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야 애 낳나요"…美 대졸 30대女 넷 중 하나 비혼 출산

중앙일보

입력 2021.09.12 05:00

미국 뉴욕에서 대학 졸업 후 특수교육 교사로 근무하는 제니퍼 크루즈(36)는 6년 전 첫 아이를 출산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았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자발적 미혼모, 이른바 ‘비혼(非婚) 출산’이었다.

미국에서 고학력 여성의 비혼 출산율이 22년 만에 6배 이상 증가했다. [픽사베이]

미국에서 고학력 여성의 비혼 출산율이 22년 만에 6배 이상 증가했다. [픽사베이]

미국에서 고학력 여성의 비혼 출산이 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5년간 30대 중반 미국 여성의 결혼 전 첫 아이 출산율이 꾸준히 증가한 가운데 고학력 여성 사이에서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앤드류 셜린 교수 연구팀은 이런 내용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7~2018년 국가 인구통계학 데이터를 분석해 1996년 자료와 비교·분석했다.

대졸 여성 비혼 출산, 22년간 6배 이상 급증  

이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비혼 출산은 1996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연구팀은 32~38세 여성을 학력으로 나누어 분석했는데, 고졸 미만 여성의 비혼 출산율은 1996년 48.2%에서 86.5%, 고졸의 경우 19.4%에서 61.8%로 각각 1.7배, 3배 이상 늘었다.

그중에서도 고학력으로 불리는 대졸 이상 여성에서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이 경우 1996년 4.0%에서 2017~2018년 24.5%로 22년 사이 6배 이상 뛰었다.

미국 32~38세 여성의 비혼 출산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32~38세 여성의 비혼 출산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크루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서른 살 이전에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출산을 위한 결혼은 싫었다. 첫 아이를 낳은 뒤 이상형을 만나 결혼했고,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크루즈는 “왜 결혼과 출산을 분리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내 아이를 가질 자유가 있다고 느꼈고,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가 된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셜린 교수는 “이 결과로 볼 때 2021년 현재 30대 대졸 여성의 18~27%는 비혼 출산했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과거 대졸 여성에게 비혼 출산은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늘어난 빚에 결혼 늦춰…경제적 안정이 우선

미국에서 한 워킹맘이 아이를 안고 화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한 워킹맘이 아이를 안고 화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점은 비혼 출산 당시 상당수가 아이의 아빠와 동거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결혼했는데, 상대는 첫 아이 아빠인 경우가 많았다. 계획적으로 결혼을 미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비혼 출산을 부추겼을까. 연구팀은 ‘경제적 어려움’을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학 졸업자의 자금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결혼 시기마저 늦췄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학자금 대출 등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과거보다 낮아진 사회적 분위기도 원인으로 꼽았다. 셜린 교수는 “여전히 대졸 임금이 고졸보다 높지만, 과거만은 못하다”면서 “기대 이하의 임금과 불안정한 직업은 ‘경제적 불안’을 안겼고, 결혼 전 동거를 택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비혼 출산 커플은 “또래 부부와 비슷한 소득 수준을 맞추기 전까지 결혼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내 집 마련과 경제적 여유를 중시하는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연구팀은 전했다.

2020년 3월 공개 석상에 함께 참석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 그의 파트너 캐리 시먼즈.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3월 공개 석상에 함께 참석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 그의 파트너 캐리 시먼즈.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한부모 가족, 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의 등장도 한몫했다. 미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갤럽 여론 조사에서 “아이가 있으면 법적 부부가 되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2006년 49%에서 2020년 29%로 뚝 떨어졌다. 셜린 교수는 “‘결혼은 가족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결혼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거·출산 먼저하는영국과 뉴질랜드 총리 

유럽에서 비혼 출산은 이미 새로운 가족 형태로 자리 잡았다. 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의 비혼 출산율은 각각 56.7%, 55.2%, 54.6%로 법적 부부 출산율을 넘어섰다.

영국의 비혼 출산율도 47.6%로 OECD 가입국의 평균(40.5%)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총리도 결혼 전 동거와 출산을 택했다. 2019년 7월 취임한 보리스 존슨(56) 총리는 여자 친구였던 캐리 시먼즈(32)와 총리 관저에 입주하며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로 관저에 산 첫 번째 총리 커플이 됐다. 이듬해 3월 약혼, 4월 출산 소식을 알린 이들은 지난 5월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2014~2016년 OECD 주요 회원국 비혼 출산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4~2016년 OECD 주요 회원국 비혼 출산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영국은 50년 전 만해도 결혼 전 출산을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미혼모의 사생아를 강제 입양시키는 정책을 펼 정도였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가족 구조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맞춰 정책도 바꾸려고 노력했다. 이에 따라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고, 동거 가족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저신다 아던(41) 뉴질랜드 총리도 비혼 출산했다. 2018년 임기 중 딸을 낳은 그는 이듬해 아이의 아버지 클락 게이포드와 약혼했지만, 여전히 법적 부부 관계가 아니다. 당시 아던 총리는 비혼 출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우리는 서로에게 헌신적이지만 결혼은 우리가 고려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라며 결혼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졌다.

2020년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사유리 인스타그램]

2020년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사유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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