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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만 22억→528억...돈냄새 맡은 병원 요즘 눈독들인 수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지난 1년간 서울 강남 일대의 병원을 돌며 각종 수술을 받은 A씨(40·경기도 파주시). 지난해 11월 백내장 수술을 시작으로 올해 1월 자궁근종 치료 , 8월 갑상선 수술 등을 받았다. 백내장 수술비 840만원을 포함, 들어간 병원비만 2050만원이다. 그런데 A씨는 오히려 돈을 벌었다. 병원비는 실손보험 처리했고, 수술비 특약으로 보험금 1000만원을 타면서다.

[요지경 보험사기]

보험업계에서 A씨의 보험 청구 내역은 '의료 쇼핑' 트랜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뒤 치료비가 고가이고, 수술 보험금이 나오는 질환 등을 골라 의료 쇼핑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료 쇼핑' 선량한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도수치료와 백내장 과다치료는 최근 몇년 간 보험업계의 골칫거리다. 상위 5개 손보사(삼성ㆍ현대ㆍDBㆍKBㆍ메리츠)가 백내장 치료에 지급한 보험금만 지난해 4520억원에 이른다. 1년 전인 2019년(3021억원)보다 50% 가량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지급한 보험금도 3430억원이다. 보험업계는 올해 백내장 수술로 나갈 실손보험금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백내장 관련 실손보험 지급액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백내장 관련 실손보험 지급액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백내장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의료쇼핑 코스로 떠오르는 것이 갑상선결절 고주파절제술이다. 고주파절제술은 갑상선에 생긴 결절(혹) 내부에 특수 바늘을 찔러 고주파를 이용해 이를 태우는 시술이다. 병원에 입원할 필요 없이 결절을 제거할 수 있어 수요가 늘고 있다.

보험사간 불붙은 판매 경쟁으로 해당 시술을 받을 때 1000만~2000만원의 정액 수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팔린 뒤 지난해부터 보험금 지급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상위 5개 손보사 기준 올해 상반기 고주파절제술에 지급한 보험금은 759억원이다. 이미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699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수술 보험금 증가세가 훨씬 빠르다. 수술 보험금은 22억(2018년)→54억(2019년)→384억(2020년)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528억원이 지급됐다.

보험업계는 돈 냄새를 맡은 일부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영업에 뛰어들며 생긴 결과로 보고 있다. 실제 B보험사가 수술 보험금 지급액 통계를 내봤더니 전체 보험금 지급액의 81.4%(25억3100만원)가 청구 건수가 상위 10개 병원에 집중됐다.

이 중 청구금액이 가장 많은 C병원의 경우 지난해 3억5600만원의 수술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보험금 청구액이 8억3200만원으로 늘었다. 해당 병원은 보험사기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는 의사 D씨가 새로 개업한 병원이다.

D씨는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쌍꺼풀 수술 등 성형수술을 한 뒤, 도수치료를 받은 것처럼 가짜 서류를 꾸며주고 보험금을 타냈다. 이런 식으로 2016년부터 2년여 151명의 환자에게 도수치료로 위장한 쌍꺼풀 수술을 해줬다.

갑상선결절 고주파절제술 보험금 지급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갑상선결절 고주파절제술 보험금 지급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D씨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몇몇 설계사들의 고객인 것이다. C병원의 경우 한 보험설계사에게 실손보험에 가입한 19명의 환자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이렇게 특정 설계사로 연결된 환자들은 여러 병원에 다니며 고가의 진료를 받는다. 백내장과 하이푸시술 등 비급여진료라서 시술비가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교롭게도 갑상선과 백내장 수술을 잇달아 받은 환자들도 있다. E씨(40·경기도 의정부시)는 지난해 4월에 서울 강남의 한 안과에서 950만원 짜리 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지난 7월 강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310만원 짜리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F씨(49·경기도 시흥시)도 E씨와 같은 안과와 산부인과에서 2019년 5월과 지난 7월 각각 같은 치료를 받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정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 쇼핑 코스가 존재하는 만큼 환자를 모집하고 공급하는 브로커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갑상선 결절의 경우 수술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는데, 보험금을 타내려고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갑상선 영상의학회는 2㎝ 이하로 작고 미용상 문제나 증상이 없는 갑상선 결정은 수술을 권하지 않고 있다.

실손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실손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제는 이런 일부 가입자들의 의료 쇼핑이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상승을 부르는 데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에서 나간 보험금은 11조8000억원으로 2019년보다 8000억원 증가했다. 위험 손해율은 123.7%를 기록했다. 고객이 낸 보험료에서 사업운영비 등을 떼고 쓸 수 있는 보험료가 100원인데, 실제 나간 보험금은 120원이라는 뜻이다.

손해를 본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올리거나, 상품 판매를 포기해야 한다. 2009년 9월까지 팔린 구(舊)실손보험은 올해에만 평균 17.5∼19.6%씩 보험료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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