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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냐 전환이냐, 경제 딜레마 닥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53호 20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마야 괴펠 지음
김희상 옮김
나무생각

슬로다운
대니 돌링 지음
김필규 옮김
지식의날개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판국에 더이상 경제성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하기 어렵다. 한가하다는 핀잔을 넘어 공분을 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개하는 두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금과 같은 방식은, 그러니까 성장을 통해 파이를 나누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어서다.

자본주의 체제는 해양 오염 사고도 GDP 증가로 계산한다. 지난 2월 이스라엘 해안의 오염 사고로 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 [AP=연합뉴스]

자본주의 체제는 해양 오염 사고도 GDP 증가로 계산한다. 지난 2월 이스라엘 해안의 오염 사고로 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 [AP=연합뉴스]

두 책 모두 자본주의의 미래를 거론하지만 내용이 정확히 겹치지는 않는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이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성장 만능주의 경제학을 미시적으로 격렬하게 비판했다면, 옥스퍼드에서 지리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쓴 『슬로다운』은 거시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는 가운데 자본주의의 앞날을 점친다.

슬로다운

슬로다운

『슬로다운』의 저자 대니 돌링은 자본주의는 생산 방식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경제학에 어두운 기자에게도 획기적으로 느껴지는 발상이다. 하나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의 방식으로 인정받으려면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안정성이란 없었다. 인구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래왔다. 인구는 폭발했고 경제 규모는 한껏 팽창했다. 사람들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대가속의 시대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뀐다. 이제는 슬로다운의 시대라는 것이다. 슬로다운은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가령 한국 같은 나라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세계 인구가 당장 줄어드는 게 아니다. 정점은 점칠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는 늘고 있다. 다만 증가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 틀에 따라 주로 세계 인구, 미국의 부채(학자금·주택 대출과 국가 부채), 전 세계 1인당 GNP, 심지어 데이터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지구적 총량까지 증가 속도가 느려지는 추세를 다양한 통계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자본주의의 미래 얘기로 돌아가면, 『슬로다운』의 내용은 성장 만능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이미 성장 지체가 시작됐다는 발견에 가깝다. 그러니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미 시작된 슬로다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과거 전체적으로 적게 가졌던 시절에도 폭넓게 잘살았다.

대니 돌링이 낙관적이고 두루뭉술하다면 『미래를…』의 저자 마야 괴펠은 단호하고 주장에 빈틈이 없다. 두 딸의 엄마인 그는 정치경제학자이면서 활동가다. 어려서 대안교육을 받았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목격했다. 태어난 독일뿐 아니라 스페인·스위스·캐나다에서 공부하고 미국·남미 배낭여행으로 견문을 넓힌 다음 ‘독일 환경·자연보호 연맹’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2019년 ‘미래를 위한 학자들(S4F)’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환경 파괴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이 단체 참여 학자는 2만6000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괴펠은 인간의 경제활동은 전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와 다름없다고 본다. 여기에 자연의 순환 같은 건 없다. 원자재와 에너지를 무한정 투입해 벨트의 한 편에서는 돈을, 다른 한 편에서는 쓰레기를 끊임없이 배출할 뿐이다. 이런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늘어나는 인구로 꽉 찬 지구. 이런 새로운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이런 사정을 몰랐던 건 아니다. 화석연료 사용이 온난화를 부른다는 사실이 1930년대에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70년대부터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 자리다. 두 가지로 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을 제대로 보기를 거부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그래서 쓴 게 책이다. 개선책도 제안했다.

괴펠은 성장 만능 경제학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숫자로 요란스럽게 꾸며진 성장 신화 뒤에서 지구 파괴 작태가 벌어질 뿐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이 빠져 있는 경제학의 숫자놀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줄임말, 전문 용어 따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기적 개인이 생산을 거듭하면 결국 모두 부자가 된다는 경제학은 참으로 기적 같은 이야기 아니냐는 것이다. 경제학을 1도 몰라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주장들이다.

저자들은 묻는 것 같다. 성장할 텐가, 바뀔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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