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감기’없는 공연 완성은 관객몫…‘빨리빨리’는 접어 두자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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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24면

POLITE SOCIETY 

독일 트리어(Trier)의 원형극장. 시어터(Theatre)는 ‘보는 장소’라는 뜻이다. [사진 박진배]

독일 트리어(Trier)의 원형극장. 시어터(Theatre)는 ‘보는 장소’라는 뜻이다. [사진 박진배]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Tiger King)’을 히트시켰던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 기간 미국 공연예술의 메카인 뉴욕의 무대는 고요했다. 정통 연극은 물론, 뉴욕투어가 예정되어 있던 ‘태양의 서커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아일랜드의 민속춤 ‘리버댄스’도 모두 연기됐다. 지난해 3월 문을 닫은 지 1년 반 된 뉴욕 브로드웨이가 오는 14일 재개관한다. 17일에는 뉴욕 필하모닉, 곧이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아메리칸발레시어터도 가을시즌을 시작한다.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닫았던 학교와 극장이 문을 열면서 뉴욕은 영화제목과 같은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연극, 또는 극장을 의미하는 ‘시어터(Theatre)’는 ‘보는 장소’라는 뜻이다. 세상을 보는 것, 즉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이다.

공연 중 ‘폰딧불’ 등 사소한 결례가 감동 망쳐

뉴욕 센트럴파크의 셰익스피어 공연. [사진 박진배]

뉴욕 센트럴파크의 셰익스피어 공연. [사진 박진배]

공연은 현시점에서의 경험이다. 그것도 인생과 같다. 그래서 반복될 수 없고, 복구될 수 없다. 같은 공연이라도 내일 보면 또 다르다. 똑같아 보이는 우리 일상이라도 매일 조금씩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 일회성은 정형성, 반복성, 영구성을 지니는 시각예술과의 차이다.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과 다르게,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하는 것은 직접 물리적 공간에서 호흡하며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요즈음 MZ세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 되어도 무대를 통해서 공연자와 관객이 만나는 행위는 뒤처진 패션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세상을 감각과 사유(思惟)로 접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공연자들을 생각해 보자. 불확실한 요소를 엮어서 하나의 스토리와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늘 창조적인 발상이 요구된다. 세상을 높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우리를 지적 자극으로 여행시킬 만한 수준의 공연은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 수 없다. 오직 리허설로만 가능하다.

김광림 작 ‘사랑을 찾아서’, 미국 마이애미대 공연. [사진 박진배]

김광림 작 ‘사랑을 찾아서’, 미국 마이애미대 공연. [사진 박진배]

공연자는 관객의 특별한 시간과 감동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리고 연기나 춤, 음악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한다. 발레의 탄탄하면서 우아한 움직임, 음악의 정교한 분절과 패턴, 우리를 울릴 수 있는 한마디의 연극 대사는 잊지 못할 감동을 제공한다. 이는 문화적, 미학적, 철학적 경험이다. 값진 교육이다.

책을 읽는 것,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그리고 좋은 공연을 많이 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공연은 재미있고, 흥분되고, 즐거운 것 이상이다.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이다. 거기엔 꿈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게 없다면 그건 그저 재미있는 것, 엔터테인먼트다. 그것이 공연과 엔터테인먼트의 차이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책을 읽는 시간과 거기서 얻는 지식은 자기 자신의 책임 범위에 있다. 하지만 공연은 그렇지 않다. 공연자와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교감하는 것은 상호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의 실체가 완성된다. 이는 연극, 오페라, 발레, 음악 등의 장르에 모두 해당한다. 연극의 독백 장면, 판소리의 창, 오페라의 아리아나 발레의 파드되(pas de deux)에 순간 몰입했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개관을 앞둔 뉴욕 배리모어극장. [사진 박진배]

개관을 앞둔 뉴욕 배리모어극장. [사진 박진배]

관객은 공연자의 연기는 물론, 감독의 연출, 심지어는 다른 관객의 반응까지 공유한다. 공연자는 무대에 서면 관객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모두 보인다. 발레에서 심장이 떨리는 것을 표현하는 발끝 동작, 연극에서 배우가 순간 멈추며 움직이지 않는 장면 등의 의미와 디테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관객들은 공연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맙고 큰 격려가 된다. 런던이나 뉴욕의 연극,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유명한 것은 그 작품이나 극장뿐 아니라 성숙한 관객의 수준도 큰 기여를 한다. 공연은 관객이 완성시킨다.

공연을 감상할 때는 나름의 에티켓이 필요하다. 우선은 늦지 않는 것이다. 공연에는 ‘되감기(rewind)’가 없다. 일찍 도착해서 시작 전에 공연에 관한 정보를 미리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은 관람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9년 전, 휴대폰 울림소리로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가 역사상 처음으로 중단된 일화가 있다. 간혹 공연 중에 메시지를 체크하느라 휴대폰을 켜는 관객도 있다. 작은 면적이지만 객석의 환한 불빛은 다른 관객과 공연자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린다. 잡담 등의 습관도 여전히 존재한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연주에서 악장 중간에 박수 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연주가 미처 끝나기 전, 마지막 음이 진행되고 있는데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건 곡의 피날레와 여운을 갑자기 끊어 버리는 행동이다. 음악에 대한 무시이자, 연주가에 대한 결례고, 타인의 감상까지 망쳐 버린다.

브로드웨이 연극 ‘파리 여인’의 무대. [사진 박진배]

브로드웨이 연극 ‘파리 여인’의 무대. [사진 박진배]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는 이곳에서는 적용하지 않아도 좋다. 끝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여운을 충분히 감상한 이후에 박수를, 오랫동안, 진심으로, 쳐 주면 좋다. 이런 예절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중상류층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면, 아파트 평수, 자동차 종류, 연 수입 등을 언급한다. 유럽에서 그 기준은 공연과 문학, 정원에 관한 지식과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생활방식이다. 과거와 다르게 공연은 특정계층의 문화자본이 아니다.

요즈음은 많은 사람이 일상의 시간을 할애해서 공연을 본다. 공연은 정서적 가치뿐 아니라 그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도 크다. 우리가 미래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 대부분은 오래됐고, 좌석은 비행기의 이코노미석보다도 불편하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극장은 시설도 좋다. 공연관람 문화도 괜찮은 편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실력 있고 경쟁력을 갖춘 개인들이 즐비하고, 관객 예절도 나쁘지 않다. 우리나라의 좋은 공연 콘텐트만큼이나 성숙하고 멋진 공연문화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유럽 중상류층 판단 기준은 공연·문학·정원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들의 리허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들의 리허설.

많은 사람이 뉴욕을 찾는 첫 번째 이유로, 또 뉴욕에서 가장 하고 싶은 첫 번째 일로 공연 관람을 손꼽듯이, 전 세계의 연주가, 공연자들이 우리나라의 무대에 서고 싶은 큰 이유를 여기서 만들 수 있다. 공연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는 도시는 멋진 도시다.

미국의 경제공황 때 호황을 누린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가 할리우드였다. 시민들이 적은 돈으로 냉난방시설을 갖춘 극장 안에 들어가 잠시나마 경제적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만큼 우리의 고된 삶을 위로해 주고 긍정적인 힌트를 주는 경험은 많지 않다.

코로나 상황에서 한동안 ‘보복소비’가 유행했다. 이제 곧 ‘보복여행’, 그리고 ‘보복공연관람’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요즈음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그 준비로 매우 분주하다. 2년 전에 비해 티켓 가격도 인상됐지만 많은 공연의 좌석이 내년 봄까지 빠르게 예약이 차고 있다.

뉴욕 택시 운전사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하루 통계로 보았을 때 최고의 손님은 밤 11시 전후 공연관람을 마치고 탑승하는 승객이라고. 어느 승객보다 기분과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의 저녁시간을 멋진 연기, 아름다운 춤, 좋은 음악에 감동을 받고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하게 만드는 힘. 공연은 그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라고 하는 쇼 비즈니스의 재개가 모든 일상이 돌아온다는 신호였으면 좋겠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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