만 병력과 물자를 보내는 곳이 허다하다. 외부에서 쳐들어가기 쉽지 않은 땅이다. 『삼국지』의 파촉(巴蜀)과 같다.

역사도 판지시르가 난공불락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88) 때 소련군은 판지시르 소탕전을 9차례나 벌였다. 판지시르엔 소련군의 보급로가 지나갔다. 이곳 무자헤딘(반소련 게릴라)이 보급병참 부대를 자주 습격한 것이다.

탈레반을 기습공격한 NRFA 전사들이 퇴각하고 있다. RESISTANCE FRONT 트위터 계정 캡처

탈레반을 기습공격한 NRFA 전사들이 퇴각하고 있다. RESISTANCE FRONT 트위터 계정 캡처

소련군은 전투기와 포병으로 화력을 퍼부은 뒤 헬기로 공수부대를 나르고, 보병을 실은 장갑차가 탱크의 엄호를 받으며 진격했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병력을 잘게 나눠 도망간 뒤 유리하다 싶으면 다시 모여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소련군이 판지시르의 거점을 확보하더라도 무자헤딘의 기습에 병력 손실이 컸기 때문에 매번 철수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처음 통치하던 1996~2001년에도 탈레반 저항 세력인 북부동맹은 아프가니스탄의 10%를 세력권으로 삼았다. 판지시르가 그 핵심이었다.

1981년 2월 25일 판지시르 계곡에서 파괴된 채 버려진 소련군 T-62 탱크. 수송행렬을 엄호하다 마수드의 무자헤딘에게 당했다. The National

1981년 2월 25일 판지시르 계곡에서 파괴된 채 버려진 소련군 T-62 탱크. 수송행렬을 엄호하다 마수드의 무자헤딘에게 당했다. The National

소련군과 탈레반은 판지시르의 점(도시)과 선(도로)을 가졌지만, 면(계곡)은 무자헤딘, 북부동맹, NRFA의 차지였다.

마수드의 전설이 서려 있는 판지시르

판지시르의 인구는 적지만, 이곳의 주요 종족인 타지크족은 투지가 넘친다. 이들의 투지를 한곳으로 모아 소련군과 탈레반에 맞선 지도자가 아흐마드 샤 마수드(1953~2001)다.

소련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그의 무자헤딘들. Reddit

소련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그의 무자헤딘들. Reddit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물론 탈레반에겐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다.

그는 카불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소련이 1979년 조국을 침공하자 판지시르에서 총을 들고 싸웠다. 마수드는 게릴라 전술로 소련군의 9차 판지시르 공세를 막아냈다. 친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첩자를 심어 소련군의 정보를 빼냈다.

그는 외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당시 소련과 냉전 중인 미국은 반소 무자헤딘을 도왔다.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종족인 파슈툰족이 아니라 타지크족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무자헤딘간 다리 역할을 하는 파키스탄은 파슈툰족 무자헤딘을 주로 챙겼다. 파키스탄의 주요 종족은 파슈툰족이다.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도시를 점령한 뒤 NRFA의 UH-60 헬기를 둘러보고 있다. NRFA는 헬기를 비롯 탱크, 다연장포, 고사포 등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다. 탈레반

탈레반이 판지시르의 도시를 점령한 뒤 NRFA의 UH-60 헬기를 둘러보고 있다. NRFA는 헬기를 비롯 탱크, 다연장포, 고사포 등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다. 탈레반

마수드의 가장 든든한 뒷배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었었다. 마수드는 소련군과 싸우면서도 판지시르에 수도와 전기시설, 병원을 지었다. 민생을 챙기기 위해서다. 학교를 세웠는데, 무려 남녀공학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이었지만, 마수드는 여성의 권리를 인정했다.

1989년 소련군이 철수한 뒤 아프가니스탄에서 친소 정권이 무너졌다.  정권을 장악하려는 무자헤딘 사이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서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이 틈을 탄 탈레반이 96년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했다.

마수드는 다시 총을 들었다. 탈레반은 마수드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다.

9ㆍ11 테러가 일어나기 이틀 전인 2001년 9월 9일 서방 기자로 위장한 알카에다 테러범이 카메라로 위장한 폭탄을 터뜨려 마수드를 암살했다.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는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가운데 찻잔을 든 남성). 현재 판지시르 계곡에서 탈레반과의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NRFA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가운데 찻잔을 든 남성). 현재 판지시르 계곡에서 탈레반과의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NRFA

마수드의 유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하다. NRFA의 지도자는 그의 큰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이 맡고 있다. 아들 마수드는 마수드 주니어라고도 불린다.

투지는 넘쳐흐르나, 탄약과 식량이 부족

파키스탄의 정보기관인 ISI의 수장인 파이즈 하미드가 4일 카불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후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개입한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났다.

판지시르에 나타난 파키스탄 무인기. 이 무인기가 NRFA 진지를 폭격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트위터

판지시르에 나타난 파키스탄 무인기. 이 무인기가 NRFA 진지를 폭격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트위터

파키스탄의 무인기인 CH-4가 판지시르에서 NRFA를 폭격하고 있다고 한다. 또 파키스탄 특수부대가 탈레반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탈레반이 1996~2001년처럼 강경하고 편협하게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다면 NRFA는 판지시르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파키스탄의 개입이 명확해지면서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경계하는 주변국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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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NRFA는 형편이 좋지 않다. sundin은 “과거 북부동맹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도움을 얻었지만, 현재 이들 국가는 관망하고 있다”며 “NRFA가 탄약과 군수품, 식량, 의약품 보급을 계속 받지 못한다면 장기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반 탈레반 세력인 우즈베크족과 그들의 지도자 압둘 라시드 도스툼은 아직 NRFA와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상태다.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소련군과 탈레반을 물리친 판지시르와 마수드의 저항 정신은 한동안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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