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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9·11 이후 더 안전해졌지만, 테러 조직 확산도 부추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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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18면

[SUNDAY 인터뷰] 앤드류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명예교수

“미국이 공격받았습니다(America is under attack).”

2001년 9월 11일 아침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은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항공기 납치범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중 두 번째 빌딩에 충돌한 직후였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이후 ‘끝없는 전쟁’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우리 병사들을 데려오겠다”는 공약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몰입한 사이 중국은 ‘중요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미국과 세계에 주는 함의를 9일(현지시간) 앤드류 베이스비치(74) 보스턴대 명예교수와 함께 짚어봤다. 그는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모두 참전한 엘리트 군인 출신의 석학이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오늘날 안보 위협은 나라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감염병과 산불·홍수처럼 내부에도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군복도 공군력도 없는 탈레반에게 밀려

앤드류 베이스비치

앤드류 베이스비치

미국과 세계는 9·11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나. 여전히 테러 위협이 존재하나.
“둘 다 맞다. 미국은 테러 공격을 식별하고 대비하며 방어하기 위해 실질적 방어망을 구축해 놨기 때문에 훨씬 안전해졌다. 공항과 항만 등 입국 시 보안 검색을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도 모두 방어 능력을 향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9·11이 반복될 가능성은 작다. 반면 테러 조직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9·11 대응이 테러 조직의 확산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의 온상이 될 가능성은.
“아직 단정하긴 이르다. 새로운 탈레반 정권이 어떤 성격을 띨 것인가에 달렸다. 9·11 이후 아프간이 침공당한 뒤 20년간 쫓겨난 상황을 반복하고 싶진 않을 거라고 상상할 수는 있다. 탈레반 지도자들은 다른 나라와 좀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할 수 있다. 미국인은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만, 탈레반 정책과 아프간의 미래는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대 직원들이 9·11 테러 20주년을 기념해 교내에 미국 국기들을 세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대 직원들이 9·11 테러 20주년을 기념해 교내에 미국 국기들을 세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결국 바이든의 혼란스러운 아프간 철군에 대한 평가는 탈레반에게 달린 건가.
“대피 작전은 제대로 계획되지 않았고 잘못된 가정에 바탕을 뒀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을 탈출시켰지만 그 과정은 엉망이었다. 창피한 일이다. 정말 중요한 건 대피 계획 실패 여부가 아니라 그 전에 벌어진 20년 전쟁에 대한 평가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20년 전쟁을 치르고도 어떻게 적이 더 우세할 수 있는가, 그게 중요한 질문이다.”
미국이 당초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면 안 됐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 탈레반이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을 때 미국은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를 숨겨주면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는 정당화가 되지만, 그 후 나라 재건 프로젝트로 들어간 부분은 잘못됐다. 관리도 부실했다. 처음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찾으려면 냉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이 두 개의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뿌리까지 파고들면 냉전 종식에 대한 인식이 자리한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과 군사적 측면이 있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냉전 승리는 자유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안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군사적으론 냉전 종식 후 미국의 우월감이 극대화됐다. 아프간과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한 것에도 정권을 장악한 뒤 더 나은 삶을 보여주겠다는 인식이 깔렸다. 탈레반처럼 공군력도, 중화기도, 군복도, 장화도 없는 군대가 미군의 목표 달성을 막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이 되지 않았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모습. 미국은 한 달 뒤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대규모 보복 공습에 나섰다. [뉴시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모습. 미국은 한 달 뒤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대규모 보복 공습에 나섰다. [뉴시스]

베이스비치 교수는 “9·11 테러는 냉전 승리에 도취돼 있던 미국에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 충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버액션한 게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 와중에 미미한 존재였던 중국이 부상했고 러시아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힘을 믿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응징에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 초강대국 지위가 흔들리게 된 건 아이러니다.
“미국은 자신의 입지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부족했다. 가진 힘과 우위를 과대 해석한 측면도 있다. 아프간에서 우리는 힘의 한계를 봤다. 기나긴 전쟁 개입은 미국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국이 스스로에 대한 느낌, 단결력, 우리 제도와 믿음에 대한 자신감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가장 뚜렷한 방증이다.”
9·11 이후 15년 지나 2016년 당선된 트럼프가 이 사건의 영향이라니, 무슨 뜻인가.
“수많은 미국인이 자격 없는 트럼프에게 왜 표를 줬을까. 지난해 대선 때는 왜 4년 전보다 1000만 명이나 더 트럼프를 뽑았을까. 많은 미국인의 불만 중 하나는 끝없는 전쟁이었다. 트럼프 당선을 이끈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져 있었고 우리가 왜 거기에 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지나

미군과 영국군이 지난달 20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주민들의 해외 이송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말 9·11 테러 후 20년 만에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AP=연합뉴스]

미군과 영국군이 지난달 20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주민들의 해외 이송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말 9·11 테러 후 20년 만에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2009년 아프간 철군을 주장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병력을 늘렸다. 그때 바이든 주장이 채택됐다면 트럼프 당선 결과는 달라졌을까.
“답하기 어렵다. 기나긴 전쟁이 트럼프를 찍은 유일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 등 경제 문제, 인종주의, 성차별 등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기득권층을 깨부수고 기존 제도를 뒤엎겠다는 트럼프에 투표한 것이다.”
바이든은 중국에 맞서 동맹을 규합하려고 한다.
“신냉전은 실수가 될 것이다. 중국은 환경 문제 등에서 협력할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꼽힌다. 중국과 냉전을 벌이면서 어떻게 협력도 동시에 하겠다는 건지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은 때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연상시키면서도 동맹을 복원하고 세계 리더 자리를 되찾겠다고 하는데 상충되지 않나.
“아직은 초기인 만큼 더 지켜봐야 한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시작한 정권이다. 산불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수습도 큰 과제다.”
9·11 테러가 일어난 해인 2001년 개도국이던 중국이 이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경쟁자로 부상했다.
“9.11은 미국의 경로를 완전히 바꿔놨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사상자라는 대가를 치렀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해외에서 돈을 낭비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를 키워왔다. 미국은 이제야 인프라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

베이스비치 교수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백인이 유리한 상황을 누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했다. 또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가장 긴급한 위협은 더 이상 중앙아시아처럼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질병, 기후변화, 환경 악화, 사생활 침해 등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집’에서 안락함과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위협이란 얘기다. 그는 “미국은 밖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 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코로나19와 산불·홍수 등 정작 우리를 위협하고 자유를 제한하며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경고했다.

앤드류 베이스비치

196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외교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차 걸프전에도 참전했으며 대령 예편 후 존스홉킨스대를 거쳐 보스턴대에 자리를 잡았다. 부모도 모두 2차 세계대전 때 군 복무를 했고, 아들은 이라크전에 장교로 참전했다 2007년 전사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아들의 죽음이 전쟁을 개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책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내용의 칼럼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톨릭 보수주의자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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