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람은 평소 돈을 많이 벌었기에 재난지원금 대신 자부심상을 드립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진 이 문구는 이른바 ‘자부심상’을 수여하는 이유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5차 재난지원금과 관련, 지난 7월 “고소득자에게는 재난지원금 25만원 대신 자부심을 드린다”고 말한 사실을 비꼬면서 시작된 풍자다.
5차 재난지원금으로 ‘소득 상위 12%’와 ‘소득 하위 88%’가 나뉘면서 온라인에선 이런 ‘웃픈 짤’(웃기면서 슬픈 그림이나 사진)이 이어지고 있다.
‘신종 고백법’이라는 게시물도 화제를 모았다. “재난지원금 못 받습니다. 사귀시죠?”라는 반어적인 질문이 핵심이다. 상대의 답변은 “꺄” 하는 환호다.
시민들 사이에선 불쾌감이나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재난지원금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박모(38)씨는 “회사 다니다가 몇 년 전부터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지급 대상자가 됐다”며 “코로나19 때문에 내가 상위 12%에 못 드는 사람이 됐구나 싶어 씁쓸하다”고 했다. 공무원 김모(42)씨는 “집 없고 노후 걱정이 태산인데 지원금 못 받았다”면서 “자랑하냐고 하니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세금만 많이 내는 것 같아 우울하다”고 말했다. 최모(29)씨는 “요즘엔 재난지원금 선정자 많은 지역을 가난한 동네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받아도, 못 받아도 ‘심기 불편’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의 심기를 헤아리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울 때 원인을 찾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습성이 있다”며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이어지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하자 정부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이때 정부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형평성 논란만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이는 눈치가 보여 지원금 수령 여부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더라. 또 하나의 편 가르기, 양극화, 분열이 발생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재난지원금 대상자 설계 때 ‘근로 소득’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선 근로 소득보단 소유 재산을 지표로 계층을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편의상 건강보험료 등을 기준으로 지급 기준을 나눠 ‘유리 지갑’ 직장인들의 불만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전 국민 지급과 위험에 빠진 이들에 대한 선택적 지급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며 “이번 건은 전 국민인지, 선택적인지 헷갈려 논란이 가중됐다”고 했다. 그는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이 지원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혜택 제공 시 배제할 논거가 없다”고 말했다.
“강한 평등주의 국민성…기분 상한 것”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는 하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등의 옛말에서도 볼 수 있듯 과거부터 우리나라 국민성에는 평등주의가 강해 남들과 차이 나는 것을 잘 못 본다”면서 “이번의 경우 지원금을 받고는 싶지만, 사회 계층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기분이 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국가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쓰이는 데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합의가 중요하다”라며 “수치상으로도 50% 안팎이 중산층이기 때문에 88%에 포함됐다고 자괴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