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공익신고자 요건 맞다"던 檢, 애초에 규정도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0 18:27

업데이트 2021.09.10 18:35

검찰 내 공익신고와 관련한 내부 규정이나 지침 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총장 재직 시절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야당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관해 진상조사 중인 대검찰청 감찰부(부장 한동수)는 지난 8일 “뉴스버스 보도 관련 제보자의 공익신고서 등을 제출받아 관계 법령상 공익신고자로서의 요건을 충족했음을 확인하고 공익신고자로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대검 내 공익신고 요건 등을 따질 수 있는 별도 규정이 없는데도 공익신고자 인정 여부를 이례적으로 밝혀 ‘벼락치기’ 결정 논란을 자초했단 지적이 나온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집행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와 협의도 하지 않아 권익위가 같은 날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을 접수한 바 없어 최종 판단기관으로서 신고자 지위를 인정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제보자=공익신고자’ 벼락치기 결정 논란 자초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 현안질의 출석 요구에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불참했다. 연합뉴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 현안질의 출석 요구에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불참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법무부는 ‘대검 공익신고 절차 및 접수 후 처리 과정과 그 관련 법령’을 묻는 윤 의원에게 “누구든지 공익신고를 하려는 사람은 공익신고자보호법 6, 8조에 따라 신고할 수 있고, 접수 후 처리 과정 또한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검이 접수받은 공익신고 현황 등에 관한 질의엔 “별도로 작성·관리하고 있지 않아 제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대검이 공익신고서를 직접 접수한 건 전례가 없어 아직 관련 규정이 없다”고 전했다.

공익신고자 인정 여부 논란은 대검 감찰부의 ‘공익신고자 요건 충족’ 발표가 나온 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 해당 여부 및 보호조치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권익위에 있다”는 입장을 내면서 불거졌다. 대검이 “권익위에 보호조치 등을 신청하는 것과 별도로 향후 진행되는 절차 등에 있어서 공익신고자로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는 취지로 부연했지만, 대검의 ‘월권’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검의 경우 공익신고 접수기관으로 제보받은 것이 공익신고의 요건을 갖추었고, 내부 수사 절차에서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간주해 비밀을 지켜주는 조치를 시작했다는 것”이라며 “공익신고자보호법상 보호조치를 시작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고 대신 설명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대검의 공익신고자 인정은 여러 함의로 해석될 수 있다. ‘공익신고’와 ‘공익신고자’ 모두 법적 개념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 2조에 따르면, 공익신고는 공익침해행위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신고·진정·제보·고소·고발하거나 수사의 단서를 제공하는 걸 의미한다. 공익신고자란 이 같은 공익신고를 한 사람을 뜻한다. 이 법은 공익신고에 대한 조사·수사·소송에서 진술·증언하거나 자료를 제공하는 사람까지 ‘공익신고자등’으로 묶어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고발 사주' 의혹을 공익신고한 제보자가 9일 JTBC에 공개한 김웅 국민의힘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 캡처 화면. JTBC 캡처

대검찰청에 '고발 사주' 의혹을 공익신고한 제보자가 9일 JTBC에 공개한 김웅 국민의힘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 캡처 화면. JTBC 캡처

하지만 공익신고에도 요건이 있다. 일단 제보의 내용이 공익침해행위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 법에 규정된 471개 법률에 관한 벌칙이나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행위어야 한다.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의 경우 이 중 해당 법률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뿐이다.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나 공직선거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에 관한 내용은 공익침해행위가 아니어서 공익신고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밖에도 공익신고 내용이 거짓이거나 부정한 목적으로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도 공익신고로 인정되지 않는다.

공익신고를 접수할 수 있는 수사기관 중 하나인 대검이 “공익신고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건 ▶제보자가 거짓으로 신고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선거용 폭로 등 부정한 목적도 아니라고 진상조사 단계에서부터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제보자가 권익위에 보호조치(비밀보장·신분보장·신변보호·책임감면)를 신청할 경우 심사 결과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에 지나치게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신고로 접수됐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무조건 조사·수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법 10조에 따르면 ▶공익신고의 내용이 명백히 거짓인 경우 ▶공익신고의 내용이 언론 등에 공개된 내용에 해당하고 공개된 내용 외에 새로운 증거가 없는 경우 ▶공익침해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경우엔 조사·수사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고 끝낼 수 있다. 이는 임의규정이라 조사·수사를 중단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역시 권익위에선 이 같은 이유로 보호조치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 시그널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 시그널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올해 초 공익신고를 통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 출국금지 의혹을 제기했던 장준희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애초 법정 공익신고 접수처 중 하나인 국회의원과 권익위에 공익신고를 했고,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검에 공익신고서를 전달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대검이 공익신고서 작성자에 대해 “공익신고 여부를 충족했다”거나 “공익신고자로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는 등의 발표를 한 적은 없다.

장 부장검사는 신고 초기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받거나 피신고인으로부터 “공무상비밀누설로 고발을 검토하겠다”(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 공격에 시달렸다. 이에 그는 권익위에 보호조치를 신청해 지난 2월 권익위로부터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은 뒤 보호를 받았다. 전현희 위원장은 이날 “권익위가 공익신고자가 맞다며 보호조치를 개시하면 신고를 한 시점부터 보호하기 때문에 제보자 신분 노출 행위에 대해선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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