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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더 안전해졌는지 모르겠다” 9·11 20주년 착잡한 뉴요커들[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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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에 있는 '메모리얼 풀'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위에 꽃이 놓여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에 있는 '메모리얼 풀'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위에 꽃이 놓여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난 곳인데,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 아이러니한 일이네요.”

미국 뉴욕 맨해튼 남쪽에 있는 ‘9ㆍ11 추모 공원’에서 8일(현지시간) 만난 매디슨 페얼즈(26)는 거대한 인공 폭포 ‘메모리얼 풀(Memorial Pool)’을 가리키며 말했다.

2001년 9월 11일 이곳에 우뚝 서 있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비롯해 펜실베이니아주 쉥크빌, 워싱턴DC 인근 펜타곤(국방부)에서 알카에다 테러로 희생된 2753명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WTC 북쪽과 남쪽에 있던 타워처럼 메모리얼 풀도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있다. 한 개가 약 4000㎡에 이른다. 테니스장 15개 반을 나란히 놓은 크기다. 북미 최대 규모 인공 폭포다. 9m 높이 사방 벽에서 떨어진 물줄기는 풀 가운데로 모여 다시 3m 낙하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페얼즈는 "땅속으로 물줄기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땅으로 꺼진 쌍둥이 건물과 겹쳐져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현장을 정리하던 보안 담당 직원은 “9ㆍ11테러 20주년을 앞두고 미국과 해외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취재진이 부쩍 많아졌다”고 전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에 있는 '생존자 나무'. 폐허 더미 속에 있던 나무를 살려 옮겨 심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에 있는 '생존자 나무'. 폐허 더미 속에 있던 나무를 살려 옮겨 심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관람객들은 메모리얼 풀 외벽 동판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을 쓰다듬고, 추모객이 놓고 간 꽃과 성조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특히 ‘생존자 나무(Survivor Tree)’ 앞이 인기였다.

사고 직후 폐허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해 수목원으로 옮겨 9년간 보살핀 뒤 이곳에 옮겨심었는데, 회복력과 인내의 상징이 됐다.

재스민 몬태노(25)는 “당시 다섯살이어서 기억은 없지만 이곳에 와서 직접 보니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 모습. '잊지 말자'는 슬로건이 보인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 모습. '잊지 말자'는 슬로건이 보인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실제로 미국은 9ㆍ11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뉴욕 시내 곳곳에는 ‘20년, 2001년 9월 11일, 절대 잊지 말자’라고 적힌 깃발이 나부꼈다. 전날 뉴욕시는 새로운 희생자 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쪽 타워 94층에 있는 보험회사에서 일한 도로시 모건과 가족이 익명을 원한 한 남성이 DNA 분석 기법에 의한 1646번째, 1647번째 희생자로 기록됐다. 잔해 속 유해를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작업은 20년째 진행 중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사이 DNA 분석 기법이 발전한 덕분에 1년에 한두명씩 성과를 내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남쪽 타워(왼쪽)이 테러 공격 후 무너지고 있다. [AP=연합뉴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남쪽 타워(왼쪽)이 테러 공격 후 무너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시 최고 검시관인 바버라 샘슨 박사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당시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무엇이 필요하든 해내겠다고 약속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 확인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1106명이나 된다. 전체 사망자의 40%에 달한다.

시간이 흘러도 뉴요커들에게 9ㆍ11은 현재 진행형이다. 패퍼라고 이름을 밝힌 남성(52)은 사고가 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휴대폰이 없던 때라 공중전화기 앞에 한참 줄을 서서 집에 전화를 걸었어요. 브루클린 집까지는 20분 거리인데, 몇 시간을 걸려 도착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그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우울한 감정이 든다”면서 “당시를 경험한 뉴요커들은 아마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편치 않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리 모습. 세계무역센터 주변은 20년째 일반 차량 통행을 제한다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리 모습. 세계무역센터 주변은 20년째 일반 차량 통행을 제한다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WTC 주변 도로는 20년째 통제 중이다. 일반 차량은 아예 들어올 수 없다. 소방차와 경찰차 등 필수 차량도 이중 차단 장치를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을 경찰관과 경찰견이 순찰하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추모 공원'을 경찰관과 경찰견이 순찰하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경찰과 폭발물 탐지견이 상시 순찰하는 등 긴장감이 높았다. 초소마다 경찰관이 감시 카메라 화면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옛 세계무역센터(WTC) 맞은편 소방서. 뉴욕시 소방관 순직자 343명을 기리는 상징물이 내걸렸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옛 세계무역센터(WTC) 맞은편 소방서. 뉴욕시 소방관 순직자 343명을 기리는 상징물이 내걸렸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사건 접수 6분 만에 출동한 바로 앞 소방서 외벽에는 당시 희생된 뉴욕시 소방관 343명을 추모하는 상징물이 내걸렸다.

지난 20년간 9·11 규모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20주년에 맞춰 철군을 예고했다가 되려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기듯 나온 상황에 대한 비판이 컸다.

패퍼는 "나는 민주당원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졸속 철군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난 20년간 벌인 테러와의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테러 현장 근처 초소에서 경찰관이 감시 카메라 화면을 살피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테러 현장 근처 초소에서 경찰관이 감시 카메라 화면을 살피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테러 위협될까 불안 

미군이 빠져나오기도 전에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손에 넘어가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다시 아프간이 테러 온상이 될 수 있단 우려다.

몬태노는 “대다수 미국인은 미군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도 같다"면서 "다만, 하필 9·11 20주년인 이 시점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장악했다는 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페얼즈는 “9ㆍ11 같은 일이 다시는 안 일어날까?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이 9·11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다는 확신은 없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총기 사고, 인종 혐오 범죄 등이 테러 못지않게 미국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었다. 뉴욕시에서만 코로나19로 3만3900명이 숨졌다. 9ㆍ11테러 희생자보다 10배 더 많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옛 세계무역센터(WTC) 부근 모습. 차단기를 설치해 일반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9/11 테러 20주년을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옛 세계무역센터(WTC) 부근 모습. 차단기를 설치해 일반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뉴욕=박현영 특파원]

"美 정치 분열, 테러 위협에 빠뜨릴 수도"

ABC뉴스와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이 9·11 이전보다 테러 위협으로부터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49%에 그쳤다. 역대 최저(48%)였던 2010년 조사에 근접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57%가 지금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으나 공화당 지지자는 41%에 그쳤다.

브루스 호프맨 미 외교협회(CFR) 대테러·국토안보 담당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슬람 국가(IS)와 알카에다의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미국에 대한 테러 위협은 9·11 이후 20년간 대부분을 차지한 외부의 위협에서 1월 6일 국회의사당 폭동 같은 내부의 위협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하나로 묶어 준 통합과 공동체 의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고, 극심한 정치적 분열이 일관된 대테러 전략 실행을 방해하면 미국이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美 자존심에 상처…'아기 호랑이' 中 경쟁자로

9·11은 미국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긴 사건이다.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와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게 보복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하고, 대량살상무기 파괴와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이라크전까지 벌이며 20년간 네 명의 대통령이 '끝없는 전쟁'이라는 수렁에 휘말렸다.

'떠오르는 호랑이'에 불과했던 중국은 그사이 바이든 대통령 표현을 빌리면 "심각한 경쟁자"가 됐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에서 급하게 발을 뺐지만, 역설적으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20년 전 그 자리로 돌아왔다고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적했다.

FP는 "그때와의 차이라면 미국은 더 이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초강대국이 아니고, 지하드 전사 뿐만 아니라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이 그 상황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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