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부자 3대 못간다'틀렸다…100년 부자 데이비스 가문

중앙일보

입력 2021.09.11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86)

부자 가문의 재산은 저절로 대물림되지 않는다. 세심한 계획과 청지기 의식이 없으면 힘겹게 모은 재산은 1~2대 만에 탕진되기 쉽다. 가문의 큰 재산과 영광, 일순간에 사라진다. ‘부자 3대를 못 간다’는 옛 속담이 있다.

책 『부의 대물림』의 서문이다. 눈먼 돈이 어쩌다 굴러들어와 잠시 부자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부자 가문이 대를 이어 100년간 유지된다면? 거기에는 필시 특별한 무엇이 있다. 가문의 구성원은 가장과 아내, 그리고 자녀이다. 구성원들이 가문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가문의 전통은 계승되지 않는다. 배우자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좋은 머리의 배우자는 자녀의 유전인자를 결정한다. 두뇌 회전이 안 되면, 자녀가 자산을 잘 지키고 불리기는 어렵다. ‘100년 부자 미국의 데이비스 가문’의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꼭 부자는 아니더라도, 건강한 자녀교육을 위해 배울 게 있을 것이다.

땀 흘리지 않은 돈을 물려주는 것은 마약과도 같다. 그 돈을 벌기 위한 시련과 위기를 자녀가 직접 맛봐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진정한 유산이며 투자다. [사진 pxhere]

땀 흘리지 않은 돈을 물려주는 것은 마약과도 같다. 그 돈을 벌기 위한 시련과 위기를 자녀가 직접 맛봐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진정한 유산이며 투자다. [사진 pxhere]

1대 데이비스는 1909년생으로,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1932년 결혼한다. 아내는 부잣집 딸로 미국 최고의 여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1933년 처남 회사에 합류, 주식에 대해 첫 경험을 한다. 그의 치밀함과 남다른 재정적인 수완에 처남은 여동생에게 ‘언젠가는 네 남편이 나보다 더 부자가 될 거’라고 한다.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동네 최고 부자인데도 데이비스는 ‘너희가 직접 구덩이를 파야 한다’는 조건을 건다. 2주간 같이 땅을 파서 수영장을 만든다. 1944년 뉴욕주 보험 감독관 보좌관으로 임명된다. 그 덕분에 그는 대차대조표, 수익명세서, 기타 회계자료 등 보험산업에 관한 세세한 부분을 꿰뚫게 된다. 심지어 보험의 수천 년 역사까지 통달한다. 1947년 아내가 조달한 5만 달러를 기초 자본으로 투자회사를 차린다. 보험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승산이 있는 보험주와 가망 없는 보험주를 가려낸다. 1950년 중반 무렵, 그가 투자한 보험주의 가치가 160만 달러로 32배 불어난다.

1957년 아들 셀비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은행 주식분석가로 월스트리트에 입문한다. 1969년 아버지가 스위스 대사로 임명되자, 아들이 뉴욕 벤처펀드 매니저가 된다. 그가 운영한 20년간 평균 펀드 수익률은 S&P 500 지수보다 4.7% 높았고, 초기투자금은 38배로 불어났다. 그는 투자 기업을 방문, 간부 전용 주차장에 공간이 비어있는지 체크했다. 비어 있다면 간부들이 골프를 치러 갔다는 정황증거로 중역이 사적 용무를 더 중시한다고 봤다. 비어있는 공간이 없다면 열심히 일하는 회사로 우선 투자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인기 있는 투기성 투자가 아니라 성실한 기업에 중점 투자했다.

1990년 손자 크리스가 할아버지 회사에 근무하기 시작한다. 1994년 할아버지가 사망, 신탁기금 형태로 9억 달러(약 1조 원)를 남긴다. 2대 셀비와 3대 크리스가 뉴욕 벤처펀드와 기타 데이비스 펀드에 투자한다. 1997년 2대 셀비가 60세가 되자, 일선에서 물러난다. 셀비는 대학에 사저 4500만 달러를 기부한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도 자손에게 직접 자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암시였다.

부자 가문이 3 대를 넘게 이어지려면 필시 특별한 철학이 있을 것이다. 대를 이어 100년간 그 부가 유지되는 데이비스 가문도 그렇다. [사진 pxhere]

부자 가문이 3 대를 넘게 이어지려면 필시 특별한 철학이 있을 것이다. 대를 이어 100년간 그 부가 유지되는 데이비스 가문도 그렇다. [사진 pxhere]

데이비스 가문의 철학은,

▶ 투자의 기초는 검소함이다. 돈을 사막에서 물을 다루듯 소중하게 취급하라.

▶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은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훈련이다. 자식에게 돈을 거저 쥐여주는 것은 자식이 투자를 배우고 돈 버는 기회를 뺏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역사는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하고, 특별한 사람들에게서 깨달음을 배운다. 자녀들에게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데이비스 가문의 투자 신조는,

▶ 헐값의 주식을 피하라. 어설픈 기업은 세월이 가도 잘 변하지 않는다.

▶ 고가의 주식도 피하라. 아무리 좋은 기업도 주가가 너무 비싸면 소용없다.

▶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가격도 적당한 주식을 사라. 가치 투자는 적정가격에 사서 합리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실적이 저조하거나 불확실한 기업을 비싼 가격에 사는 것은 투기다.

▶ 데이비스 펀드의 사명은 ‘현명한 투자’다. 단기적 성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

데이비스 가문은 금융자산으로 돈을 번 집안이다. 인생도 투자도 100m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상승과 하락은 반복된다. 침착하고 인내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았다.

데이비스 가문은 무엇보다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웠다. 시련과 위기를 맛보게 했다. 격변하는 시대에 도전하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했다.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물려주는 것은 마약이다. 삶에 거품이 없는 검소함을 가르쳤다. 한 분야를 꿰뚫어 보는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늘어난 부를 대학에 기부해 미래세대의 성장과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았다. ‘내 새끼, 내 새끼’하면서  무조건 자식에게 쥐여주는 한국 졸부들, 다시 생각할 일이다. 데이비스 가문의 철저한 검소함과 자립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 모두 본받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