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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미국이 해외서 돈 낭비할 동안 중국은 경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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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명예교수

앤드류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명예교수

"미국이 공격받았습니다.(America is under attack)"

[9·11 20주년 인터뷰] #앤드류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명예교수

2001년 9월 11일 아침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항공기 납치범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중 두 번째 빌딩에 충돌한 직후였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끝없는 전쟁"의 악순환으로 들어갔다.

전쟁에 넌더리가 난 미국인들은 "우리 병사들을 데려오겠다"는 공약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미국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몰입한 사이 중국은 "중요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미국과 세계에 주는 함의를 9일(현지시간) 앤드류 베이스비치(74) 보스턴대 명예교수(국제관계 및 역사학)와 짚어봤다. 그는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모두 참전했던 엘리트 군인 출신의 석학이다. 9일(현지시간) 전화 인터뷰에서 "오늘날 국가안보에 위협은 나라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감염병과 산불·홍수처럼 내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과 세계는 9·11 테러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나, 여전히 테러 위협이 있나.

"둘 다 맞는다. 미국은 테러 공격을 식별하고 대비하고 테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실질적 방어망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훨씬 안전해졌다. 공항과 항만 등 입국 시 보안 검색 강화가 한 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도 모두 방어능력을 향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9·11이 반복될 가능성은 작다. 반면 테러 조직은 계속 존재한다. 미국의 9·11 대응이 테러 조직의 확산을 부추긴 면도 있다."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의 온상이 될까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새로운 탈레반 정권이 어떤 성격이 될 것인가에 달렸다. 9·11 이후 아프간이 침공당하고 20년간 쫓겨난 상황을 다시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상상할 수 있다. 탈레반 지도자들은 다른 나라와 좀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만, 탈레반 정책과 아프간 미래는 그 주변 국가들과 교류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결국 바이든의 혼란스러운 아프간 철군에 대한 평가는 탈레반에게 달린 건가.

"대피 작전은 제대로 계획되지 않았고, 잘못된 가정에 바탕을 뒀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을 탈출시켰지만, 그 과정은 엉망이었다. 창피한 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대피 계획 실패 여부가 아니라 그 전에 벌어진 20년 전쟁에 대한 평가다. 지구 위 가장 강력한 나라 미국이 20년 전쟁을 치르고도 어떻게 적이 더 우세할 수 있는가, 그게 중요한 질문이다."

-당신은 미국이 애초에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면 안 됐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 탈레반이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을 때 미국은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를 숨겨주면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는 정당화가 되지만, 그 이후 나라 재건 프로젝트로 들어간 부분은 잘못됐다. 관리도 부실했다. 처음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한 원인을 보려면 냉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이 두 개의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뿌리까지 파고들면 냉전 종식에 대한 인식이 자리한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과 군사적 측면이 있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냉전 승리는 자유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군사적으로는 냉전 종식 후 미국의 우월감이 극대화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해 정권을 장악하고 더 나은 삶을 보여주겠다는 인식이 깔렸다. 탈레반처럼 공군력도, 중화기도, 군복도 장화도 없는 군대가 미군의 목표 달성을 막을 수 있다고 상상도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되지 않았나."

9일(현지시간)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뉴욕 맨해튼 맞은편 메모리얼 위호켄 기념공원에서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뉴욕 맨해튼 맞은편 메모리얼 위호켄 기념공원에서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베이스비치 교수는 9ㆍ11 테러는 냉전 승리에 도취돼 있던 미국에 ‘충격’을 안겨준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 충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버액션한 게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 사이 미미한 존재였던 중국이 부상했고, 러시아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힘을 믿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응징에 나섰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초강대국 지위가 흔들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 놓인 자신의 입지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부족했다. 가진 힘과 우위를 과대 해석한 측면도 있다. 아프간에서 우리 힘의 한계를 보았다. 기나긴 전쟁 개입은 미국을 약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이 스스로에 대한 느낌, 단결력, 우리 제도와 믿음에 대한 자신감이 약해졌다. 가장 뚜렷한 방증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9·11 테러 이후 15년 지나 2016년 당선된 트럼프가 이 사건의 영향이라니, 무슨 뜻인가.

"수많은 미국인이 자격 없는 트럼프에게 왜 표를 줬을까. 지난해 대선 때는 4년 전보다 1000만 명이 더 트럼프를 뽑았을까. 많은 미국인이 국가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그들의 불만 중 하나는 끝없는 전쟁이었다. 트럼프 당선을 이끈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져 있었다. 우리가 거기에 왜 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2009년 아프간 철군을 주장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병력을 늘렸다. 그때 바이든 주장이 채택됐더라면, 트럼프 당선 결과는 달라졌을까.

"지금 바이든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것처럼 오바마가 철군했다면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답하기 어렵다. 기나긴 전쟁이 트럼프를 찍은 유일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 등 경제 문제, 인종주의, 성차별 등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기득권층을 깨부수고 기존 제도를 뒤엎겠다는 트럼프에 투표한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는데, 같은 맥락인가. 

"트럼프는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비즈니스맨 시각으로 사물을 봤다.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지에 있는 미군 철군을 원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도 아프간 철군을 원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바이든 행보가 주목된다.

-바이든은 중국에 맞서서 동맹을 규합하려고 한다. 

"신냉전은 실수가 될 것이다. 중국은 환경 문제 등에서 협력할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꼽힌다. 중국과 냉전을 벌이면서 협력도 어떻게 동시에 하겠다는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은 때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연상시키면서도 동맹을 복원하고 세계 리더 자리를 되찾겠다고 하는데 상충하지 않나.

"아직은 대통령직 초기이니 더 지켜봐야 한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를 갖고 시작한 정권이다. 산불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수습도 큰 과제다."

-·9·11테러가 일어난 해인 2001년 개도국이던 중국이 이젠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요한 경쟁자"로 성장했는데.

"9.11은 미국의 경로를 완전히 바꿔놨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사상자를 치렀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해외에서 돈을 낭비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를 키워왔다. 미국은 이제 인프라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

베이스비치 교수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백인이 유리한 상황을 누리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가장 긴급한 위협은 더 이상 중앙아시아 같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질병, 기후변화, 환경 악화, 사생활 침해 등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집'에서 안락함과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위협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저서 『종말론 이후:변화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서 미국은 밖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 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산불, 홍수 등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 우리 자유를 제한하고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명예교수는

베트남전과 1차 걸프전에 모두 참전한 엘리트 군인 출신의 국제관계 및 역사학 석학이다. 1969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외교사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1차 걸프전에도 관여했다. 대령 예편 후 존스홉킨스대를 거쳐 보스턴대에 자리잡았다.
부모 모두 2차 세계대전에서 군 복무를 했고, 아들은 이라크전에 장교로 참전했다가 2007년 전사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테러와 전쟁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아들의 죽음이 전쟁을 개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칼럼이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가톨릭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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