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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강간·살해 ‘그놈’…슬프게도 너무 닮은 4년전 ‘준희 비극’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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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대전시 대덕구.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양모(29)씨가 20개월 된 딸을 이불로 덮은 뒤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때렸다. 양씨는 아이가 숨지자 친모 정모(25)씨와 함께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집 안 화장실에 보름이 넘도록 숨겨뒀다.

양씨는 범행 당일 아이를 성폭행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달 아동학대살해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양씨를 구속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딸과 통화가 되지 않자 연락한 장모에게 음란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양씨를 두고 '짐승보다 못한 X', '악마가 따로 없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양씨 사건이 알려지자 4년 전 겨울 '5세 고준희양 학대치사 사건'이 떠오른다는 누리꾼들이 적지 않다.

준희양의 친부 고모(41)씨는 다섯 살배기 친딸을 짓밟아 숨지게하고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한 당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이 좋아하는 건담 사진과 함께 "ㅋㅋ"라는 글을 올려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 2017년 1월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준희양은 그해 4월 친부의 잇단 폭행과 동거녀의 방임으로 숨졌다. 경찰은 같은 해 12월 29일 군산의 한 야산에서 준희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진 전주지검

지난 2017년 1월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준희양은 그해 4월 친부의 잇단 폭행과 동거녀의 방임으로 숨졌다. 경찰은 같은 해 12월 29일 군산의 한 야산에서 준희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진 전주지검

잇단 아동 죽음…전북 '5세 준희' 사건 주목

준희양은 친부의 잇단 폭행과 동거녀의 방임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가슴과 배 안에 피가 고일 만큼 손상을 입어 숨졌다.

이들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경찰에 허위 실종 신고를 하고, 준희양 앞으로 나온 양육수당을 챙기는 등 8개월간 주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법정에서는 서로 "때린 적 없다", "거짓말이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도대체 준희양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친부 등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017년 12월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준희양은 이미 8개월 전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방임으로 숨진 상태였다. 사진 전주 덕진경찰서

2017년 12월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준희양은 이미 8개월 전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방임으로 숨진 상태였다. 사진 전주 덕진경찰서

8개월간 자작극…생일상 차리고 집에 머리카락 뿌려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 박정제)는 2018년 6월 아동학대치사와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준희양 친부 고씨와 동거녀 이모(40)씨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동거녀 이씨와 함께 암매장을 도운 이씨 모친 김모(66)씨에게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고씨 등은 2017년 4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같은 달 27일 오전 2시쯤 군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2019년 4월 이들의 상고를 기각해 원심 형이 확정됐다.

사건은 그해 1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씨와 이혼 소송 중이던 전처가 준희양 등 자녀 3명을 고씨가 근무하는 완주군 한 공장 경비실에 맡기면서 고씨는 이씨와 함께 살던 집에서 준희양을 키우게 됐다. 이씨에게도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친아들(당시 7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부부였고, 준희양의 오빠 둘은 고씨의 전처가 돌봤다.

지난 2017년 12월 경찰이 실종 신고가 들어온 고준희(당시 5세)양을 찾기 위해 전북 전주시 우아동 기린봉 자락을 수색하고 있다. 준희양은 같은 달 29일 군산의 한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2월 경찰이 실종 신고가 들어온 고준희(당시 5세)양을 찾기 위해 전북 전주시 우아동 기린봉 자락을 수색하고 있다. 준희양은 같은 달 29일 군산의 한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연합뉴스

4월 숨졌는데…12월 "딸이 사라졌다" 허위 신고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난 준희양은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았다. 친모가 키울 때는 2년간 30여 차례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친부와 동거녀가 맡은 이후에는 병원에서 갑상선 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받은 기록이 없었다.

고씨의 학대는 상습적이었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쇠자와 손바닥으로 준희양의 팔뚝과 등 부위를 수차례 때리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2017년 3월에는 준희양의 왼쪽 둘째 손톱과 살점이 떨어졌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고씨는 2017년 4월 초순 팔자(八) 모양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준희양의 오른쪽 발목을 강하게 수차례 짓밟았다. 이 때문에 준희양의 복숭아뼈 부위에선 고름이 생기고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검게 부어올랐다.

지난 2017년 12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 빌라. 당시 다섯 살배기 고준희양이 실종됐던 것으로 알려진 장소다. 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친부의 동거녀 모친 김모(66)씨의 집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 2017년 12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 빌라. 당시 다섯 살배기 고준희양이 실종됐던 것으로 알려진 장소다. 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친부의 동거녀 모친 김모(66)씨의 집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다섯 살배기 죽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4월 10일부터는 준희양의 입과 목·가슴 등 온몸에 수포가 생겼다. 숨지기 직전까지 준희양은 혼자서 걷거나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친부와 동거녀는 모른 척했다.

검찰은 그해 4월 25일 새벽 이뤄진 친부의 폭행을 준희양의 직접적 사인으로 봤다. 이날 오전 0시30분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고씨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실에서 준희양의 등과 옆구리 등을 수차례 짓밟은 것으로 조사됐다. 준희양은 같은 날 오후 한 차례 의식을 잃고, 호흡 곤란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고씨 부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준희양은 이튿날 오전 집에서 다섯 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씨는 법정에서 "실수로 딸의 발목을 세게 밟거나 훈계 목적으로 몇 차례 때렸을 뿐 상습적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준희양의 친부 고모(41)씨가 지난 2018년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친딸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준희양의 친부 고모(41)씨가 지난 2018년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친딸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실종된 것으로 꾸미자"…완전 범죄 꿈꿨다   

당초 이 사건은 '단순 실종 사고'로 묻힐 뻔했다. 고씨와 이씨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다. 이들은 준희양이 숨진 2017년 4월 26일 오전 전주에 있는 이씨 모친 김씨 집으로 가서 "시신은 고씨의 할아버지 산소 인근에 묻고, 김씨가 준희양을 양육하다 실종된 것으로 꾸미자"고 의논하고 이튿날 새벽 실행에 옮겼다.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마니아로 알려진 고씨는 암매장 당일 자신의 SNS에 건담 모형 사진과 함께 '어허허허 이벤트 당첨 ㅋㅋ', 'ㅎㅎ' 등의 글을 올렸다. 같은 날 이씨는 어린이집 소풍을 가는 친아들의 도시락을 쌌다. 이들은 암매장 이틀 뒤 경남 하동으로 가족 여행도 갔다.

2018년 3월 전주지방법원에서 1심 2차 공판을 마친 준희양의 친부 고모(41)씨가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5세 고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동거녀 이모(40·왼쪽)씨와 이씨의 모친 김모(66)씨가 2018년 3월 1심 2차 공판을 마친 뒤 전주지법 2호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암매장 당일 SNS에 건담 사진 올리고 "ㅋㅋ"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자작극도 벌였다. 2017년 7월 22일 준희양 생일에는 미역국과 갈비찜을 만들어 이웃에게 돌리고, 김씨 집에는 생전 준희양이 쓰던 베개와 빗에서 모아둔 머리카락을 뿌려 놓았다. 이들은 2017년 12월 8일 경찰에 '김씨가 11월 18일 집을 비운 사이 준희가 사라졌다'고 신고했다. 당시 경찰과 소방당국은 한 달 가까이 3000여 명을 동원해 전주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경찰은 같은 달 15일 공개 수사로 전환했지만, 준희양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나 목격자는 없었다. 경찰은 ▶김씨가 8개월간 한 번도 준희양을 데리고 외출하지 않은 점 ▶3월 이후 준희양의 병원 진료 기록이 없는 점 등을 토대로 강력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김영근 덕진경찰서 형사과장은 "경험도 과학"이라며 "당시 친부가 울면서 준희양을 찾으러 다녔는데 '쇼'라고 보고 수사를 계속 끌고 갔다"고 말했다.

2017년 2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 앞 복도에서 생전 준희(사망 당시 5세)양이 혼자 서 있는 모습. 검찰이 압수한 친부 고모(41)씨의 태블릿 PC에 저장된 사진이다. 사진 전주지검

2017년 2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 앞 복도에서 생전 준희(사망 당시 5세)양이 혼자 서 있는 모습. 검찰이 압수한 친부 고모(41)씨의 태블릿 PC에 저장된 사진이다. 사진 전주지검

검찰 "학대 없었다면 정상적인 삶 살 수 있었다" 

김 과장의 직감은 적중했다. 친부 고씨의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2017년 12월 29일 오전 군산의 한 야산에서 보자기에 싸인 채 미라처럼 변한 준희양의 시신을 수습했다.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21일 만이었다.

당시 검찰은 고씨 등 3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준희양은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아 또래보다 발달이 늦을 뿐 체중도 다섯 살 여아 수준이고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전 준희양의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가 없었다면 준희양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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