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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尹 "입건기준이 국민관심? 26년 수사한 나도 어이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0 19:55

업데이트 2021.09.11 10:11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의 소위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0일 전격 수사에 나서면서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공수처가 노골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윤 전 총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 4개 혐의로 입건(지난 9일)했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6년간 수사를 해 온 나지만 어이가 없다”며 “공수처는 입건(피의자)하는 기준이 다른가 보다. 국민 관심이 입건 기준인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정치공작에 이용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기자들을 만나선 '입건'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입건하라 하십시오”라고 말하곤 차량에 올랐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총 대표단과의 대화에 참석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총 대표단과의 대화에 참석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번 입건을 “정권의 눈치를 보는 권력기관의 노골화인 정치개입”으로 규정했다. 야권 유력 대선 주자를 형사사건 피의자로 입건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김병민 캠프 대변인은 “허위보도로 시작된 정치공작의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둔갑시킨 데 이어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을 공격해 온 친정부성향 단체의 고발을 계기로 신속 수사에 나섰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정치공작의 진실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국민은 눈을 부릅뜨고 정권과 권력기관의 치졸한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윤 전 총장 캠프 내부에선 “문재인의 칼(공수처)이 윤 전 총장을 목을 겨눴다”는 등 반발 수위가 훨씬 높았다.

당 지도부도 반발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울산시장 공작 사건의 재탕”이라고 했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공수처가 집권 세력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우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제 막 당 경선 레이스를 시작하는 당의 입장에서 유력 주자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는 악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공수처가 결과를 언제 내놓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를  질질 끌거나 미궁 속에 빠질 경우 그 리스크는 야당에 더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강제 수사를 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둘로 갈렸다. “대선이 6개월 남은 현 시점에서 시민단체의 고발 사흘 만에 작정하고 수사한다는 건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공수처 설치 배경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 논란이 상당할 것 같다”(익명을 원한 정치학 교수)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에선 “고발에 따른 절차적인 수사 착수로 딱히 정치 개입으로 보긴 어렵다. 되레 윤 전 총장에게 보수층이 더욱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는 분석도 나왔다.

공수처의 김웅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의원실에 도착한 김 의원이 공수처 관계자에게 항의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공수처의 김웅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의원실에 도착한 김 의원이 공수처 관계자에게 항의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수사기관이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등에 관한 수사에 나섰지만 이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피의자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대선 과정에서 야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일부는 “검찰이 이 후보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확정 일주일 전에 도곡동 땅에 대해 “제3자의 차명 재산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3자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진상규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의 이같은 모호한 태도에 당시 한나라당에선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반발이 거셌다.  ‘박근혜 vs 문재인’이 치열하게 경쟁한 2012년 대선 막판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을 제기해 이슈로 부상했지만, 이 때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직접 겨냥한 수사는 없었다. 경찰은 대선 3일 전 “댓글 공작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공수처의 강제수사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계기로 알려졌다.

오전 10시 10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3층 김웅 의원실에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손준성 검사(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로부터 여권 인사(유시민·최강욱·황희석 등)에 대한 고발장을 넘겨받아 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손 검사의 집과 사무실도 압수수색됐다.

김 의원과 김기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공수처의 압수수색에 강하게 반발하며 밤 늦게까지 대치를 이어갔다. 김 의원은 “(공수처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영장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며 적법성을 문제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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