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21세기판 문화혁명’ 그림자 어른거리는 중국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1 00:22

업데이트 2021.09.1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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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30면

사회·경제·문화 옥죄는 홍색 규제

민간부분 제재는 세계 경제에 악영향

‘차이나 리스크’ 현실화에 대비해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건 ‘공동부유(共同富裕)’ 구호 아래 시작된 전방위적 ‘홍색(紅色) 규제’와 ‘홍색 정풍(整風)’이 경제 활동은 물론 중국 사회·문화 전반을 옥죄고 있다. 자고 나면 날아드는 중국발 뉴스는 지금 이 시대가 4차산업혁명이 운위되는 21세기가 맞는지 의심케 한다. ‘신(新)문화대혁명’의 그림자가 중국 대륙에 어른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색규제’의 1순위 타깃은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혁신적 아이디어로 부(富)를 창출한 빅테크 기업들이다. 창업자 마윈(馬雲)의 중국 금융 당국 비판 이후 계열사 상장을 포기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을 얻어맞은 알리바바가 대표적이다. 공유 자동차 서비스로 중국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던 디디추싱은 당국의 의지에 반하는 미국 상장을 추진하다 모바일 앱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사업 모델 자체가 사라졌다. 공산당 당국의 눈 밖에 나는 순간 비즈니스를 접어야 하는 게 지금 중국의 현실이다. 공동부유론의 필연적 결과로 세금 폭탄 등 고소득층에 대한 압박이 예고되어 있다. 이는 민간 기업의 투자 의지를 위축시켜 중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사상통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각종 규제들도 속출하고 있다. ▶특정시간대를 제외한 청소년의 게임 금지 ▶일부 예체능 과목을 제외한 사교육 금지 ▶연예인 팬클럽 계정 무더기 퇴출 등이 그런 예다. 국제화 제고의 일환으로 장려하던 이중언어(雙語) 학교에 대한 규제에는 ▶매주 1회 이상 시진핑 사상 교육 실시 ▶외국인 교사에 대한 비자 심사 강화 ▶해외 교재 사용은 제한하고 어문 역사 등은 공립학교와 동일한 교재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중국 지도부가 그리는 미래가 어떤 방향일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조치들은 G2의 한 축인 중국에 국제사회 리더 자격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홍색 규제 가운데 상당수는 개방의 조류에 역행하는 쇄국주의 조치들이다. 국제화와 자유무역으로 고도성장을 일군 중국으로선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다. 공산당 당국은 팬클럽 규제의 명분으로 물질만능주의와 남성의 여성화, 동성애 등 불량 문화 배격이란 명분을 내걸었는데, 이는 청소년기부터 서구 자본주의 문화에 방벽을 쌓겠다는 의미다. 중국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장벽을 높이는 것은 국제사회의 반중 감정을 부추길 뿐이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 이념·가치 경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초래하는 초거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은 ‘차이나 리스크’가 몰고올 파고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다. 당장 게임·팬클럽에 대한 제재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에 뒤이은 설상가상이다. 이는 한·중 양국 정부가 내년 수교 30주년를 앞두고 ‘한·중 문화 교류의 해’를 선포한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표리부동의 조치다. 때마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4일 방한한다고 하니 엄중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경제적 리스크에는 정부와 기업이 합심하여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중국이 한국에 고압적 자세로 나오는 배경에는 우리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역을 비롯, 경제 분야에서의 높은 대중(對中) 의존도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해외 투자를 다변화하고 정부는 중국 진출기업의 국내 복귀(Reshoring)에 대한 지원 등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 중국 시장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제 외적 변수로 인한 리스크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해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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