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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진단키트 개발 넘어, 이젠 암 치료 ‘정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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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유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⑥ 압타머사이언스

국내에서 폐암은 사망률 1위의 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폐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6.2명으로 전체 암 사망률 중 가장 높았다. 폐에는 감각신경이 없어 증상으로 인한 조기 발견 확률이 낮고, 저선량 컴퓨터 단층촬영(LDCT)에서도 일정한 크기 이하의 암세포는 찾아내기 어려워서다. 게다가 LDCT의 경우 음성을 양성으로 잘못 파악하는 위양성률이 90%나 된다.

이름부터 낯선 ‘압타머사이언스’는 이런 폐암 진단과 암 치료제 시장에 도전장을 낸 업체다. 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한동일(62) 압타머사이언스 대표는 “일단 압타머가 어떤 기술인지 알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압타머가 시장에서 꽃을 피우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특정분자와 결합하는 압타머 핵산
질병 단백질 찾아내는 ‘화학항체’
외국제품 비해 저렴하고 정확해
“해마다 시장 성장, 천천히 가겠다”

‘18년 외길’ 끝에 제품화 성공

한동일 압타머사이언스 대표는 “자체 개발 한 폐암 조기 진단키트를 통해 본격적인 매출 기반을 마련했다”며 “향후 암 치료제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먼저 판매를 허용한 후 제품을 승인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진출했다.김성룡 기자

한동일 압타머사이언스 대표는 “자체 개발 한 폐암 조기 진단키트를 통해 본격적인 매출 기반을 마련했다”며 “향후 암 치료제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먼저 판매를 허용한 후 제품을 승인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진출했다.김성룡 기자

압타머(aptamer)는 3차원 구조를 통해 특정 분자에 결합할 수 있는 핵산(DNA·RNA)이다.〈그래픽 참조〉 1990년대 초반 래리 골드 미국 콜로라도대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연구를 시작했다. 항체보다 분자 크기가 작아 약물을 세포에 잘 전달할 수 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항체는 특정 부위에만 결합하는 반면, 입체 형태인 압타머는 표적 물질을 감싸듯이 결합해 응용 범위가 넓다. 항체로 불가능한 난치성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압타머사이언스는 국내 최초로 압타머를 발굴하고, 제품화에 성공했다. CT로도 찾아내기 어려운 혈액 내 폐암 단백질을 발견하는 진단키트가 이 회사의 1호 상품이다. 한 대표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키트에 넣으면 압타머와 결합해 암 단백질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포스텍(포항공대) 실험실에서 태동해 ‘18년 외길’ 끝에 나온 성과물이다.

압타머사이언스 어떤 회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압타머사이언스 어떤 회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폐암 조기 진단키트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선진입·후평가’ 제도를 통해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신기술의 시장 진입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판매를 허용한 후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후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압타머사이언스는 현재 서울아산병원·은평성모병원·경희대의료원 등 8개 의료기관과 폐암 진단키트 공급 협의를 마친 상태다. 이르면 연말께 이들 병원에서 압타머 키트 검사가 가능할 전망이다. 질병이 있는 환자 중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타나는 민감도는 75%, 질병이 없는 환자가 음성으로 나오는 특이도 92% 수준이다. 국내 신속항원 검사키트의 정확도 허가 기준은 민감도 90% 이상, 특이도 99% 이상이다.

한 대표는 “정확도는 아직 미흡하지만 해외를 포함해 현존하는 제품 중에 가장 높다”고 강조했다. 가격도 비급여 기준 20만원 안팎(의료보험 적용 시 10만원대)으로 해외 경쟁사(60만원대)에 비해 낮은 편이다.

김인후 국립암센터 교수는 “그동안 폐암을 진단하는 방법은 LDCT나 조직 검사밖에 없었다”며 “압타머 키트가 적용되면 암을 확진하고 치료를 이르게 시작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진단키트 사업이 본격화하면 이 회사는 내년 수십억원대 매출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포스코 ‘온실’에서 독립해 ‘광야’로

압타머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압타머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압타머사이언스는 포스텍에서 출발했다. 포스코라는 ‘온실’이 있어서 시작은 순조로웠다. 2003년 미래 먹거리를 찾던 포스코는 바이오 분야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압타머 기술이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포스코는 포스텍에 압타머 전문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박사급 인력 20여 명을 선발했다. 한 대표는 이즈음 합류했고, 류성호 포스텍 교수가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연구 책임을 맡았다.

하지만 포스코는 미래가 불투명한 바이오 진출을 확정 짓지 못했다. 한 대표와 류성호 교수 등은 2011년 압타머사이언스를 창업했다. 2016년 포스코가 완전히 발을 빼기로 결정하면서 홀로서기에 나섰다.

포스코라는 온실을 벗어나니 ‘광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압타머 기술 자체도 생소한 데다 관련 인프라가 거의 없어 사업 진척이 더뎠다. “가령 압타머를 대량 합성하는 생산과정의 일부를 대행할 업체가 있으면 속도가 빨랐을 겁니다. 이런 인프라가 없으니 일일이 개척해가야 했지요. 아직도 가시덤불을 헤치며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요.”

압타머사이언스는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250억원대 투자를 받았다. 지난해 9월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초기에 투자한 키움인베스트먼트 등은 7배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압타머사이언스의 앞날은 스스로한테 달렸다. 새 길을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는 얘기다. 2005년 압타머 기반 1호 신약 ‘마큐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으나 시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고 밀려났다. 압타머 기술을 발명한 골드 박사의 기술 원천 특허가 만료된 지도 10년이 조금 넘었다. 그만큼 상용화 초기 단계라는 의미다.

“압타머를 이용해 진단·치료제 개발에 나선 업체가 많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드뭅니다. 미국의 소마로직이나 알케믹스 등이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꼽히지만, 이들도 시장을 압도하는 신약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대표는 “그래서 압타머가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치성 질병 중 항체가 만들어지는 비율은 30% 수준”이라며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찾아도 여기에 맞는 항체가 발굴되지 않으면 항체 치료제를 만들지 못하는데, 이런 사각지대를 압타머로 일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간암과 당뇨 치료제다. 이 회사는 간암 세포 표면의 ‘글라이피칸3’(GPC3)을 표적으로 하는 압타머를 개발해 세포 안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하고 내년 임상시험 승인(IND)을 신청할 예정이다.

당뇨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당뇨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계 약물이 저혈당·비만 등의 부작용이 있는 데 비해 압타머를 사용한 약물은 부작용이 적다. 현재 덴마크계 제약회사인 노보 노디스크와 물질이전 계약(MTA)을 한 상태다.

간암·당뇨 치료제에 도전장

류성호 압타머사이언스 CTO는 “항체 치료제는 미국 등에서 이미 신약이 많이 나온 상태에서 국내 기업이 진입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에 비해 압타머는 세계 수준에 견줘 비교적 이르게 국내에서 기술이 축적돼 경쟁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압타머 시장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를 갓 넘는 수준으로 아직은 크지 않다. 하지만 매해 20%씩 성장해 2025년에는 59억 달러(약 6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신효섭 부국증권 연구원은 “중국·싱가포르 등에서 진단키트 판매가 시작되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며 “향후 당뇨 치료제가 개발되면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라이선스 아웃(지식재산권 생산·판매를 다른 회사에 허가해 주는 공급 방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선 신영증권 연구원 역시 “현재 당뇨병성 신증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가 나오면 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대표는 “항체 치료제가 19세기 말에 처음 개념이 등장한 이후 항체 신약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라며 “압타머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로, 조급하게 바라보기보다 인프라를 다지다 보면 시장에서 충분히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압타머사이언스는 포스텍이 보유한 혁신적 연구 성과가 비전 있는 경영인,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만나 만들어진 성공적인 벤처기업 모델”이라며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이런 혁신창업의 생태계가 조화를 이뤄야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헤쳐나가며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